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오진 날' 감독 "한정된 공간 속 스릴러 매력에 끌렸죠"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스릴러와 서스펜스를 10부작으로 만든다는 것이 굉장히 매력적이었고, 도전 의식이 생겼어요."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운수 오진 날'을 연출한 필감성 감독은 14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작품을 선택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최근 마지막 회까지 모두 공개된 '운수 오진 날'은 낙천적이고 마음 약한 택시 운전기사 오택(이성민 분)이 우연히 장거리 손님으로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를 태우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동명 웹툰이 원작인 이 드라마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시청자의 긴장감이 풀어질 때쯤 다시 조여들기를 반복한다. 3주 연속으로 티빙 유료 가입 기여도 1위를 기록하며 흥행하고 있다.
황정민 주연의 영화 '인질'을 연출했던 필 감독은 이 작품으로 첫 시리즈물 연출을 맡았다. 필 감독은 연달아 두 편의 스릴러를 연출한 이유를 묻자 "개인적인 호감이 큰 것 같다"고 했다.
필 감독은 이번 작품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선 "익히 아는 택시라는 공간에서 금혁수와 오택 두 인물의 감정 대결을 10부 동안 어떻게 끌고 갈 수 있을까 궁금했다"며 "잘 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한정된 공간의 택시에서 인물들이 러닝타임 대부분을 보내는 만큼 달리는 자동차를 연출하기 위한 거의 모든 장치가 동원됐다고 한다. 가상 스튜디오, 실제 도로 주행, 렉카를 이용한 촬영 등이 다 사용됐고, 그 결과 이질감 없는 장면이 완성됐다.
필 감독이 꼽은 '운수 오진 날'의 또 다른 장점은 바로 배우들의 연기다.
'믿고 보는 배우' 이성민은 소심한 성격이었다가 복수심에 불타게 되는 택시 기사 오택을 연기했고, 로맨스 주인공 역할로 익숙한 유연석은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이병민을 연기했다. '기생충'의 가사도우미를 연기했던 이정은은 아들의 죽음을 파헤치는 황순규로 출연했다.
필 감독은 "러브콜을 보낸 모든 배우가 한 번에 '오케이'를 해주셨다"며 "그 어떤 스펙터클(화려하고 웅장한 장면)도 보여줄 수 없는 것을 보여주는 게 바로 배우들의 감정과 연기"라고 강조했다.
특히 필 감독은 오택이 살인마 이병민에게 협박당해 밀항할 배를 구하려 건달들을 찾아가 허세를 부리는 장면을 명장면으로 꼽았다. 오택은 건달들을 위협하려고 자신이 본 이병민의 살인을 마치 자기가 벌인 일처럼 늘어놓는다.
이 장면에서 이성민은 돌연 눈을 파르르 떨면서 말을 잇지 못하며 오택의 흔들리는 감정을 표현했다. 필 감독은 "이성민 배우가 '오택이 자기 때문에 죽은 사람들을 생각해서 울컥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하는 걸 듣고 그렇게까지 깊이 있는 연기를 해준 데 감동 받았다"고 했다.
유연석은 자신이 죽음으로 몰아간 남윤호의 장례식에 가서 그 어머니를 위로하다가 몰래 섬뜩한 미소를 짓는 모습을 연기했다. 필 감독은 "너무 소름 돋는 연기에 그 장면을 찍다가 저도 모르게 '커트'를 외치고 '이런 나쁜 놈'이라고 말했다"고 비화를 털어놨다.
필 감독은 이번 드라마를 제작하면서 살인마 이병민의 전사(前史)를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했던 불운한 어린 시절을 암시하는 일부 장면이 있지만, 자세한 사연은 화면에 담기지 않았다. 최종본에서 편집된 것이 아니라 아예 촬영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를 두고 필 감독은 "이 인물이 왜 이렇게 됐는지 답을 내리고 싶지 않았다"며 "어떤 답을 내리건 사실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그는 "인물이 과거에 겪은 사건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코가 코끼리의 전부가 아니듯이 특정한 사연이 인물을 형성한 모든 이유가 될 수는 없다"며 "단지 단서를 던져놓고 '쟤가 저런 이유로 저렇게 됐을까?' 생각하게 하는 것이 인물을 풍부하게 한다고 본다"고 부연했다.
'운수 오진 날' 초반부는 어수룩한 오택이 친구에게 사기당하고 택시 기사가 되는 과정을 빠르게 담아낸다. 오택이 돼지꿈을 꿨다며 복권을 사는 등 발랄하게 시작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오택이 악한 길을 선택하도록 강요받으면서 점차 분위기가 무거워진다.
필 감독은 "마치 '안 무서우니까 들어오라'고 손님을 이끈 다음 일단 들어오면 문을 잠그고 분위기가 돌변하는 '귀신의 집'처럼, 우리 드라마도 따뜻한 분위기로 시청자들을 이끌고 후반부에 본격적인 이야기를 펼쳤다"며 "시청자도 택시에 함께 올라탄 기분을 느끼도록 의도했다"고 설명했다.
필 감독은 또 "오택은 자기 가족을 구하기 위해 악한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고 최악의 상황까지 내몰린다"며 "과연 우리는 옳은 선택을 내리고 사는가 하는 질문을 시청자들에게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품 후반부는 오택이 자신의 택시에 탔던 인물이 금혁수가 아닌 금혁수를 사칭한 이병민이었던 것을 알아내고 그에게 복수하러 나서는 과정이 담겼다.
작품의 결말에 대해 필 감독은 "결국 승리하는 것은 선량한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담고 싶었다"며 "마지막까지 봐주시면 시원한 결말이 있으니까 견디고 봐 달라"고 당부했다.
jae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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