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고 재고 달며 세계를 이해한 인류…신간 '측정의 세계'

송광호 2023. 12. 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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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물쇠가 채워진 프랑스의 한 지하실 금고.

영국 언론인 제임스 빈센트가 쓴 '측정의 세계'(까치)는 손으로 숫자를 세던 과거부터 우주의 깊이를 측정하는 오늘날까지 만물을 세고 재고 달며 세계를 이해한 인류의 순간들을 담은 책이다.

책에는 이 밖에도 토지를 측량하면서 그려진 지도가 제국주의 확장에 나침반 역할을 했다는 점, 평균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우생학이란 비극적 결과로 이어졌다는 점 등 측정을 둘러싼 다채로운 서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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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로그램원기 [EPA=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자물쇠가 채워진 프랑스의 한 지하실 금고. 철통같은 보안이 지켜지는 그곳에 보관된 귀중품은 커다란 다이아몬드도 귀금속도 아니다. 백금으로 주조된 그저 그런 금속 인공물일 뿐이다. 그러나 프랑스인들은 다이아몬드보다 이 금속을 훨씬 더 중요하게 다룬다. 세 개의 유리관으로 둘러싸여 있어 금속에는 먼지조차 쌓이지 않는다. 이 금속의 명칭은 '르 그랑(le grand) K'. 세계 모든 무게의 기준이 되는 '킬로그램원기'다.

원기를 쓰면서 인류는 적어도 무게에 관한 한 공통된 '언어'를 갖게 됐다. 프랑스에서도, 독일에서도, 아니 지구촌 거의 모든 곳에서 통용되는 '무게 언어'를 지니게 된 것이다.

영국 언론인 제임스 빈센트가 쓴 '측정의 세계'(까치)는 손으로 숫자를 세던 과거부터 우주의 깊이를 측정하는 오늘날까지 만물을 세고 재고 달며 세계를 이해한 인류의 순간들을 담은 책이다.

책 표지 이미지 [까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측정이 시작된 건 3만여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늑대 뼈에 파인 홈을 통해 고대인들은 숫자를 표시했다. 하나, 둘, 셋, 넷을 표시한 다음 선을 긋거나 빗금을 치거나 갈고리처럼 묶는 방식으로 다섯을 표기했다.

문명이 시작되면서 측정은 좀 더 복잡해졌다. 강이 범람하면 토지를 다시 측정해야 했다. 곡물 무게도 재야 했다. 그러나 지역마다 측정값은 조금씩 달랐다. 개인 간 분쟁이, 그에 따른 사회 혼란이 발생했다.

고대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인들은 측정 기준값을 정하려 노력했다. 왕들도 사회 혼란을 막고자 저마다 도량형을 통일하는 걸 숙원사업으로 여겼다.

측정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수학과 과학이 발달했다. 옥스퍼드 계산학파, 갈릴레오, 뉴턴 등이 등장하면서 측정 분야는 진일보했다. 새로운 저울, 자, 온도계 등 다양한 도구도 등장했다.

저자는 이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른 측정의 역사를 세밀하게 추적하는 한편, 측정에 얽힌 다양한 이야깃거리도 소개한다.

1894년 국제미터원기 [행정자치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가령, 표준 길이로 1미터가 탄생한 배경에는 프랑스 혁명이 있었다.

혁명 정부는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을 확립했지만, 정치인 탈레랑은 법 앞에 평등해진 시민들이 불평등한 도량형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정부는 미터법 개발에 착수했고, 과학자들은 7년에 걸친 자오선 조사와 계산 끝에 비교적 합리적인 미터법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책에는 이 밖에도 토지를 측량하면서 그려진 지도가 제국주의 확장에 나침반 역할을 했다는 점, 평균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우생학이란 비극적 결과로 이어졌다는 점 등 측정을 둘러싼 다채로운 서사를 전한다.

저자는 "측정 위에 세워진 사회, 측정이 만연한 사회에서 우리는 측정이 어떤 목표에 기여하는지, 궁극적으로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장혜인 옮김. 440쪽.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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