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자 PF 부실 털고 갑니다” CEO 물갈이된 증권업계, 兆단위 빅배스 예고

정민하 기자 2023. 12. 14.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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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말 대형 증권사 충당금 9452억원
“부동산 PF 규모 클수록 충당금 더 쌓을 전망”
“4분기 실적 역시 눈높이 낮춰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 우려가 계속되면서 새로 부임한 증권사 최고경영자(CEO)의 최우선 목표로 충당금 적립이 꼽히고 있다. 잠재부실을 대규모로 반영하는 빅배스(big bath)를 예고한 증권사 CEO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4분기 실적 역시 더 안 좋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래픽=정서희

14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삼성증권, 하나증권, KB증권, 메리츠증권, 신한투자증권 등 자기자본 기준 5조원 이상 증권사의 올해 3분기(9월 말 기준) 대손충당금은 약 9452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1년 전보다 55%가량, 전 분기보단 3% 증가한 수치다.

대손충당금은 금융사의 손실 흡수 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 중 하나다.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 가운데 부실 등의 이유로 회수가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손실을 미리 적립해 리스크에 대비하는 것이다. 비용으로 처리되는 대손충당금이 증가하면 수익성은 악화한다.

이들 증권사 중 올 3분기 가장 많은 대손충당금을 쌓은 곳은 신한투자증권으로, 3609억원이었다. 신한투자증권은 1분기 700억원, 2분기 733억원으로 꾸준히 충당금을 늘려왔는데 1년 전과 비교해도 55.3% 증가한 규모였다. 신한투자증권은 젠투(Gen2)를 비롯한 사모펀드 투자자와 사적화해 결정 등 막대한 충당금 여파로 3분기 당기순손실 185억원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1559억원 규모 충당금을 적립한 하나증권이 뒤를 이었다. 전년 동기(493억원)와 비교해선 두 배 넘게 증가한 규모다. 하나증권 역시 기업금융(IB) 부문 자산과 관련된 충당금이 실적을 끌어 내려 489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한국투자증권과 메리츠증권도 각각 대손충당금을 1304억원, 1074억원으로 늘렸다.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 증권가 일대. /뉴스1

업계에서는 증권사가 앞으로는 충당금을 지금보다 더 많이 쌓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부동산 PF 등 기업금융(IB) 부문 규모가 큰 증권사일수록 리스크 관리를 위해 많은 충당금을 쌓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투자증권은 해외 부동산 투자와 관련해 3분기에 400억원가량의 충당금을 쌓았다. 하나증권도 해외부동산 관련 손실 551억원을 3분기 충당금에 반영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최근 이같은 IB 부문 발(發)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조직이 축소되고, 임직원이 교체되고 있는데 새로 온 CEO 입장에선 전임이 야기한 부동산 PF발(發) 손실에 선제 대응하기 위해 충당금을 늘리는 게 불가피하다”면서 “일부 대형 증권사는 충당금을 거의 안 쌓아 놓고 있어 새로 온 사장이 조(兆) 단위로 충당금을 적립할 계획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실적 역시 당분간 저조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대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업계에 CEO 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대형사 8곳 중 4곳인 메리츠증권,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은 이미 새 대표를 맞이했다. 증권가의 장수 CEO로 꼽히던 박정림 KB증권 사장과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 역시 교체가 유력하다.

11월 14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투자협회 대회의실에서 금융감독원 주재로 열린 증권사 내부통제강화를 위한 국내 증권사 감사‧준법감시인‧CRO 간담회에서 증권사 관계자들이 황선오 금융감독원 부원장보의 모두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뉴스1

금융당국도 증권사에 충당금 늘리기를 꾸준히 주문해 오고 있다. 황선오 금융감독원 금융투자 부원장보는 지난달 열린 증권사 내부통제 강화를 위한 간담회에서 “대손충당금 보수적 적립 등으로 손실 흡수 능력을 확보해 증권사 유동성 및 건전성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 부원장보는 지난 7월에도 “최근 침체된 부동산시장 상황을 반영하는 등 충당금 산정 기준을 최대한 보수적으로 운용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한 바 있다.

이에 시장에서는 주요 증권사가 4분기에도 기대에 못 미치는 실적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박혜진 대신증권 연구원은 “4분기 증권사들이 비시장성 자산 재평가를 앞두고 있어 해외 부동산 관련 우려가 부각되고 있으며 금리 변동성이 10월부터 상당히 높아져 트레이딩 수익도 감소가 불가피하다”며 “4분기 실적에 대한 눈높이를 낮춰야 할 것으로 보이며 관련 영향이 내년 1분기까지도 지속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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