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어깃장’ 달래기? EU, 정상회의 앞두고 동결자금 해제
유럽연합(EU)이 우크라이나 지원안을 결정하는 정상회의를 하루 앞두고 헝가리에 배정됐던 EU 자금의 동결을 해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우크라이나 관련 논의에 번번이 거부권을 행사해온 헝가리 정부를 달래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13일(현지시간) EU 집행위원회는 그간 동결해왔던 EU 헝가리 배정 예산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102억유로(약 14조5000억원)의 지급을 재개한다고 밝혔다. 이는 EU가 사법권 독립 침해 등 EU의 요건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동결했던 자금 300억유로 가운데 일부다.
집행위는 “철저한 평가를 거친 결과 헝가리가 (사법권 독립과 관련해) 이행하기로 한 조치를 취한 것으로 평가한다”고 동결 해제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EU 내부 비판도 만만치 않다. 헝가리가 자금 동결 해제 요건을 충족하지 않았는데도 정상회의를 앞두고 헝가리 정부의 ‘몽니’를 막기 위해 돈을 지급했다는 것이다.
핀란드 출신 페트리 사르바마 유럽의회 의원은 “재앙적인 결정”이라며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의 협박이 성공한 것 같다”고 비판했다. 독일 출신 다니엘 프룬트 의원도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독재자이자 푸틴의 친구인 오르반에게 EU 역사상 가장 큰 뇌물을 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럽의회 내 일부 정치그룹도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에게 이번 조치에 반대하는 공동 서한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헝가리는 EU 및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이면서도 대러 제재 및 우크라이나 지원 문제에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해 왔다. 극우 민족주의 성향의 오르반 총리는 과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롤 모델’이라고 밝혀왔을 정도로 친러 성향으로 분류된다.
EU 일각에서는 헝가리가 자국에 유리한 양보를 받아내기 위해 우크라이나 문제를 빌미로 거부권을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최근 오르반 총리는 14~15일 열리는 EU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 현안을 전면 제외할 것을 요구해 왔는데, 이를 두고서도 EU 동결자금 해제를 노린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결국 EU 집행위가 동결 해제를 결정하면서 오르반 총리는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게 됐다. 다만 그가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논의 및 우크라이나 지원안에 찬성할지는 미지수다.
앞서 오르반 총리는 500억유로(약70조8000억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추가 지원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그는 이날 EU 집행위 발표에 앞서 자국 의회 연설에서 “우크라이나의 빠른 EU가입은 헝가리나 EU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며, 우스꽝스럽고 터무니 없는 생각”이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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