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는 왜 이정후에 1484억 원이나 썼을까

CBS노컷뉴스 이우섭 기자 2023. 12. 14.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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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후. 연합뉴스


이정후(25)는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히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 리그(MLB) 구단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KBO 리그 최고 선수가 시장에 나온다니 어쩌면 관심은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MLB 구단들의 포스팅(비공개 경쟁 입찰)이 시작되기 전 현지 매체들은 이정후가 계약 기간 4~6년, 금액은 6000만~9000만 달러에 계약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현지 다수 매체가 지난 13일 보도한 이정후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계약 규모는 이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뉴욕 포스트 존 헤이먼, 디애슬레틱의 켄 로젠탈 등 MLB 소식에 정통한 기자들은 "이정후가 샌프란시스코와 6년 1억1300만 달러(약 1484억 원)에 입단 합의했다"고 SNS를 통해 알렸다. "계약서에 4년 뒤 옵트아웃(구단과 선수 합의로 계약 파기) 조항이 포함됐다"고도 덧붙였다.

아직 메디컬 테스트 등 절차가 남아 구단 측 공식 발표가 난 것은 아니다. 그러나 MLB 공식 홈페이지마저 같은 내용을 보도하며 이정후의 샌프란시스코 이적은 사실상 확정된 것으로 보인다. 샌프란시스코는 빅 리그를 처음 경험하는 선수에게 왜 이렇게까지 많은 돈을 투자했을까.

명가답지 않은 타율과 성적…'타격 좋은 중견수' 이정후가 제격


샌프란시스코는 1883년 창단해 올해로 140년을 맞은 MLB 전통의 명가다. 월드 시리즈에서 총 8번 트로피를 들었고, 내셔널 리그(NL)에선 23회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지난 2시즌 간 샌프란시스코는 가을 야구에 진출하지 못해 명가의 자존심을 구겼다. 2022년 시즌 전적은 81승 81패로 서부 지구 3위에 그쳐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했고, 올해엔 79승 83패로 승리보다 패배가 더 많았다. 순위도 4위로 떨어졌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SNS 캡처


문제는 힘없는 방망이였다. 투수가 아무리 잘 던져도 타석에서 득점이 나오지 않으면 이길 수가 없다.

샌프란시스코의 2023시즌 팀 타율은 2할3푼5리로 내셔널 리그(NL) 최하위였다. 팀 장타율 역시 3할8푼3리로 NL 꼴찌다. 여기에 출루율마저 3할1푼2리를 기록하며 NL 15개 구단 중 14위에 머물렀다. 2022시즌 팀 타율도 고작 2할3푼4리. MLB 30개 팀 중 23위밖에 되지 않았다.

리그 수준 차이는 있겠지만 이정후는 KBO 리그에서 7시즌 동안 꾸준하게 타격에서 강점을 보여왔다. 이정후는 통산 884경기에 나서 65홈런 1181안타 581득점 515타점을 기록했다. 타율은 3할4푼 출루율 4할7리 장타율 4할9푼1리에 달한다.

특히 이정후의 컨디션이 가장 좋았던 2022시즌엔 자신의 단일 시즌 최다 기록인 23홈런을 날렸다. 타율 3할4푼9리 출루율 4할2푼1리 장타율 5할7푼5리와 OPS는 무려 9할9푼6리를 작성했다.

현지에서도 이정후의 타격 능력을 인정했다. ESPN은 "이정후는 KBO 리그에서 개인 통산 3할4푼, 한 시즌 최고 3할6푼(2021년)의 타율을 올렸다"며 "2022년에는 볼넷이 66개로 삼진 32개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고 타격과 출루 능력에 주목했다.

스토브 리그에서 빈약한 타석 보강이 반드시 필요한 샌프란시스코의 레이더에 이정후가 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내년부터 팀의 지휘봉을 잡는 밥 멜빈 감독이 새로운 중견수 영입을 언급한 것까지 더해 이정후는 샌프란시스코에 제격인 선수였다.

이적에 대한 구단 공식 발표가 난다면 이정후와 중견수 자리를 두고 겨룰 선수엔 루이스 마토스(21), 브라이스 존슨(28), 웨이드 맥클러(23) 등이 있다. 그 중 마토스는 이번 시즌 중견수로 76경기에 나서며 이 포지션에서 가장 많은 출전을 한 선수다. 하지만 타석에선 2홈런 14타점으로, 타율 2할5푼, OPS 6할6푼1리에 그쳤다. 존슨과 매클러 역시 각각 중견수로 30경기, 20경기로 나섰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기대 이하' 오프 시즌…공 들였던 이정후는 잡아야 했다


LA 다저스와 계약한 오타니 쇼헤이. MLB X 계정 캡처

이번 오프 시즌 MLB의 모든 화제를 이끌고 있는 구단은 단연 샌프란시스코의 최대 라이벌 LA 다저스다. 이유가 필요 없다. 일본의 야구 천재 오타니 쇼헤이(29)라는 대어를 낚았기 때문이다.  

2시즌 동안 가을 야구 진출에 실패한 샌프란시스코는 겨울 이적 시장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샌프란시스코 지역 매체는 "자이언츠가 이번 FA 시장에 올인 할 것"이라며 샌프란시스코의 작심을 공공연히 보도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어떤 빅 네임도 건지지 못했다.

외려 라이벌 다저스의 탄탄한 선수 보강을 바라보고만 있던 실정이다. 우선 오타니 영입 경쟁에서 다저스에 졌다. 뉴욕 타임즈 존 헤이먼은 "샌프란시스코는 오타니 쇼헤이를 놓쳤기 때문에 이정후에게 관심을 돌릴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디 애슬래틱은 "그들이 원했던 FA 쟁탈전에서 늘 2위에 그쳤던 샌프란시스코는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었다"고 보도했다.

또 일본 괴물 투수이자 FA 최대어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야마모토 요시노부(25) 역시 샌프란시스코의 타깃이지만 현실적으로 영입 확률이 높지 않다. 이번에도 다저스의 벽에 가로 막힐 가능성이 크다. 일본 스포니치아넥스는  13일(한국 시각)  "오타니를  영입한  다저스가  야마모토와  협상했다"고  보도했다. 야마모토를 얻기 위해선 다저스 말고도 뉴욕 메츠, 뉴욕 양키스와도 경쟁해야 한다.

거인 군단이 관심을 보인 일본인 투수 이마나가 쇼타(30)에게도 빅 리그 10개 이상 구단이 영입 의사를 보이고 있다. 현지 매체들의 보도를 종합하면, 14개 팀이 이마나가 영입에 관심을 표했다. 이 역시 샌프란시스코가 잡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MLB닷컴 캡처


핵심 자원을 모두 빼앗기고 있는 상황에서 이정후는 샌프란시스코가 절대 놓칠 수 없는, 놓쳐선 안 되는 카드였다. 샌프란시스코는 이정후 영입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피트 퍼텔러 단장이 올해 이정후의 몸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키움의 홈 구장인 서울 고척스카이돔까지 찾을 정도였다.

이렇게까지 공을 들인 이정후마저 다른 팀에 빼앗기면 샌프란시스코의 스토브 리그는 최악이 됐을 터였다. 이정후에 예상보다 큰 금액을 지불하면서까지 일사천리로 계약을 마무리한 이유다.

SF 지갑 열게 한 가장 큰 이유? '야구를 잘 하니까'


FA 시장이 돌아가는 상황도 물론 크게 작용하겠지만 결국 이정후의 야구 실력이 출중하다는 점이 샌프란시스코의 지갑을 열게 한 가장 큰 요인이다. 아무리 샌프란시스코가 급한 상황이더라도 실력이 부족했다면 나올 수 없는 금액이다.

당초 현지 매체들은 이보다 낮은 금액을 책정했다. 'ESPN'은 지난달 10일 "이정후가 5년 6300만 달러(약 831억 원)의 대형 계약을 맺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디애슬레틱'은 4년 6000만 달러(약 791억 원)를, 'CBS 스포츠'도 "이정후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6년 9000만 달러(약 1166억 원)의 계약을 맺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정후. 연합뉴스


이정후는 2017년 넥센(현 키움)에 입단해 프로 데뷔 시즌부터 큰 활약을 펼쳤다. 19살의 나이로 144경기를 뛰며 2홈런 179안타 타율 3할2푼4리를 기록했다.

특히 정점을 찍은 2022시즌엔 142경기에 나서 23홈런, 193안타, 85득점, 113타점을 수확했다. 해당 시즌 타율 1위, 안타 1위, 타점 1위, 장타율 1위, 출루율 1위에 달하는 기록이다. 외야수 부문 골든 글러브는 물론, KBO 리그 정규 시즌 최우수 선수를 거머쥐었다.

국가대표로서도 맹활약을 펼쳤다. 2017년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에서 첫 태극 마크를 단 이정후는 이후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2019년 프리미어 12, 2020 도쿄올림픽, 202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까지 5개 대회 연속 태극 마크를 달았다.

어린 나이임에도 천재적인 실력을 발휘한 이정후는 국제 대회 경험까지 풍부하게 쌓았다. 이중에선 2017 APBC 은메달,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금메달, 2019 프리미어 12 은메달을 따는 데 크게 일조했다.

어린 나이부터 프로 무대에서 활약하며 실력을 키워왔고, 빠른 시간에 리그 최고 선수로 거듭난 이정후. 이러한 이유로 샌프란시스코는 팀에 충분한 도움이 될 이정후를 데려오기 위해서 1억1300만 달러도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여기에 슈퍼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의 전략도 빛났다. 보라스는 특유의 배짱으로 최소 1억 달러 이상의 몸값을 이정후에게 매겼다. '악마의 에이전트'라는 보라스의 뚝심과 타격이 좋은 외야수가 부족한 MLB의 FA 시장 상황이 맞물려 이정후가 한국 프로야구 출신 선수 최고액으로 계약을 할 수 있었다.

CBS노컷뉴스 이우섭 기자 woosubwaysandwiches@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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