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소상공인도 지원할 수밖에요" 상생금융에 눌린 은행의 고민
빚으로 연명 소상공인도 '상생'…자칫 더 큰 '부실'
은행들이 사실상 재기 가능성이 없는 소상공인들에게 내어준 대출을 정리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 모양새다.
금융당국이 주문하고 있는 상생금융의 핵심 지원 대상은 소상공인들인데, 회생 가능성이 없는 소상공인이더라도 일단 지원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관측되면서다.
은행권에서는 일반 기업체 뿐만 아니라 소상공인들의 상황을 면밀히 점검한 뒤 이들에 대한 구조조정도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3년동안 65조 늘어난 개인사업자 대출
소상공인들이 은행들로부터 얼마나 대출을 받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개인사업자 대출은 지난 2020년이후로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소상공인들의 생존을 위해 금융당국이 민간 금융사에 대출 문턱을 낮출 것을 요구한 결과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에는 3고(고금리, 고물가, 고환율)로 인해 경제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이같은 기조를 이어갈 것을 주문했다.
이 결과 2020년 386조원이던 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 잔액은 올해 11월 말 451조2000억원으로 65조2000억원 폭증했다. 연간 약 20조원씩 늘어난 셈이다.
은행들의 가장 큰 고민은 이렇게 내어준 대출이 얼마나 잘 상환되는지 좀처럼 가늠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정부가 이들의 빚 부담을 감내해주기 위해 이자상환유예, 만기연장 등의 조치를 취해온 덕에 부실화하는 대출채권을 솎아내기 힘들다.
실제 올해 9월 기준 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0.46%를 기록했다. 상대적으로 연체율이 낮게 기록돼온 가계 신용대출 연체율 0.65%보다 낮은 수준이다.
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추진했던 이자상환유예와 만기연장 등의 조치는 종료됐고 이제는 민간 금융사가 직접 채무재조정에 나서고 있는 단계"라며 "통상 3년가량은 이같은 조치가 유지되므로 부실화하는 대출채권 규모와 추이 등을 살펴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상생금융의 나비효과…자칫 더 큰 부실로
은행들은 앞으로도 소상공인 대출을 중심으로 개인사업자 대출 잔액이 큰 폭의 증가세를 보일 것으로 보고 있다. 경기가 회복되는 속도가 둔화하면서 소상공인들의 시름이 깊어지자 금융당국이 은행들에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안, '상생금융' 방안을 내놓을 것을 주문하면서다.
일단 은행들은 현재까지 구체적인 상생금융방안을 내놓고 있지는 않지만 경기둔화에 가장 타격이 큰 것으로 점쳐지는 소상공인들에게 맞춤형 대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현재 은행들이 가장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방안은 고금리대출을 더 낮은금리로 대환해주는 대출이다.
문제는 대환 대출 시 계약이 새로 갱신되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만기연장'의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연체가 시작된 차주들도 새로운 대출로 기존의 대출을 모두 상환하게 되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은행의 연체율 등 건전성이 개선되는 착시효과가 나타난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계약이 새로 갱신되면서 이전의 대출은 모두 상환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단기간으로는 이들에 대한 리스크가 낮아지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좀비' 소상공인에 대한 고민
녹록지 않은 경제상황이 이어지면서 은행들의 핵심 경영 전략은 리스크 관리다. 다만 소상공인 대출에 대해서는 이러한 리스크 관리를 촘촘하게 하기 어렵다는 것이 은행들의 현재 상황이다.
은행 관계자는 "코로나19 금융지원과 상생금융 모두 소상공인들에게 집중적으로 공급되는데 이 과정에서 상환능력, 향후 전망 등은 크게 고려되지 않는다"며 "사실상 원한다면 모두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서는 부실화 가능성이 있는 대출채권은 매각 혹은 상각처리해 건전성을 유지하고 싶은 것이 당연한 이치"라면서도 "하지만 일단 지원을 하는 것으로 방향이 잡혔으니 쉽게 정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 경우 자연스럽게 빚으로 연명하는 '좀비' 소상공인들에게도 지원이 지속된다는 것이 은행들의 고민이다.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상황이 이어진다는 얘기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내년부터 금리가 내려간다 하더라도 여전히 고물가 등이 이어지면서 소상공인들의 고정 비용이 크게 줄어들지는 않을텐데 이는 소상공인들이 앞으로도 빚을 갚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질 것이란 의미"라며 "은행의 리스크 관리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비용을 고려하면 소상공인들에 대한 대출 중 상환능력이 떨어지는 대출은 과감하게 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지금처럼 지원으로 연명하는 경우 금융지원 방안이 종료된 이후에 단기간에 부실채권이 대거 발생하고 경제에 충격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경남 (lkn@bizwatch.co.kr)
ⓒ비즈니스워치의 소중한 저작물입니다. 무단전재와 재배포를 금합니다.
Copyright © 비즈워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