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천재’ 박주영, 조용히 잊히기를 원하나
지난 3일 울산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울산 현대-전북 현대전. 경기에 앞서 홍명보 울산 감독은 박주영 플레잉 코치(38)에게 은퇴 경기를 제안했다. 리그 2연패를 이미 확정한 뒤 열리는 마지막 홈경기 겸 시즌 최종전. 2연패를 자축하면서 베테랑을 보내기에 적당한 기회였다. 그러나 박주영 답변은 “노”였다. 홍 감독은 “주목을 받으면서 떠나는 걸 원하지 않은 눈치였다”며 “선수의 뜻이니 나도 기꺼이 수용했다”고 말했다.
2022년 울산은 17년 만에 리그 정상에 올랐고 시즌 홈 최종전에서는 이호 플레잉코치 은퇴식이 열렸다. 같은 플레잉 코치인 박주영은 비슷한 제안을 거절한 것이다.
박주영은 올해 1초도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다. 2021년 FC서울 소속으로 17경기에 출전했지만 골을 넣지 못했고 그해를 끝으로 울산으로 이적했다. 2022년 6경기 출전에 슈팅 2개, 파울 2개가 울산에서 기록한 전부다. 홍 감독은 “박주영은 후배들과 함께 훈련하면서 좋은 분위기를 이끌었다”며 “선수단과 코칭스태프 간 가교역할을 정말 잘했고 그게 2연패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박주영은 지금까지 K리그에서 12 시즌을 치르며 285경기에 출전했고 76골, 23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공격포인트 100개에 딱 한개를 남겼다. 서울에서 뛰다가 AS모나코, 아스널, 셀타 비고, 왓퍼드FC, 알샤바브 등에서 7년을 보내다 2015년 서울로 컴백했다. 2010년 홍명보 감독에 의해 병역기피 논란 끝에 아시안게임 대표로 선발돼 광저우아시안게임 동메달에 힘을 보탠 뒤 2012년 다시 홍명보 감독의 부름을 받아 런던올림픽에서도 동메달을 따냈다. 아시안게임, 올림픽 모두 와일드카드 선발. 엄청난 논란 속에서도 홍 감독은 박주영을 지지했다.
박주영이 내년에 어떤 역할을 맡을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플레잉 코치를 그대로 하는 것, 아니면 선수를 ‘조용히’ 그만둔 뒤 ‘전업’ 코치를 하는 것 둘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홍 감독은 “아직 본인이 내년도에 어떻게 뭘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 의사다. 본인 의사를 존중해 내년 업무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박주영은 2000년대 초중반 한국 축구계를 뒤흔든 엄청난 공격수였다. 정확한 판단력에 이은 유려한 드리블에 상대 선수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졌고 정확한 송곳 슈팅에 골키퍼도 꼼짝도 못했다. ‘축구 천재’라는 닉네임에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기량이 발군이었다. 미디어 앞에서 다소 소극적이면서도 때로는 회피하는 인상까지 준 게 ‘옥에 티’라면 티다.
내년에도 박주영을 볼 수 있을까. 본다면 어디에서 자주 볼까. 그라운드에서일까, 벤치에서일까. 엄청난 슈퍼스타가 은퇴식 없이 조용히 잊히는 걸 원하는 팬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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