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별이 된 故 구자경 명예회장…"LG 비약적 성장 이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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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그룹이 14일 고(故)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4주기를 맞아 별도 행사 없이 조용히 고인을 추모했다.
재계에 따르면 범 LG가(家)는 일가의 전통대로 집안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마무리 하고 2주기 때부터 그룹 차원의 추모 행사는 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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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LG그룹이 14일 고(故)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4주기를 맞아 별도 행사 없이 조용히 고인을 추모했다.
재계에 따르면 범 LG가(家)는 일가의 전통대로 집안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마무리 하고 2주기 때부터 그룹 차원의 추모 행사는 열지 않고 있다. 지난 2020년 1주기에도 사내 방송과 사내 온라인 게시판 등을 통해 차분히 고인을 기리고 별도의 행사는 갖지 않았다. 당시 LG그룹은 "기업 경영에 있어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불굴의 도전과 개척정신은 바로 미래 지향적인 진취심에서 나오는 것"이라며 "미래를 향해 전력을 다해 뛰는 것이 바로 기업활동"이라고 강조한 고인의 경영 철학을 약 10분 길이의 추모 영상에 담았다.
LG그룹의 2대 회장인 상남(上南) 구자경 명예회장은 창업주인 고 구인회 명예회장의 6남 4녀 중 장남이다. 그는 1995년 장남인 고 구본무 회장에게 총수 자리를 물려주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엘지연암문화재단과 엘지복지재단 이사장을 지내며 사회공헌 활동을 했다. 향년 94세로 지난 2019년 12월14일 별세했다.
구 명예회장은 지난 1970년 LG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25년간 한결 같이 '도전과 혁신'을 강조하며 LG의 비약적인 성장을 이끈 '혁신의 전도사'로 불린다. 고인은 '강토소국 기술대국'의 신념으로 1979년 민간연구소 1호인 '럭키중앙연구소'를 시작으로 회장 재임기간 70여 개의 연구소를 설립하며 우리나라의 화학, 전자 산업의 중흥을 이끌었다. 또 락희화학과 금성사의 기업공개를 단행함으로써 투명경영을 선도하고, 전문경영인을 육성해 자율경영체제를 확립하는 등 LG가 오늘날 세계적인 기업이 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 고인은 '인간존중 경영'과 당시 개념 조차 생소했던 '고객가치 경영'을 새로운 경영이념으로 선포하며 변화를 이끌어 갔다. 여기에 무한경쟁시대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1995년 2월 '무고(無故)' 승계를 택하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재계에 신선한 충격을 줌과 동시에 큰 귀감이 됐다. 고인이 경영에서 물러날 당시 LG는 30여개 계열사에 매출액 38조원의 재계 3위 그룹으로 성장했다.
1995년 2월 회장 이·취임식장에서 구 명예회장은 "돌이켜 보면 행운보다는 고통이, 순탄보다는 고난이 더 많았던 세월이었지만, 임직원들의 헌신적인 노고가 늘 곁에 있었기에 용기와 신념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그는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이 요구되는 이 시점에서 여러분을 믿고 나의 역할을 마치고자 한다. 젊은 경영자들과 10만 임직원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기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를 넘기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구 명예회장이 회장에서 물러날 때 창업 때부터 그룹 발전에 공헌을 해 온 허준구 LG전선 회장, 구태회 고문, 구평회 LG상사 회장, 허신구 LG석유화학 회장, 구두회 호남정유에너지 회장 등 창업세대 원로 회장단도 동반 퇴진을 단행해 주목 받았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는 교육 활동과 공익재단을 통한 사회공헌활동에 관여해 왔다. 또 충남 천안에 있는 천안연암대학 인근 농장에 머물면서 전통음식의 맛을 재현하는 데 힘을 쏟았다.
구 명예회장은 훗날 회고에서 "은퇴에 대한 결심은 이미 1987년 경영혁신을 주도하면서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경영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차기 회장에게 인계한다는 것이 경영권 승계에 대한 내 나름의 밑그림이었다"며 "그래서 내 필생의 업으로 경영혁신을 생각하게 됐고, 혁신의 대미로서 나의 은퇴를 생각했던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 구 명예회장은 20년 전인 2003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구본무 회장 이후 누가 LG의 후계를 맡게 되는지에 대한 질문에 "본무 동생인 둘째 본능의 외아들을 장손으로 본무 호적에 올리려고 한다"며 "나도 그랬고, 본무도 그랬듯이 지분을 승계받아 당연히 그룹을 맡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인터뷰는 현실화됐다. 구본무 회장이 2018년 작고하고, 그해 구광모 회장은 40세에 집안 어른들의 뜻에 따라 회장직을 맡게 됐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Copyright © 아이뉴스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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