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공감과 유감 [김명인 칼럼]

한겨레 2023. 12. 14.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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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인 칼럼]이 영화에 대해 지금 젊은 세대의 열띤 호응이 있다면 그것은 몰상식이 상식을 무너뜨리는 어처구니없는 사태에 대한 자연스러운 분노와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음을 알게 된 데에 따른 인식상의 충격에서 비롯된 것 이상은 아닐 것이다. 이들의 이른바 분노 인증 릴레이도 젊은 세대 특유의 일종의 놀이문화 맥락에서 이해될 수준이지 지나친 과잉 해석은 우세스러운 일이다.

김명인 | 인하대 국어교육과 교수·문학평론가

 동네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서울의 봄’을 관람했다. 절정으로 치닫는 긴장을 주밀하게 축조해가는 감독의 연출력과 연기자들의 호연이 빚어내는 압도적인 몰입감으로 1979년 12월12일 일어난 전두환을 정점으로 하는 신군부의 권력 탈취 사건의 전말을 그려내는 데 성공한 수작이라는 데에 이의가 없을 것 같다. 제목을 ‘12·12 쿠데타’가 아니라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살해 사건에서 시작해서 1980년 5·18 광주 학살을 거쳐 9월 전두환의 제11대 대통령 취임으로 마무리되는 ‘서울의 봄’이라고 붙임으로써 오히려 서울의 봄이 사실은 ‘신군부의 봄’에 지나지 않았음을 역설적으로 웅변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당시 대학 3학년생으로 밤늦게 학교에서 귀가하려다 한강 다리가 막혀 후배의 집에서 예정에 없던 엠티(MT)를 하게 되었던 그날의 기억을 새삼 불러일으킨 작품이기도 하고, 나아가 ‘서울의 봄’이라는 제목을 통해 10·26 직후부터 쿠데타에 성공한 신군부 세력과 이에 저항하는 대학생 세력 간의 팽팽했던 대치의 균형추가 결정적으로 기울어지고 결과적으로 5·18 광주의 참극으로 이어진 이른바 ‘5·15 서울역 회군’ 사건의 아픈 기억을 강렬하게 소환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때 나는 이른바 학생운동 지도부의 일원으로서 서울역에 운집하여 계엄 해제와 신군부 퇴진을 요구하던 10만 대학생들을 어떤 성과도 없이 허망하게 집으로 돌아가게 했던 그날의 역사적 과오에 일정하게 연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추세라면 이 영화가 곧 천만 영화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 하겠지만 모든 잘 만든 영화가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것은 아니기도 하거니와 유독 20~30대 관객의 관람률이 높아서 어떤 비공식 통계에 의하면 20대 26%, 30대 30%로 전체 관람객의 56%에 달하고 10대 관람객 수도 상당수에 이르는 것으로 나오는 등 관객층의 세대 구성이 남다르다는 점은 흥미로운 일이다. 또한 이들 젊은 관객층 사이에서 이른바 심박수 항진이나 스트레스 지수 상승 챌린지 같은 일종의 분노 인증 릴레이가 이어지고 있는 등 하나의 문화적 신드롬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 역시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동안 1980년대의 역사적 사건들을 다룬 ‘변호인’, ‘1987’ 같은 영화들이 그 시기를 경험했던 이른바 86세대들의 집단기억을 환기하는 데 주로 기여했으며, 주 관객층도 역시 그 세대들이었기 때문이다.

20~30대 젊은 세대의 이 영화에 대한 유별난 관심에 대한 가장 흥미로운 해석 중의 하나는,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 당선에 결정적 기여를 했던 이들이 그 이후 체감하게 된 배신감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 영화에서 전두환과 신군부 세력이 보여주는 집요한 권력욕과 군사력의 탈법적 악용에 대한 분노가 무소불위의 검찰권을 남용하며 국헌을 농단하는 윤석열 정권의 행태에 대한 분노와 겹쳐지면서 이들 세대에서 일종의 집단적인 역사적 각성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라도 조직폭력배들을 연상케 하는 사조직 세력이 국헌을 문란케 하는 일이 정상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젊은 세대가 박정희 사후 정치적 헤게모니 공백기에 옆에서 치고 들어와 권력을 도둑질한 44년 전의 신군부 세력에게서 역시 어떠한 정치적 헤게모니도 우세하지 않은 오늘날 또 한번 검찰 내 일부 사조직을 동원해 친위 쿠데타에 가까운 형태로 권력을 사유화하려는 현 정권과의 유사성을 읽어내고 이에 분노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야말로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며 청년 만세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2023년 12월과 1979년 12월, 그 사이에는 무려 44년이라는 긴 시간이 가로놓여 있다. 1979년 당시 21살 대학 3학년생이었던 나에게 44년 전이면 1935년인데, 그때는 일제가 군국주의적 야욕을 드러내며 식민지 조선에 대한 억압의 고삐를 조이던 시기로 사실상 나로서는 어떤 실감도 하기 힘든 머나먼 과거의 시간이다. 지금의 20대에게도 그런 시간 감각에는 차이가 없을 것이다. 오늘의 20대가 신군부의 군사반란이라는 사건과 현 윤석열 정권의 권력 농단 사이의 역사적 유비성을 발견해낸다면 그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그들이 이 유비성을 분단 구조에 편승한 한국 사회 특유의 반민주적 전통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하고 그에 따른 정치적 판단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것은 이른바 ‘민주화 세대’의 착각에 가깝다.

이 영화에 대해 지금 젊은 세대의 열띤 호응이 있다면 그것은 몰상식이 상식을 무너뜨리는 어처구니없는 사태에 대한 자연스러운 분노와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음을 알게 된 데에 따른 인식상의 충격에서 비롯된 것 이상은 아닐 것이다. 이들의 이른바 분노 인증 릴레이도 젊은 세대 특유의 일종의 놀이문화 맥락에서 이해될 수준이지 지나친 과잉 해석은 우세스러운 일이다.

전두환을 정점으로 하는 하나회라 불리던 일부 군부 세력의 비뚤어진 권력욕이 빚어낸 역사적 반동의 경험을 재소환하는 이 영화의 기저에 흐르는 정치적 시각은 여전히 낯익은 민주-반민주 프레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1960년 4·19 이래 오늘날까지 어언 60년을 넘는 기간 동안 한국의 자유주의 정치 세력이 조자룡 헌 칼 쓰듯 내세워온 또 하나의 보수적 프레임이기도 하다. 반민주 세력의 역사적 온존과 그로 인한 민주주의의 위기는 여전히 중요한 문제 현상임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동시에 이른바 ‘민주 진영’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상실해가는 집단의 보수 반동화를 묵인하고 이에 면죄부를 주는 하나의 정치적 환각이자 위선적 슬로건이기도 하다.

나는 이 영화와 이에 대한 젊은 세대의 적극적 반응을 이러한 민주-반민주 프레임으로 환원하여 아전인수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반대한다. 윤석열 정권의 난맥과 전횡에 맞서는 싸움이 자본과 노동, 생태와 반생태라는 더 긴박하고 더 절실한 정치사회적 프레임으로의 전환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보수 양당 정치 세력의 권력교환 놀음을 위해 또다시 일회적으로 소비되는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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