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 탄생 50주년에 이토록 진심인 이유
2023년은, 힙합 탄생 50주년이다. 힙합의 나이가 50살이 되는 해라는 말이다.
사실 미국에서는 작년부터 힙합 탄생 50주년을 기념하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미국의 힙합레이블 ‘매스어필(Mass Appeal)’의 움직임이었다.
매스어필은 자신들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작년에 한 개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새로 만들었다. 바로 ‘@hiphop50’. 이 계정의 프로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massappeal’s love letter to Hip Hop’
매스어필과 함께 한 래퍼 역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스(Nas)’였다. 매스어필과 계약한 아티스트이기도 한 나스는 힙합 탄생 50주년을 기념하는 매스어필의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주도했다.
나스는 한국계 미국인 힙합저널리스트 미스인포(Miss Info)와 스포티파이 팟캐스트 ‘The Bridge: 50 Years of Hip Hop’을 진행했고, 디제이 프리미어(DJ Premier)가 프로듀서를 맡은 힙합 탄생 50주년 사운드트랙에 랩으로 참여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스프라이트의 힙합 탄생 50주년 커머셜에 광고모델로서 등장하기도 했다. 나스는 힙합 탄생 50주년을 가장 먼저 알리기 시작한 래퍼였다.
이쯤에서 의문이 생긴다. 왜 올해가 힙합 탄생 50주년인 걸까. 누가 정했을까. 어떤 기준이었을까. 시간은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소는 뉴욕 브롱스의 세즈윅거리 1520번지(1520 Sedgwick Avenue)다.
디제이 쿨허크(DJ Kool Herc)는 여동생이 주최한 파티에서 음악을 틀 준비를 하고 있다. 이 날의 파티를 위해 쿨허크는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의 앨범 <Sex Machine](1970)> 준비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그는 똑같은 앨범을 2장 준비해왔다. 그리고 그는 똑같은 앨범을 왼쪽 턴테이블과 오른쪽 턴테이블에 각각 세팅한 후 음악을 틀기 시작했다.
쿨허크가 선택한 곡은 ‘Give It Up or Turnit a Loose’. 그는 이 노래의 브레이크 부분을 왼쪽 턴테이블과 오른쪽 턴테이블에 번갈아가며 틀었다.
덕분에 음악은 시종일관 끊이지 않았고 파티에 온 사람들은 흥을 잃지 않고 계속 춤을 출 수 있었다. 1973년 8월 11일, ‘힙합의 탄생’이었다.
올해 2월에 열린 그래미어워드에서도 힙합 탄생 50주년을 기념했다. 13분간의 메들리 공연이 열렸는데, 한자리에 모이기가 불가능해 보이는 ‘힙합위인’들이 차례로 나와 힙합 탄생 50주년을 자축했다.
그랜드마스터플래시(Grandmaster Flash), 런디엠씨(Run-D.M.C.), 엘엘쿨제이(LL Cool J), 라킴(Rakim), 메쏘드맨(Method Man), 빅보이(Big Boi), 그리고 넬리(Nelly)까지 수 십 팀이 자신들의 명곡을 다시 부르며 보는 이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가히 영상으로 만든 힙합 역사책이었다. 그래미가 힙합에 바치는 위대한 헌정이었다.
하나의 무대가 더 있었다. 디제이칼리드(DJ Khaled)의 ‘God Did’의 라이브 퍼포먼스가 펼쳐진 것이다. ‘최후의 만찬’ 스타일로 꾸며진 무대에 디제이칼리드, 제이지(Jay-Z), 릭 로스(Rick Ross), 릴 웨인(Lil Wayne), 존 레전드(John Legend) 등이 나왔다.
아무도 우릴 믿지 않았지만 신은 우릴 믿어줬고(god did) 결국 우린 해냈다는 랩과 보컬이 울려퍼졌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시상식에서,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이자 영향력 있는 셀렙들이 힙합을 위해 함께 부른 찬가였다.
노래가 끝난 후 디제이칼리드는 카메라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가슴이 벅차군. 그들은 우릴 믿어주지 않았어. 하지만 신은 우릴 믿어줬지. 우린 방금 그래미에서 8분이 넘는 노래를 불렀다고!”
그런가하면 정확히 50년이 된 올해 8월 11일에는 뉴욕의 양키스타디움에서 공연이 열렸다.
매스어필과 나스가 주도한 이 공연은 하루종일 이어졌고 80년대와 90년대에 등장해 힙합을 이끌었던 선구자들이 대거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디제이 쿨허크의 등장이었다.
나스는 공연을 하다 갑자기 음악을 멈추더니 디제이 쿨허크를 무대로 초대했다. 그러더니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길이 남을 순간이었다.
“잠깐, 음악 좀 멈춰 봐. 무대 뒤에 힙합의 대부가 보이네. 디제이 쿨허크 말이야. 1973년 8월 11일, 당신은 세상을 바꿨고 우리의 삶 역시 완전히 바꿔버렸어. 당신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어. 이건 비즈니스 같은 게 아니야. 이건 우리의 사랑이고, 우리의 혈통에 관한 거야.”
한국힙합의 역사는 아직 50년이 되지 않았지만 한국에서도 힙합 탄생 50주년을 기념하는 움직임이 있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그 안에는 나의 움직임 역시 포함돼 있다.
작년에 나는 일본힙합의 선구자들을 취재하기 위해 도쿄를 여러 번 방문했다. 그 과정에서 일본힙합 관계자들과 힙합 탄생 50주년에 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들과 내가 공감했던 것은 ‘아시아힙합끼리 힙합 탄생 50주년을 기념하자’는 것이었다.
이제 아시아의 힙합도 충분히 성장하고 발전했기 때문에 독자적으로도 이를 기념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한국힙합과 일본힙합의 더 많은 교류 역시 다짐했다.
올해 들어 나는 그 대화를 실행에 옮겼다. ‘지브라(Zeebra)’는 일본힙합의 아이콘이다. 9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30년 동안 활동하며 일본어랩의 방법론을 정립하고 일본힙합씬을 부흥시켰다.
과거에는 일본이 무엇이든 한국보다 일찍 시작했기 때문에 나를 포함한 내 세대는 어릴 적에 앞서나가는 일본힙합을 동경하며 자랐고 그 중심에는 지브라가 있었다. 말하자면 그는 아시아 최초의 랩스타였다.
나는 한국의 힙합페스티벌에 지브라를 초청하기로 했다. 힙합 탄생 50주년을 맞아 아시아힙합끼리의 유대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대구힙합페스티벌 여승현 대표에게 이런 내 계획을 말했다. 다행히 여승현 대표는 내 제안을 전격적으로 수용해줬다. 그렇게 지브라는 올해 대구힙합페스티벌의 유일한 외국인 아티스트로 라인업에 올랐다.
대구힙합페스티벌의 슬로건도 힙합 탄생 50주년으로 결정되었다. 힙합탄생 50주년 티셔츠를 입고 무대에 오른 지브라는 공연이 끝난 후 이렇게 말했다.
“대단한 공연이었습니다. 힙합은 올해로 탄생 50주년을 맞았습니다. 모두 당신들 덕분입니다. 힙합 팬들, 래퍼들, 디제이들, 댄서들, 그래피티 아티스트들 모두가 함께 만들어낸 성과입니다. 힙합 탄생 100주년도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한국에서, 또 일본에서 다시 만납시다. 힙합 안에서 함께 합시다.”
한국의 가장 오래된 힙합사이트이자 힙합회사인 ‘힙합플레이야(Hiphopplaya)’ 역시 힙합 탄생 50주년을 기념하는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신세계 백화점에서 팝업 전시 및 공연을 열었고 한국힙합의 역사를 담은 단행본 ‘케이힙합 가이드북 2023’을 발간했다(참고로 이 책의 편집장은 나다).
그리고 힙합플레이야는 8월 11일, 음원서비스에 하나의 트랙을 공개했다. ‘HIPHOP ANTHEM 2023’. 한국래퍼 50명이 참여한 단체곡이었다. 힙합에 바치는 찬가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왜 나는, 그리고 힙합의 팬인 우리 모두는 힙합 탄생 50주년에 이토록 진심인 걸까. 솔직히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힙합에게 고맙기 때문이다. 빚을 졌기 때문이다.
삶을 개선하고자 하는 열망을 녹여내고 바닥에서 위로 올라가려는 의지를 투영한 힙합이라는 음악 덕분에, 있는 그대로의 자기자신으로 살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힙합이라는 음악 덕분에, 늘 거짓 없이 진실하게 살라고 외치는 힙합 덕분에, 내 삶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만약 나의 내면이 단단하고 균형 잡혀 있다고 한다면, 그건 모두 힙합 덕분이다. 힙합의 ‘50살’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 김봉현 음악저널리스트/작가
힙합에 관해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케이팝 아이돌 연습생들에게 음악과 예술에 대해 가르치고 있고, 최근에는 제이팝 아티스트들과 교류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한국힙합 에볼루션>, <힙합의 시학> 등이 있다. murdamuzi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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