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에 이공계 우려…"서울대 공대에 3등급 입학할 수도"
기초과학·공학 교수들 "의대 쏠림 심화" 지적
과기부도 "우수인력 이공계 이탈 방지 필요"
[서=뉴시스]이연희 기자 =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추진하는 가운데 이공계에서는 우수인재 이탈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의대 증원과 함께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별도 트랙을 두는 등 고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최세휴 한국공과대학장협의회장(경북대 공과대학장)은 14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제2차 의대정원 확대 연속 토론회'에서 "우수한 인재가 의대로 몰려드는 상황에서 의대 정원이 확대되면 서울대 공대에는 내신 성적 3등급도 들어가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과 보건의료특별위원회가 주최한 이날 토론회는 '의대 정원 확대로 인한 이공계 이탈현상 : 바이오헬스 인재 양성 측면, 바람직한 현상인가?'를 주제로 마련됐다.
최 회장은 이 자리에서 2020~2023학년도 의대 정시 합격자 78%가 재수생 등 졸업생이라는 점, 수도권 주요 대학의 반도체 계약학과 최초 합격자의 등록포기율이 155.3%에 달한다는 점을 거론하며 의대 정원이 늘 경우 자연계열 수험생들의 의대 쏠림 현상을 우려했다.
김철훈 연세대 의대 약리학 교수는 "의대 정원 확대로 의사과학자 등 연구자가 늘어날 수 있다는 '낙수효과' 기대도 있지만 의대에 학생이 많이 오면 공대 등 다른 이공계 분야의 인재풀(pool)이 영향을 받게 된다"며 "의학 연구에서는 바이오 외에 공학, 데이터 등 융합연구가 중요한 만큼 국가 차원의 인재풀 배분 전략을 신중히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재준 서울대병원 공공부원장 역시 "의대 정원이 늘어나면 당연히 이공계가 직접적인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며 "의대 정원이 1000명 이상 늘면 대학교 재학생은 물론 석박사 출신, 30대 연구원도 의대 입학을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고 전망했다.
임 부원장은 이공계 이탈을 최소화하는 의대 증원을 위해 지방 의대 위주의 증원, 즉 지역인재 선발을 중심으로 증원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수도권 의대 정원이 늘면 수도권 거주를 희망하는 젊은 세대의 이공계 이탈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만큼 의료자원이 부족한 지역에 머물면서 공부하고 의료활동을 펼칠 수 있는 지역 의대 정원을 중심으로 늘리자는 얘기다.
강민구 전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의대 정원을 확대하더라도 의사와 다른 이공계 분야 직종의 임금 등 처우 격차가 크기 때문에 의대 선호 현상을 변동시키지는 못할 것"이라며, "근본적으로 이공계 대학원생의 처우를 비롯해 졸업 후에도 필수의료와 기초과학 분야 인재에 대한 대우를 대폭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이공계 인재 양성의 한 축을 담당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도 우려를 표했다.
홍순정 과기부 미래인재정책과장은 "의사과학자가 잘 육성되면 이공계 전체적으로 전망이 나쁘지 않다는 차원에서 의대정원 확대를 바라본다"면서도 "좋은 인력이 의사 양성에 몰리는 것이 국가·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이탈을 막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의사과학자를 집중 양성하는 전략에 대한 논의도 오갔다.
홍승령 복지부 보건의료기술개발과장은 의대 정원 확대 자체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면서도 "바이오헬스 분야는 국제적으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지만 우리나라의 바이오 국가경쟁력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며 "미국 등 해외에서도 의사과학자 양성 과정에서 중도탈락하는 사례가 상당하다"고 진단했다.
김하일 카이스트 학과장은 "의대 정원이 늘면 현실적으로 교육 부실 현상이 생기게 될 것"이라며 "의사과학자를 많이 양성하기 위해 미국식 선발·교육체계 전반적으로 손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학과장은 "이번에 의대 증원을 논의하면서 과거 의학전문대학원생과 의과대학 학생을 50%씩 분리해 선발한 전례를 고려해 선발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카이스트는 의사과학자 육성을 위해 의학·공학 4년-공학 4년 등 8년짜리 석·박사(MD-PhD) 통합과정을 기초로 한 과학기술의학전문대학원 설립을 추진 중이다.
홍순정 과장은 "의사과학자의 절대 숫자가 부족하고 의대 정원 3000여 명 중 기초 의학에 진입하는 사례는 1년에 20~30명 정도에 그치는 등 1%도 되지 않는다"면서 "기초연구가 새로운 신약이나 치료기술 개발로 넘어가는 분야의 융합연구가 부족하기 때문에 새로운 과학자 양성·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사 출신인 신현영 의원은 "'소아과대란' 등 필수의료 정상화를 위해 국가가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할 시기인데 의대 증원 숫자에만 관심이 쏠려있다"며 "국가 인재가 어떤 영역에서 보람되게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큰 차원에서의 고민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dyhle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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