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 정복 박찬호, 빗장 푼 SUN, 첫 포스팅 류현진, 1.13억 달러 이정후까지...기념비적인 해외진출 개척자들
[OSEN=이선호 기자] '바람의 손자' 이정후가 해외진출사의 한 획을 그었다.
키움 히어로즈 지난 13일 이정후(25)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6년 1억1300만 달러(한화 약 1465억 원, 14일 환율 기준)의 초대형 계약을 했다. 아시아 출신 타자로는 역대 최고 대우이다. 7년 연속 3할타율, 통산 3할4푼, 타격왕 2회, MVP 1회 등 KBO 간판타자의 대우를 받았다. 메이저리그 진출사에서 역대급 계약으로 여겨진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해외진출은 먼나라 이야기였다. 아마시절 국가대표 에이스 최동원과 선동열이 각각 메이저리그의 손짓을 받았으나 진출을 허락되지 않았다. 서슬퍼렀던 시기에 병역 문제가 발목을 잡았고 프로에서는 국내리그 활성화라는 논리에 막혀 해외진출은 언감생심이었다.
해태에서 10년동안 리그를 평정하고 더 이상 이룰 것이 없었던 선동열이 빗장을 풀었다. 1995시즌을 마치고 은퇴 배수진을 치고 일본 진출을 선언했다. 여론도 뜨겁게 반응했고 결국 "여론조사해서 찬성하면 보내겠다"는 박건배 구단주의 결단으로 주니치 드래건스에 임대 형식으로 입단했다. 주전 마무리 투수로 1999년 센트럴리그 우승을 이끌며 일본에서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했다.
선동열의 주니치 입단은 KBO리그 선수의 첫 해외진출이라는데 의미가 있었다. 이후 이종범, 이상훈, 정민철, 정민태, 구대성, 이승엽, 이병규, 임창용, 이대호, 오승환 등이 일본리그 진출 러시가 이어졌다. 물론 부진한 성적을 거둔 선수도 있었만 일본리그에서 우등성적을 내며 한국야구의 위상을 높였다.
아마쪽에서는 박찬호가 메이저리그 개척에 나섰다. 1994년 1월 한양대학교 투수였던 박찬호는 LA 다저스와 계약금 120만 달러를 받고 전격 입단해 세간을 놀라게했다. 박찬호는 그 해 곧바로 빅리그 데뷔 등판을 했다. 이후 2년 동안 마이너리그에서 제구와 구위를 끌어올려 1996년부터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우뚝섰다. 다저스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ML 통산 124승을 거두었다.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정복은 수 많은 유망주들의 미국행으로 이어졌다. 최희섭(시카고 컵스), 김병현(애리조나 다이아몬드 백스), 서재응(뉴욕 메츠) 등 광주일고 트리오가 모두 대학재학 도중 미국으로 건나가 메이저리거로 성장했다. 추신수는 부산고를 졸업하고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했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메이저리그 정상급 타자로 성장해 텍사스 레인저스와 7년 1억 3000만 달러의 FA 잭팟을 터트렸다.
KBO리그 출신의 메이저리그 직행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박찬호처럼 아마 유망주로 미국 구단과 마이너 계약해 그곳에서 성장하는 식이었다. 이런 패턴을 공식적으로 깬 선수가 류현진이었다. 한화 에이스이자 한국야구의 간판투수로 2012시즌을 마치고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진출에 성공했다. LA 다저스와 6년 3600만 달러의 계약을 했다. 류현진이 다저스의 선발진의 기둥으로 활약하면서 KBO 출신 선수의 빅리그 직행도 활발해졌다.
강정호(피츠버그 파이어리츠), 박병호(미네소타 트윈스), 김현수(볼티모어 오리올스), 황재균(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윤석민(볼티모어), 김광현(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양현종(텍사스 레인저스),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등이 빅리그 무대를 밟았다. 이대호(시애틀 매리너스)와 오승환(세인트루이스)은 일본무대에서 거둔 우등성적을 앞세워 메이저리거가 됐다. 강정호와 김하성 등 한국산 야수들도 메이저리그에서도 충분히 통한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이정후의 1억1300만 달러 계약은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포스팅시스템으로진출하면서 1억 달러 이상의 계약을 KBO리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성사시켰다는 점이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400억 원이 넘는 거액이다. 역대 일본 리그 선수들까지 더해도 다나카 마사히로(1억5000만 달러)에 이어 역대 2위에 해당하는 돈이다.
이정후의 1억 달러 돌파는 국내 아마선수들은 물론 KBO리그 선수들에게도 큰 자극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KBO리그에서 커리어를 쌓으며 성공해도 천문학적인 대우를 받고 진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좁은 무대에 안주하지 않고 큰 물에서 뛰고 싶은 동기부여를 제대로 해준 셈이다. '제 2의 이정후'가 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sunn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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