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인스토밍의 새로운 화두[이태석의 경영 전략]

2023. 12. 14.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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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전략]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 너무도 흔한 단어다. 여러 사람의 생각을 모으면 마치 두뇌 폭풍(Brain+Storm)처럼 집단지성을 얻는다는 뜻이다. 조직에서 문제해결이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도출할 때 자주 등장한다. 이것은 직급 상관없이 자유로운 발언권이 보장된 환경이라야 그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런데 과연 현실은 어떨까.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많다. 워크숍에 한 번이라도 참여해 본 사람이라면 그 느낌이 올 것이다. 도대체 왜 그럴까.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미국의 유명 작가 수잔 케인은 자신의 저서 ‘콰이어트’에서 그 이유를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첫째는 사회적 태만이다. ‘링겔만(Ringelmann) 효과’라고도 부르는 이 현상은 집단으로 공동 작업을 할 때 자주 나타난다. 작업 인원이 증가함에 따라 인당 과제 수행능력은 도리어 감소하는 현상을 말한다. 여러 사람 속에 있다 보면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에 기인한다.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토론이 굴러간다고 생각하면 뒤로 몸을 기댄 채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고 그저 구경만 하는 것이다. 인간이 가진 태생적 심리 중 하나다.

둘째는 생산적 봉쇄다. 브레인스토밍의 효과는 참가자들의 생산적 참여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토론은 한 번에 한 사람만 말을 할 수 있다. 나머지는 수동적으로 묵묵히 앉아 있게 된다. 자신에게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다른 사람들의 발언에 의해 막히거나 차단당하는 것이다.

셋째는 평가불안이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려는 순간 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간다. 혹시 동료들 앞에서 멍청해 보이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생긴다. 두려움으로 인해 말하기를 주저하거나 꺼리게 된다. 결국 말 많고 목소리 큰 몇몇 사람들 위주로 토론은 흘러가게 된다.

어떤가, 공감이 가는가. 그렇다면 이때까지 조직은 시간 낭비를 했다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제대로 이해하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알렉스 오스본의 브레인스토밍 규칙

알렉스 오스본이라는 전설적인 광고업자를 아는가. 그는 20세기 초반에 동시대인들을 사로잡은 전설적인 르네상스 인간이었다. 광고 에이전시 ‘BBDO(Batten·Barton·Durstine & Osborn)’의 공동설립자였던 그는 고객사로부터 의뢰받은 광고 카피를 만들 때마다 고민이었다. 매번 새로운 광고 문안이 필요했지만 직원들이 충분히 창의적이지 않아서다.

이 문제에 대한 그의 해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SCAMPER(Substitute(대체하기)·Combine(결합하기)·Adapt(응용하기)·Modify-Magnify-Minify(수정-확대-축소하기)·Put to other uses(용도 변경하기)·Eliminate(제거하기)·Rearrange-Reverse(재배치하기-거꾸로 하기))이었고 또 다른 하나가 브레인스토밍이었다. 핵심 원칙은 멤버들이 절대 비판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네 가지 규칙이 있다.

첫째, 아이디어를 비판하거나 심판하지 마라. 둘째, 자유분방하게 아이디어를 내라.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일수록 좋다. 셋째, 양을 늘려라. 아이디어가 많을수록 좋다. 넷째, 동료들의 아이디어를 토대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더해 나가라.

그는 혼자 아이디어를 내는 것보다 집단으로 하는 것이 더 낫다고 굳게 믿었다. 비판이나 심판, 판단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난다면 말이다.

실제로 한 그룹은 가정용 전자제품 홍보 아이디어를 45개 내놓았고, 기금 모집 캠페인은 56개, 담요 판매 활성화 방안으로는 124개를 내놓았다. 또 다른 사례에서는 무려 800개가 넘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브레인스토밍이 ‘아이디어 뱅크’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이후 오스본의 이론은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고 기업 리더들은 열정적으로 브레인스토밍을 받아들였다. 이것이 오늘날까지도 이어진 것이다.

 

 브레인스토밍의 심리적 저항감과 사회적 압력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브레인스토밍은 구성원들의 아이디어를 모으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주 훌륭한 도구임에는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리적 요소는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는다. 오스본 이론에서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여러 사람 앞에서 수치를 당하는 일을 두려워한다.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가 자신에게 자극이 되는 것은 사실이나 동시에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그 스트레스는 평가 불안과 판단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 두 가지 문제점은 우리가 그것을 어찌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

또 다른 요소는 ‘집단의 사회적 압력’이다. 사람들은 혼자 있을 때는 독립적인 사고를 한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집단으로 있을 때는 그렇지 않다. 개인이 생각하는 바가 있지만 그룹 형태로 아이디어를 교환할 때는 자신도 모르게 압력을 받는다. ‘나는 다르다’라고 장담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어처구니없는 실험이 이를 증명한다. 그것은 잘 알려진 솔로몬 애쉬의 ‘동조 실험’이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인 그는 학생자원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시각 테스트를 받게 했다.

학생들에게 서로 길이가 다른 3개의 선을 보여주고 서로 비교해 보도록 질문을 던졌다. 어떤 것이 길었는지, 또는 어떤 것이 4번째 선과 길이가 같았는지 등이었다. 이런 질문은 매우 단순해 학생의 95%가 모든 질문에 옳게 답을 했다.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애쉬가 그룹에 연기자를 섞어 그들에게 그릇된 답을 ‘자신 있게’ 말하게 했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놀랍게도 정답을 모두 맞힌 학생이 25%로 급감했다. 75%는 적어도 한 개의 질문에 엉뚱한 답을 따라갔다는 말이다.

동조의 힘이 입증되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생각해보자. 정말 선의 길이에 대한 인식이 변한 것인가, 아니면 또래 압력 때문인가. 이도 저도 아니라면, 알고 있으면서도 괜히 남들 앞에서 튀기 싫어서 틀린 답을 했을까.

즉 집단 때문에 인식이 바뀌었는지, 아니면 집단의 답이 틀렸다는 점을 알면서도 동조했는지 말이다. 어느 쪽이든 집단의 사회적 압력이 개인의 판단 능력도 방해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브레인스토밍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컬럼비아 경영전문대학원 석좌교수 시나 아이엔가는 ‘초이스 맵(Choice Map)’이라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는 브레인스토밍이 훌륭한 도구이기는 하나 구성원들이 가진 정보가 부족할 때에는 질 낮은 아이디어만 쏟아낼 뿐이라고 주장한다. 참가자에게 무제한의 선택지를 주어선 안 되고, 선택권을 어느 정도는 부여하되 명확한 제약조건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가장 큰 문제를 먼저 파악하고 이를 정의한 다음, 하위 문제로 세분화하라는 것부터 시작한다. 예를 들어 대형병원에서 기증된 장기를 안전하게 운송하는 것이 문제라고 하자. 이때 가장 좋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 아래와 같은 하위 질문으로 이어진다.

*어떻게 하면 기증된 장기를 위생적인 상태로 운송할 수 있을까?
*기증된 장기를 적절한 온도에서 보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장기 운송과 관련한 가장 큰 위험은 무엇인가?

초이스 맵에 이런 하위 문제를 나열한 후에는 ‘선례(Precedents)’라고 부르는 해결책을 찾는다. 선례는 하위 문제가 있는 동일한 영역 안에서 찾을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영역에서 찾을 수도 있다.

이런 방식으로 무제한의 선택지를 주기보다는 참가자들에게 기존의 선례에서 찾도록 유도하면 심리적 저항감이나 사회적 압력이 비교적 줄어들 수 있다. 또한 조금 더 현실적인 해결책에 가까운 옵션을 찾을 수 있다.

이태석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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