“지역별 전력수급 불균형 심화…차등요금제로 분산 유도해야”
분산에너지 활성화 정책토론회
“분산에너지 특별법 시행 계기,
지역별 가격 신호 제대로 줘야”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내년 6월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하 분특법) 시행을 앞둔 가운데, 이를 계기로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 제도를 도입해 지역별 전력수급 불균형과 그에 따른 국가적 장거리 송전선로 구축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지역별 차등 요금제를 도입 시 서울·수도권의 요금 인상과 충청과 영·호남 등 비수도권 요금 인하 가능성이 큰 가운데 앞으로의 논의가 어떤 식으로 이뤄질지 관심을 끈다. 전문가들은 다만 현 전기요금 체계의 한계와, 지역 갈등 요인 때문에 단기간 내 도입 가능성은 크지 않으리라 봤다.
“무탄소 전력 필요 기업, 무탄소 전력 생산지로 유도해야”
국민의힘 구자근·이인선 의원과 경상북도·경북연구원이 13일 오후 국회에서 연 분산에너지 활성화를 위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올 6월 국회를 통과한 분특법이 내년 하위법령(시행령·시행규칙) 제정을 거쳐 올 6월부터 시행 예정인 가운데, 어떻게 하면 법 취지에 맞춰 분산에너지를 활성화할 수 있을지를 모색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박종배 건국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재생에너지(RE100)나 원전 등 무탄소에너지(CFE) 활용 전력이 필요한 기업 대규모 수요를 재생에너지와 원자력발전(원전)이 많은 경북 등 지역으로 옮겨오는 방식의 분산에너지 활성화 방안을 제시했다. 기후위기에 대응한 전 세계적 탄소중립 이행 의무로 CFE에 대한 수요는 늘어나고 있는 만큼 탄소 다배출 기업을 CFE 자원이 풍부한 경북과 부산·울산 등지로 옮겨가도록 하자는 것이다.
박 교수는 “CFE(원전+태양광+풍력) 전력은 전국적으론 34%(2021년 기준)이지만 이중 대부분은 경북(42%)과 전남(20%), 부산(18%) 등 비수도권에 편중한 반면 그 수요는 약 40%가 수도권(서울·인천·경기)에 몰려 있다”며 “CFE 수요에 초점을 맞춰 분산에너지를 활성화한다면 송전망 구축에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지역 경제도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분산에너지가 활성화하려면 전기 수요·공급의 이해관계가 맞아야 하는데 RE100 이행을 위한 전력은 그 비용이 1㎾h당 180~300원으로 비싸서 130~150원대에 산업용 전기를 공급하는 한국전력(015760)공사(이하 한전)와 경쟁하기 어렵다”며 “공급단가가 1㎾h당 60~90원대인 원전 생산 전력 직거래를 허용해 재생에너지를 적절히 섞은 CFE 요금 체계가 나온다면 분산에너지 활성화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연제 서울과기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이 같은 전제조건으로 지역별 전기요금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독점적 전기 소매판매 공기업인 한전이 산업·주택용 등 목적에 따라 동일한 요금을 부과하는 현 체제는 ‘지역에 따른 가격 신호’가 없어,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태양광, 풍력발전사업자는 더 싼 입지조건을 찾아 호남으로 가고, 전력 다소비 고객(기업)은 수도권에 위치하려 하는 가운데, 수도권에 필요한 전기를 못 보내며 전력망 혼잡과 전력 생산비용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며 “기업이 전기요금 하나 때문에 지방에 가야겠다고 결정하진 않겠지만 전력 다소비 업종에 가격 신호는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다만 이 제도 도입이 지역 갈등 요인이 되는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 만큼, 신중한 검토 아래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지역 차등 요금제를 도입하더라도 전기 원가 중 순수한 송·배전 비용은 10% 안팎에 불과한 만큼 충분한 가격 신호를 주기 어려울 수 있고, 현 전기요금 체계가 발전·송전·배전·판매 비용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있어 요금 적정성 논란도 생길 수 있다”며 “한번 정하면 다시 조정하기 어려운 만큼 면밀히 검토 후 추진해야 실패 가능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를 좌장으로 한 토론에서도 많은 전문가가 CFE를 중심으로 한 분산에너지 활성화와 이를 위한 지역별 요금제 도입의 필요성에 대체로 공감했다. 영·호남 지역 중심의 CFE 생산 전력을 장거리 송전선로를 활용해 수도권으로 보내는 현 전력망 체계는 앞으로 더 운영하기 어려운 만큼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원두환 부산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역별) 가격 신호가 제대로 작동 안 하면서 경북·부산·울산 등 지역이 수도권에 전기를 공급하는 식민지가 된 상황”이라며 “정상으로 여겨 왔던 현 비정상 상황을 정상으로 바로잡아야 기업이 지방으로 가고 인구 분산도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권혁수 에너지산업진흥원 이사장 역시 “자기가 사는 지역에 발전소와 송전설비가 들어오지 않으면 높은 전기요금을 내겠다는 의사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발전소를 유치하면 그만큼 혜택이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때”라고 말했다.
유철균 경북연구원 원장은 “일반 소프트웨어 컴퓨팅보다 전력 수요가 다섯 배 많은 챗GPT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보급되면 현재의 전력 수요 개념이 완전히 바뀔 수 있다”며 “정밀한 가격 신호 체계 작동에 기반한 분산에너지 활성화를 추진하지 않는다면 이른 시일 내 전기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구형 전기연구원 에너지신산업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타당성에는 동의하나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애매하면 갈등만 조장할 수 있는 만큼 유의미한 효과를 거두려면 긴 안목으로 신중히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많은 지자체가 특구 지정 및 특화사업 추진에 노력하고 있지만 차별성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주민참여형 분산에너지 사업 등을 통해 성공 사례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유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전기요금이 원가를 제대로 반영 못 하고 한전이 대규모 부채와 적자에 허덕이고 있어 당분간 지역별 전기요금 도입은 어려울 것”이라며 “우선 전기요금 체계 자체를 (정부·정치권으로부터) 독립시켜 정상화해야 지역별 전기요금 제도를 실현할 수 있고 분산에너지도 활성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진 포항공과대 전자전기공학과 교수 “분특법 시행은 분산에너지 활성화에 긍정적 신호이지만 현재로선 관련 사업자가 수익성 있는 사업 모델을 만들 방법이 많지 않다”며 “이대로면 구역전기사업자의 실패 선례를 뒤따를 수 있는 만큼 원전과 재생에너지 발전을 혼합하는 형태로 사업자들이 비용 경쟁력을 확보할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최수영 한전기술 부장은 “경북이 전국에서 CFE 전력이 가장 많다고 하지만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수소환원제철을 시작하면 오히려 전력 공급이 부족할 상황”이라며 수도권으로 향하는 송전선로 외에 강원 지역부터 부산·울산을 잇는 동해 해저 송전선로 건설을 제언하기도 했다.
박상희 산업통상자원부 신산업분산에너지과장은 “제주, 울산 등 지자체가 분산에너지 특화 모델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고 정부도 이들 사업의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며 “시행 첫해이다 보니 아직 관련 예산이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관계부처와 협의해 정부 차원의 분산에너지 특화 지역 활성화 노력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김형욱 (ner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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