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에 ‘누구나 무료버스’ 바람…“진짜 좋다카이”
‘선별 무료’는 이미 전국화
“버스 탈 때 잔돈 안 꺼내도 되니 얼매 편하고 좋노. 우리 청송이 그거 하나 진짜 좋다카이.”
지난 12일 경북 청송 진보전통시장 앞 터미널에서 버스를 탄 박금오(67)씨가 양손에 장바구니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박씨는 장을 본 뒤 버스로 10분 거리인 집에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버스비 안 내는 기 우리는 벌써 습관이 됐니더. 그 전에는 어지간한 볼일은 장에 나가는 사람한테 부탁했는데, 요새는 안 바쁘면 내가 버스 타고 다 댕깁니더. 친구들허고 버스 타고 주왕산도 댕기고, 가면 막걸리도 한잔하고 참말로 좋습니더.”
교통복지·경제활성화 ‘두 토끼’ 잡기
청송군은 지난 1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버스 요금을 전면 무료화했다. 청송군민은 물론 관광객 등 외지인도 공짜다. 터미널에서 발매하던 종이 승차권도 없어졌고, 버스 출입문 앞에 있던 요금통도 모두 사라졌다. 버스 앞에는 ‘청송군 농어촌버스(청송버스) 무료 운행!’이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청송군에는 63개 노선, 18대 버스가 운행 중이다.
청송읍에 사는 배아무개(23)씨는 “예전에는 티켓을 일일이 구매하거나 현금을 준비해야 하는 게 번거로웠다. 요금이 1300원이라서 늘 동전이 생겨 불편했는데, 이제 몸만 와서 버스를 타면 되니까 훨씬 편하다. 배차 간격이 길다는 것만 빼면 완벽하다”고 말했다.
버스를 무료로 운행하기 시작한 뒤 청송군은 버스 이용객이 지난해보다 25~30%가량 늘어난 것으로 추산했다. 하루 평균 승객은 지난해 800명에서 올해는 1천명가량으로 늘었다. 버스 기사 김아무개(60)씨는 “지난해까지는 종점까지 빈 차로 운행할 때도 잦았다. 아무래도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 승객이 많다 보니 버스 운행을 할 때도 더 안전하게 하려고 신경쓰게 된다”고 말했다.
청송군은 버스를 운행하는 ㈜청송버스에 탑승료 수익 명목으로 연간 3억3천만원을 지원한다. 애초 청송군은 65살 이상 인구와 어린이·청소년만 요금을 무료로 하는 방안도 고민했지만 군민의 40%가량이 65살 인구이고, 65살 이상 인구와 어린이·청소년을 제외한 경제활동인구의 버스 이용률은 10% 남짓해 전면 무료 운행하기로 결정했다.
청송군은 버스 요금 무료화가 보편 복지와 경제 활성화라는 ‘일석이조 효과’를 거뒀다고 자평한다. 이명희 청송군 교통행정팀장은 한겨레에 “군 단위 버스 노선은 승객이 많지 않은 비수익 노선이 많지만, 지역에서는 유일한 대중교통이다. 군 예산을 투입해 보편적 교통 복지를 실현하고, 동시에 투입 예산 대비 10배의 경제 효과도 거두었다”고 덧붙였다.
전국 곳곳 ‘선별적 무료 버스’로 효과 톡톡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선별적 무료 버스 정책은 이미 곳곳에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정책을 도입한 곳은 전남 신안군이다. 신안군은 2008년 버스완전공영제를 시행하면서 65살 이상 승객의 버스 요금을 무료화했다. 녹색전환연구소가 지난 9월 발표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전라남도 녹색일자리 창출 방안’ 보고서를 보면, 신안군의 연간 버스 이용객은 공영제와 무상교통 시행 전 19만여명에서 시행 뒤 65만여명으로 3.4배 늘었다.
수도권에서는 경기 화성시가 가장 먼저 무료 버스를 시작했다. 화성시는 2020년 7~18살 아동·청소년 버스 요금을 무료화해 지금은 6~23살 아동·청소년·청년과 65살 이상 노인에게 관내 버스 요금을 지원하고 있다. 화성시는 이를 “교통 부분의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정책”이라고 소개한다.
화성시 역시 선별적 무료화 뒤 버스 이용이 늘었다. 2021년 아주대 조사팀이 발표한 ‘화성시 무상교통사업 성과평가 용역 보고서’를 보면, 버스 하루 평균 통행량은 버스 요금 무료화 시행 뒤 아동·청소년이 8.2%, 노인이 7.1% 늘었다. 여기에 △통행시간 절감, 교통사고 감소, 차량운행비용 감소 △대기오염비용 절감, 온실가스 저감 △스트레스 감소에 따른 사회비용 절감 △경제활성화 등 모든 지표에서 긍정적 효과를 거둬 모두 129억6천만원의 경제 효과를 낸 것으로 분석됐다. 당시 코로나19 상황임을 고려하면 실제 효과는 167억2천만원으로 추산됐다.
선별적 무료 버스는 광역 단위로도 이어지고 있다. 충남도는 2019년부터 75살 이상 노인에게 버스를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대구시는 지난 7월부터 75살 이상, 대전시는 지난 9월부터 70살 이상 노인에게 버스 요금을 받지 않는다. 70살 이상 노인에게 버스 요금을 면제하던 제주도는 지난 7월부터 읍·면 거주 65살 이상 노인에게도 버스를 무료로 탈 수 있게 했다. 부산시는 지난 10월부터 12살 이하 어린이의 버스 요금을 무료화했다.
농어촌은 ‘청송발 전면 무료 버스’ 확산지역소멸 위기에 놓인 농어촌 지역에선 청송발 ‘누구나 무료 버스’가 확산 중이다. 전남 완도군은 지난 9월부터 관내 69개 노선, 버스 35대 전부를 무료로 운행하기 시작했다. 경북 봉화군도 내년 1월부터 버스 무료 운행을 시작한다. 봉화군은 교통 복지 향상이 소멸 위기에 놓인 농어촌의 인구 유출 속도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충북 진천군은 내년 상반기부터 군민을 대상으로만 버스를 공짜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진천군은 무료 버스 운행에 10억~20억원 정도의 예산이 들 것으로 보고 있다. 진천군은 장기적으로 관광객 등 외지인 버스 요금도 무료화하고 관내를 운행하는 버스뿐 아니라 청주를 오가는 711번 버스도 무료로 전환하기 위해 버스 업체, 청주시 등과 협의할 계획이다.
광역단체로서는 처음으로 세종시가 버스 요금 전면 무료화를 예고한 바 있다. 세종시는 애초 2025년까지 세종시민을 대상으로 버스를 무료 운행할 계획이었다. 무료 버스 도입이 전국에서 가장 낮은 버스 이용률(7.9%)을 높이고 탄소 배출도 줄이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세종시는 지난달 15일 무료 버스 대신 ‘월 정액권’을 도입하는 방식으로 선회했다. 세종시는 버스 전면 무료화에 예산 253억원이 들 것으로 추산했는데, 정액권은 60억원으로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올해보다 968억원(4.8%) 줄어든 내년도 예산 사정 탓이다.
세종시의 계획 변경에는 낮은 버스 이용률도 영향을 미쳤다. 실제 세종시가 조사해보니 6살 이상 시민 36만명 가운데 버스를 한번이라도 이용한 경우가 15만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세종시는 결국 버스 요금 전면 무료화가 시기상조라고 판단하고 청소년·노인·장애인은 무료로, 일반 시민은 월 2만원을 낸 뒤 5만원 한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정액권을 도입했다.
균등한 접근권 보장이 선결돼야 효과 커
무상교통의 정책 효과에 대해선 전문가들도 신중한 견해다. 김상철 공공교통네트워크 정책위원장은 “무상교통이 복지·생태적 차원에서 효과를 거두려면 무상교통이 시행될 때 그에 대한 접근권이 균등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지금의 열악한 중소도시 교통체계는 다수의 시민에게 보편적 접근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노선 개편 등 시스템 개선이 없다면 인구가 몰린 신시가지 주민들에게만 혜택이 편중될 우려가 높다”고 말했다.
농어촌 지역과 도시 지역의 접근 방식이 달라야 한다는 주문도 있다. 고이지선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은 “농어촌의 무상버스가 복지서비스 성격이 강하다면, 도시에선 교통시스템, 도시계획,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다층적 정책목표 달성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무상교통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규현 오윤주 기자 gyuhy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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