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 이 여행] 전통, 문화, 자연을 느끼는 지역명사 문화여행
(시사저널=글=KTX매거진 편집팀)
행복이란 어떤 모습일까. 맛있는 먹거리를 즐기거나 예술을 향유하고, 때때로 자연을 완상하며 생의 기쁨을 만끽하는 시간이야말로 모두가 꿈꾸는 일상적 행복일 것이다. 우리에게 보다 풍요로운 삶을 허락해 준 이들이 있다. 이 땅의 전통문화와 생태 환경을 수호해 온 지역명사 15인이 그 주인공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마련한 '지역명사 문화여행'은 한 분야에 평생을 바쳐 경지에 다다른 대가가 길잡이를 자처해 지혜롭고 아름다운 여정을 제안한다. 지역에 얽힌 흥미진진한 이야기, 오직 그곳에만 존재하는 색다른 경험은 덤처럼 주어진다. 바로 지금, 열다섯 가지 행복을 찾아 길을 나선다.
4월엔 매화 향이 진동하고, 6월이면 초록빛 나무에 매실이 주렁주렁 열리는 충남 당진 백석리. 8000그루에 달하는 동네 매실나무를 주민이 공동으로 관리한다. 달콤한 향기가 여행자를 단번에 사로잡는 이곳에도 고비는 있었다. 수확한 매실의 판로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문제 때문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고민 끝에 매실을 재료로 한과와 장아찌, 발효액, 고추장, 된장 등 가공식품을 만들기로 한다. 요양이 필요한 남편을 위해 귀촌한 김금순 선생이 결정의 중심이었다. 그를 포함해 뜻 있는 부녀회원 33명이 '백석올미영농조합'을 설립하고, 왕매실과 해나루쌀 조청을 조합한 한과와 매실장아찌 등을 만든다. 농촌 체험 마을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경기도 포천을 오가며 한과 명인에게 한과 만드는 법을 전수하는 등 부녀회원들과 힘을 모으니 주민 평균 나이 70세의 조용하던 마을에 새바람이 불었다. 할매들의 노력이 꽃을 피운 것이다. 지금은 전국 각지에서 연간 수천 명이 매실한과 만들기 체험을 하러 마을을 방문한다. 미리 준비해 둔 산자에 매실조청을 바르고, 직접 빻은 튀밥을 골고루 묻히면 금세 한과가 탄생한다. 폭신한 식감, 새콤달콤한 맛과 향이 미소를 자아낸다. 할매들의 따뜻한 정성이 마음에 곧장 와닿는 순간이다.
한편, 어린 김용세 명인에게 양조장은 놀이터였다. 1933년 양조장을 창업한 아버지 덕분에 막걸리 빚는 과정을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지에밥을 찌고, 누룩과 버무려 발효가 잘되도록 시간에 맡긴다. 얼마 후에는 뽀얀 막걸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명인의 아버지는 공들여 익힌 술을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마셨다. 서로 형편이 어려울 때는 술지게미를 나누기도 했다. 1970년, 김 명인은 '신평양조장'을 물려받은 뒤 생각했다. 막걸리에는 인간의 문화와 삶이 녹아들었다고. 맛있는 막걸리를 빚기 위해 본격적으로 독학을 시작한다. 선주조협회의 과 주조공업협회중앙회의 등을 파헤치며 양조법을 공부했다. 변함없는 품질의 막걸리를 만들고자 과학기술도 연구했다. 땀과 시간을 쏟아 탄생한 술은 총 네 가지. 말려서 덖은 연잎을 잘게 부수어 넣은 백련 막걸리 '스노우', 유리병에 담긴 '미스티' 생막걸리와 살균 막걸리, 해나루쌀로 만든 청주 '백련맑은술'까지 애정을 쏟지 않은 것이 없다. 그는 매일 아침 양조장에 들어서며 쌀이나 누룩, 맑은 물 등 막걸리 원료 앞에서 인사를 한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만드는 사람의 성실함과 겸손함이 좋은 술맛을 내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오늘도 신평양조장에는 술 익는 소리와 겸손한 김 명인의 목소리가 잔잔히 어우러진다.
또 다른 명인을 찾아 강원도 강릉으로 떠난다. '아침잠을 쫓기 위해' '오후 시간 입이 심심해서' 같은 이유로 버릇처럼 마신다. 하지만 커피에 오롯이 집중해 향과 맛을 음미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핸드 드립 커피의 대가 박이추 명인은 커피를 즐기는 사람은 늘었어도, 커피가 전하는 행복을 음미하는 사람이 줄어 안타깝다고 말한다. 그는 30년 넘는 세월 동안 커피를 내리며 '1세대 커피 전문가' '실력파 바리스타'로 불렸다. 일본에서 커피 공부를 마친 뒤 1980년대 후반 서울로 돌아와 차린 카페 '가베 보헤미안'이 그의 첫 발자국이었다. 그곳에서 직접 원두를 볶고 뜨거운 물을 부어 커피를 추출하는 핸드 드립 커피를 선보였다. 당시 제대로 된 원두커피를 맛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인 데다, 풍미 깊은 커피에 매료된 사람이 빠르게 늘어 성공은 자연스레 따라왔다. 명인은 2004년 강릉 바닷가로 터를 옮기고, 지금까지 '보헤미안로스터스박이추커피공장'에서 커피와 함께하는 중이다. 드립 포트를 들고 일정한 각도와 힘으로 뜨거운 물을 따르기에 손목에 무리가 오기도 하지만, 그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은 여전히 커피를 다룰 때다. 자신이 내린 커피 한 잔이 누군가의 삶에 행복이 되기를 소원하는 그의 일상은 늘 커피 향이 그윽하다.
다섯 가지 맛을 낸다 해서 오미자다. 한국이 원산지인 이 과실의 최대 생산지는 산 좋고 물 맑은 경북 문경이다. 지난 2008년 이 고장에 양조장 '오미나라'가 들어섰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오미자로 술을 빚는다. 그것도 와인이다. 오미자와 와인이라는 낯선 조합을 떠올린 건 이종기 명인. 지금은 오미나라 대표지만, 한국 1세대 마스터 블렌더로 명성을 얻었던 그다. 패스포트, 윈저, 골든블루 같은 위스키가 이 명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양조학을 공부하기 위해 1990년 스코틀랜드 유학길에 올랐는데, 유학생들이 자국의 술을 가져와 시음하는 자리에서 그가 내민 인삼주가 저평가를 받는다. 한국 술의 입지를 실감한 그는 유학을 마친 후 고향 집에 연구 공간을 만들어 한국 농산물로 양조 실험에 돌입한다. 원료와 양조 적성을 비교하던 명인은 신맛과 단맛, 쓴맛, 매운맛, 짠맛을 두루 가진 오미자가 더할 나위 없는 양조용 재료임을 확신하고 연구와 공부 끝에 첫 와인 '오미로제'를 개발한다. 특유의 시고 쓴 맛이 천연 방부제 역할을 해 발효가 쉽지 않은 오미자로 와인 한 병을 완성하기까지 총 3년이 걸렸다. 와인 발효실, 증류실, 숙성실 등 차례로 오미나라를 투어하며 오미자 술을 위한 명인의 정성과 세월을 가늠한다. 문경 산자락, 술 익는 소리와 향이 여행객을 유혹한다.
술이 발효되듯, 철 따라 재료 따라 김치는 변주를 거듭한다. 여름에는 열무, 가을이면 총각무로 담근 김치가 밥상에 오른다. 식생과 기후에 차이가 있어 지역마다 김치가 또 달라진다. 톳김치와 유채나물김치를 담그는 제주도, 말린 생태나 생오징어를 잘게 썬 김칫소를 쓰는 영동 지방 등 알수록 재미나다. 이처럼 무궁무진한 김치의 세계를 한층 확장하고자 하는 이가 이하연 명인이다. 전복김치, 홍어김치, 빙어김치 등 그가 개발한 김치만 수십 종에 달한다. 한정식 전문점을 운영하던 명인이 마흔 살 넘어 김치에 뛰어든 건 우연히 본 뉴스가 계기다. 2003년 강원도 지역의 폭우로 배추와 무 가격이 폭등해 중국산 김치를 수입한다는 소식을 들은 뒤 국산 식재료만 사용한 김치로 밥상을 지키기로 다짐했다. 품격 높은 김치를 꿈꾸기에 각 지역의 좋은 제철 재료를 엄선한다. 맛은 기본, 눈으로 즐기기에도 예쁜 김치를 담그기 위해서다. 2014년, 전복과 낙지 등 해산물을 섞어 버무린 '해물섞박지'로 농림축산식품부 전통식품명인 제58호에 지정되며 그간의 노력이 더 널리 알려졌다. 명인의 열정은 늘 현재진행형이다. 그가 이끄는 공간인 '봉우리찬김치&봉우리김치문화원'에서 김치의 우수성을 전파하고, 제대로 김치 담그는 비법을 수강생에게 가르친다. 명인의 김치 사랑은 익어 가는 김치처럼 나날이 더 깊어진다.
높이 매달린 줄 위로 줄광대가 아슬아슬하게 잔노릇을 선보일 때마다 보는 이는 가슴이 철렁하지만, 이내 재주꾼의 재담과 춤에 웃음이 피어난다. 201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줄타기는 고려 시대 기록이 남았을 정도로 오래된 기예인데, 관객과 하는 소통이 중요한 종합예술이다. 줄광대가 줄을 타고, 그 아래에서 어릿광대가 관객과 만담하는 중 삼현육각 연주가 펼쳐져야 비로소 신명 나는 공연이 된다. 경기도 과천은 이 같은 전통 줄타기의 본거지다. 줄타기의 최고 명사인 고 김관보 줄광대의 고향이며, 임상문 명인과 김영철 명인이 활동한 지역이다. 아홉 살 때부터 줄을 탄 김대균 명인 역시 스승 김영철 선생을 사사해 과천에서 줄타기를 이어 나간다. 줄타기와 그의 연은 한국민속촌에서 시작됐다. 과거 민속촌 직원은 전시 가옥에 거주할 수 있었다. 그의 가족도 직원이었기에 소년은 하교 후에 민속촌을 누비며 전통 놀이와 가까워졌다. 한국민속촌에서 공연한 김영철 명인을 만난 뒤 스승으로 모시면서 그의 진로는 명확해진다. 낮은 줄에서 높은 줄로 옮겨 가고, 점차 고급 기술을 연습한 끝에 열다섯 살에 첫 공연을 선보였다. 이후 50년 가까이 훌쩍 흘렀어도 그의 줄타기 인생은 현역이다. 관악산 자락의 과천야생화 자연학습장 내에 자리한 전통줄타기전수교육장에서 그와 전수생이 구슬땀을 흘린다. 아찔하고 생생한 즐거움이 영화나 게임 못지않다.
이번엔 흙과 불이 자아낸 빛나는 결과물, 도자기를 만나러 간다. 경북 문경에 가면 8대에 걸쳐 도자기를 만들어 온 가문이 있다. 조선 영조 시대 1대 김취정 사기장에서 출발해 관음리 가마터에 정착한 3대 김영수 사기장을 거쳐 현재 8대 미산 김선식 사기장이 명맥을 잇고 있는 관음요의 장인들이 그 주인공이다. 유구하고 아름다운 역사 앞에서 도공의 지난한 삶을 헤아려 본다. "가업을 잇는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지만, 도자기를 만드는 일상은 언제나 고됩니다. 가마 앞에서 16시간 동안 불을 지켜야 하니 결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지요." 인생을 불 앞에 바친 무형문화재 김선식 사기장의 태도는 겸허하기만 하다. 흙을 빚고 불에 구워 완제품을 제작하는 모든 과정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전기로 구운 도자기는 장작불로 완성한 도자기의 표면 빛깔과 촉감을 흉내 낼 수 없다. 그리하여 사기장의 최근 관심사는 '장작불 생활 자기'를 지향하는 브랜드를 론칭하는 것이다. 작품 수준의 생활 자기를 보급하기 위한 시도로, 최신 트렌드도 발 빠르게 녹여 냈다. 김선식 사기장은 자신의 작품 세계와 한반도 구석구석에서 귀한 다완을 한데 모아 놓은 '한국다완박물관'도 살뜰히 운영 중이다. 그의 목표는 더 많은 이가 한국 찻그릇과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누리는 것. 명인 덕분에 이 근사한 바람이 머지않은 날 이루어지겠다.
또 다른 명인이 강원도 춘천에 있다. 10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뜻을 전하기 위해 붓을 들었다. 온갖 메시지가 범람하는 디지털 시대, 한국에서 붓 만드는 사람은 몇이나 존재할까. 무형문화재 춘천필장 박경수는 열 명 남짓한 한국의 필장 중 한 사람이다. 1957년 전남 화순 태생으로 가업을 이어 붓을 쥔 그는 추운 강원도 지방에서 질 좋은 털을 구하라는 부친의 뜻을 받들어 1985년 춘천으로 이주, 현재까지 '경춘필방'을 운영 중이다. 이 작은 필방엔 날마다 전국 각지에서 우편물이 도착한다. 필장의 특기 중 하나인 태모필을 주문 제작하려 아이의 배냇머리를 보내온 것이다. 1991년 태어난 차남 박상현 춘천필장 이수자의 배냇머리로 만든 붓이 오늘날 태모필의 시작점인데, 훗날 장남인 박창선 춘천필장 이수자는 조선 시대 문헌에서 자식의 장원급제를 기원하는 의미로 태모필을 만들었다는 기록을 발견하기도 했다. 태모필만큼 필장의 명성을 드높인 닭털붓을 만날 차례다. 죽은 앵무새를 기려 조류 털로 붓 제작을 시도해 현재의 닭털붓에 이르렀다. 개성 넘치는 필치를 완성하게 하는 이 붓은 필장의 일생일대 역작이다. 필방 옆엔 한국 붓의 모든 것을 망라한 공간 '붓이야기박물관'도 자리한다. 소재와 쓰임에 따른 붓의 모습과 제작 과정을 보여 주고, 특별한 체험 코너도 마련한다. 붓을 들어 뜻을 펼칠 기회다.
조선 왕조의 본향인 전북 전주는 예나 지금이나 문화가 융성한 고장이다. 수많은 인재와 온갖 문물이 이합집산한 이 도시에서 발전한 전통 가구가 있으니, 바로 전주장이다. 전주와 완주 일대에서 제작해 널리 쓰인 전주장은 조선 후기 소목 전통과 유교 사상, 검박한 선비 문화를 집약한 물건이다. 비좁은 주거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자 반닫이장, 머릿장, 버선장 등을 복합적으로 구성한 생활 예술품이기도 하다. 일흔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쳐 온 무형문화재 소병진 소목장은 1992년 대한민국 명장 가구 제작 1호, 세 차례의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을 기록한 눈부신 재능의 소유자이자 전주장을 복원하고 현대화하는 일에 앞장선 인물이다.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며 뒤틀림 현상을 야기하는 목재를 다스리기 위해 전주 한지를 목재와 목재 사이에 접층하는 아이디어로 특허를 받기도 했다. 나아가, 좌식 문화에 적합한 옛 전주장을 오늘날 입식 문화에 맞게 설계하고 소재와 디자인을 보완하는 등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작업도 꾸준히 해 나간다. 소목장의 오랜 꿈은 전주장의 역사와 전통, 우수성을 일목요연하게 전시하는 박물관을 설립하는 것이다. 목수 일로 환갑이 되는 2025년에 성대한 회고전을 열어 작품 61점을 선보일 거라는 그의 표정에서 전통 가구의 창창한 미래를 엿본다.
이번엔 전통 건축을 만나러 떠난다. 농암종택은 경북 안동 도산면 가송리, 청량산이 사방을 두르고 낙동강이 태극 문양으로 휘도는 산수화 속에 들어앉았다. 농암이 누구인가. 1467년 안동에서 태어나 연산군∙중종 대에 벼슬에 오른 농암 이현보 선생은 평생 선비의 가치를 실천한 이다. 학문과 문장에 탁월한 것은 물론, 혼란한 시기에 목민관의 삶을 자청하며 성주∙밀양∙충주∙대구∙경주 등 부임지마다 선정을 베풀었다. 가난한 이를 보면 사재를 털어 돕고, 양로 잔치를 열 때 남녀와 귀천 관계없이 한자리에 초청한 신념은 길이 우러를 만하다. 그런 선생의 650년 종택과 집성촌 영천 이씨 마을이 1974년 안동댐 건설로 수몰 위기를 맞아 뿔뿔이 흩어졌다. 17대손 이성원 종손의 나이 18세에 벌어진 일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지만 내내 마음 무거운 짐이었다. 결국 발 벗고 나섰다. 옛 마을을 닮은 땅을 10년 만에 발견했다. 이 땅을 구입하기까지 또 10년, 산재한 건물을 이건하기까지 다시 10년. 종손의 집념 덕분에 농암종택과 영천 이씨 집성촌이 원래 모습을 찾았다. 의미 깊은 종택에 집성촌을 통째로 옮겨 온 기적의 마을. 산수화 속에 머물러 풍경을 감상하면서 어제를 돌아보고 내일을 도모한다. 농암 선생과 이성원 선생의 뜻, 지혜가 함께한다.
강원도 원주 고판화박물관에 가면 자신을 '판화에 미친 사람'이라고 말하는 한선학 관장을 만난다. 젊은 시절, 대학교 불교미술과에 합격한 그는 입영 통지서를 받는다. 군종 장교 시험에 합격하고 종교인의 길을 걷다 국방부 법당 주지로 있던 때, 중국으로 성지 순례를 떠나 도자기 불상을 구입한다. 고미술에 작은 관심이 싹텄다. 서울 인사동에서 지장보살 목판이 눈에 띄었다. 1만 원짜리 중국 옛 목각판을 손에 넣었다. 진리를 구하는 승려이면서,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한 그는 판화에 빠져들었다. 판에 새긴 내용은 얼마든지 다시 찍어 널리 전파하는 일이 가능하다. 판화란 인류에 큰 발전을 가져온 도구인 동시에 그 자체로 예술 작품이다. 전율을 느낀 그는 수집이라는 행복한 고행을 시작한다. 그만큼 열렬하게 수집했다. 한국 곳곳을 누비고 중국∙일본∙티베트∙몽골을 오가며 모은 유물이 6000여 점에 이른다. 김홍도가 그린 목각판, 한석봉의 목각판 등은 박물관의 자랑을 넘어 인류의 유산이다. 세계의 수집가와 학자가 그의 열정과 전문성에 찬사를 보냈다. 이 소중한 유물을 치악산 자락에 펼쳤다. 사찰 명주사를 짓고 2003년 고판화박물관을, 2017년에는 작은 도서관을 열었다. 수려한 산세 속에서 유물을 관람하고 판화를 체험한다. 한국 유일의 고판화박물관이다.
한때는 생활 필수품이던 옹기. 흙으로 빚은 그릇은 기계로 대량생산한 플라스틱 그릇이 담지 못하는 가치를 지닌다. 음식은 생명, 흙도 생명이라 흙에서 태어난 옹기는 가장 건강한 그릇이라 할 수 있다. 과거엔 흔했으나 요즘은 드물어진 옹기의 한국 최대 산지가 울산 울주군 외고산옹기마을이다. 허진규 옹기장은 이 마을에서 태어나 3대째 옹기 한길만 걸어왔다. 열다섯에 처음 흙을 만지고 어느새 40여 년 세월이다. 옹기장인 선친이 옹기가 사양산업이라며 다른 일을 권유하기도 했으나 누군가는 명맥을 이어야 한다 생각했다. 실제로 고비도 수차례 겪었다. 값싸고 편리한 플라스틱 용기가 넘쳐나는 세상에 옹기가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또래 가운데 유일한 제자였다. '나라도 한다.' 마음에 새기고 또 새겼다. 온 마을 도공을 스승 삼아 그저 실력을 키웠다. 결국 그 우직한 다짐과 빼어난 실력이 빛을 보는 날이 왔다. 숨 쉬는 그릇 옹기의 우수성이 주목을 받았고, 그의 옹기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여러 대회에서 수상하고 세계에 나가 시연하면서 한국 전통 옹기의 특별함을 알렸다. 지난한 과정, 묵묵한 노력, 빛나는 결말. 허진규 옹기장은 '옹기골도예'에서 여전히 흙을 빚는다. 그릇뿐 아니라 우산꽂이 같은 생활용품, 스피커까지 옹기의 영역은 방대하다. 장인의 손길 덕분에 아주 세련된 옹기가 일상에 안착했다.
이번엔 낙동강이 지나는 경북 상주로 떠나 본다. 물이 풍부하고 땅이 비옥한 이 곳은 경상도 이름 한 축을 담당한 도시로 쌀과 누에고치, 곶감이 유명했다. 지금도 상주시 함창읍의 '함창 명주'는 품질 높은 명주를 대표한다. '허씨비단직물' 허호 대표는 5대째 명주를 다루는 장인이다. 어린 시절부터 고치 삶는 냄새를 맡으며 자랐고, 빈 물레를 신나게 돌리면서 놀았다. 20대에 결혼하고 본격적으로 명주 짜는 일에 나섰다. 당시만 해도 명주는 으레 수의를 짓는 용도로만 생각했다. 저렴한 합성섬유가 밀어닥치고 전통 섬유는 사라지는 때였다. 허호 장인은 이 좋은 명주가 수의용 옷감에 머무르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살아 있는 사람의 옷을 제작하고 싶었다. 고민하던 어느 날 옥사(玉絲)가 눈에 띄었다. 한 고치에 누에 두 마리가 들어가 실 굵기가 불균등하고 마디가 생겨 불량이라 외면받던 실이다. 발상을 전환해, 마디를 무늬로 만들었다. 색다른 명주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천연염료의 다양한 색과 문양을 표현하는 연구를 거듭하고 감물 염색에도 성공했다. 더 이상 명주는 사양산업이 아니다. 옛 방식에 현대의 감각이 어우러진, 내일로 가는 전통이다.
몸담은 일을 벗어나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기란 쉽지 않다. '허브나라농원' 이호순 대표는 25년간의 직장 생활을 뒤로하고 물 맑고 공기 좋은 평창으로 귀농했다.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며 대기업 계열사 CEO를 역임했던 그는 아내와 나이 도합 100세가 되던 해 '농촌에 가서 살자'라는 결혼 당시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농부가 되기로 결심했으나 초보 농사꾼에게 농사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키울 작물 먼저 정해야 했다. 이 대표는 나와 타인, 모두가 즐거운 농사를 짓고 싶었다. 고민 끝에 결정한 작물은 허브. 향기롭고 아름다운 데다 약초와 식재료로도 쓰이는 이로운 작물이라 판단해서다. 땅에서 돌을 고르는 것부터 시작해 다양한 품종의 허브를 심고 애지중지 가꾸니 허브나라농원은 허브 천국이 됐다. 점차 면적을 확장해 3만 3000제곱미터(약 9900평) 규모로 커진 이 농원은 팔레트에 짠 물감처럼 색색의 허브와 꽃이 피는 '팔레트 가든', 셰익스피어 작품에 등장하는 허브로 꾸민 '셰익스피어 가든' 등 테마 공원 열 개로 구성해 볼거리가 풍성하다. 기업인에서 농부로, 도시에서 자연으로 직업과 터전을 바꾼 이 대표는 이제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자연과 사람, 그렇게 더불어 살기에 행복하다. 농원에서 흐드러진 허브를 눈에 담고, 허브 향기에 취하니 마음을 내려놓고 쉬어 가기 좋다.
정봉채 사진가는 거의 매일 카메라를 들고 우포늪으로 나간다. 그 세월이 20년을 훌쩍 넘었다. 우포늪의 하루하루가, 그렇게 모인 22년이 그의 사진에 담겼다. 1998년 람사르습지로 등록된 우포늪은 수많은 생명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생태계 보고다. 총면적 250만 제곱미터(약 75만 6000평) 광활한 습지에 식물 800여 종을 비롯해 다양한 조류, 어류 등이 서식한다. 하동 출신으로 부산에서 청년 시절을 보낸 그는 고등학생 때 처음 사진기를 잡았다. 번듯한 직업을 갖고도 언제나 사진을 놓지 못해 자연으로 숨어들어 셔터를 누르곤 했다. 그러다 '늪에 빠졌다'. 우포늪에 가득한 야생의 생명력이 가슴을 뛰게 했다. 숱하게 늪을 찾는 동안 안타까운 현실이 차츰 눈에 들어왔다.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자꾸만 늪이 훼손되고 있었다. 위기감은 책임감을 불렀다. 누구라도 기록해야 했다. 스스로 '우포늪 사진가'가 되어 오래 응시하고 조심스럽게 촬영했다. 계속된 야외 촬영에 건강이 상하기도 했지만, 우포늪과 생명을 향한 사랑은 늪처럼 깊어졌다. 때때로 조급하고 복잡해지는 마음 또한 늪이 정화해 주었다. 한국 최고 우포늪 전문가이자 사진가인 그가 2021년 갤러리를 열고 손님을 맞는다. 늪 사진도, 명사의 꾸준함도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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