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학교 차별’ 함께 맞선 일본인들…“북핵이 아이들 교육과 뭔 상관있나”

김소연 2023. 12. 14.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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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무상화 배제 반대’ 15일 500번째 외침
‘일본 아미’ 사노 ‘아이들 차별 부끄럽다”
일본 정부의 조선고급학교 고교 무상화 배제에 항의하는 조선학교 학생들이 15일 도쿄 지요다구 문부과학성 앞에서 500번째 금요행동에 나서고 있다. 학생들은 2013년 5월부터 10년 넘게 매주 이곳에 모여 “전대미문의 부당한 민족차별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외쳤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일본에서 같이 생활하고, 일하고, 세금도 내는데 왜 조선학교 아이들의 권리만 뺏는지 정부가 한심하고 부끄러워요.”

지난 4일 한인타운이 있는 도쿄 신오쿠보에서 만난 사노(38)는 “일본의 고등학교에서 무상교육이 시행된 지 13년이 지났지만, 조선학교는 지금도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팬클럽인 일본 아미(ARMY)다. 두 아이의 엄마이면서 보육교사 일을 하는 사노는 “일본 사회의 성인으로 (조선학교 학생들에게) 정말 미안한 마음”이라며 “아이들을 차별하거나 공격 대상으로 삼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사노가 조선학교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올해 3월 개봉한 다큐멘터리 ‘차별’(김도희·김지운 감독 공동연출)을 보고 나서다. ‘차별’은 일본 정부가 2010년 4월부터 시행한 고교 무상화 정책에서 조선학교(조선 고급학교 10곳)를 배제한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통일부가 지난달 22일 다큐를 만들면서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조선학교 인사를 접촉했다”며 감독에게 경고 공문을 보낸 바로 그 영화다. 사노 등 일본 아미 몇몇이 의기투합해 일본에서 3월·4월·7월 세 차례 일반인 상대로 온라인 상영회를 개최했다. 모두 254명이 봤다. 수익금의 70%는 조선학교에 기부했다.

조선학교는 1945년 8월 해방 이후 귀국을 포기한 재일동포들이 자식들에게 조국의 말과 문화를 가르치기 위해 자발적으로 만든 교육시설이다. 최전성기인 1960년엔 학생 수가 4만6294명에 이르렀지만, 이제는 8천여명에 머물고 있다. 1950년대 말부터 북한이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오며(2021년 현재까지 167회) 성장했지만, 이제 시대가 바뀌어 학생의 50~60%는 한국 국적을 가진 아이들이다.

“올해 3월 초 친하게 지내는 아미 중 1명이 도쿄 조선학교에서 진행된 ‘차별’ 상영회에 참여했어요. 아미 중엔 ‘자이니치 코리안’도 있는데, 그분들과 교류하면서 우리가 너무 몰랐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영화를 본 사노는 충격을 받았다. “일본이 아이들을 상대로 ‘이렇게 차별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요. 화면 속 아이들이 괴로워하고, 억울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조선학교 문제를 계기로 역사 공부도 하고 있다. “미사일 발사나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는 분명히 잘못됐습니다. 하지만 한반도 식민지와 남북 분단 등 일본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아요. 또 조선학교가 북한의 지원을 받는 것은 일본이나 한국이 그들을 외면한 탓도 크다고 생각해요.”

두 아이의 엄마이면서 보육교사 일을 하는 일본 아미(ARMY)인 사노(38)가 한국의 남성 아이돌 방탄소년단(BTS) 멤버인 ‘진’의 현수막 앞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아미는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비티에스의 팬클럽 이름이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사노가 말한 대로 일본의 조선학교 고교 무상화 배제 문제는 13년째 여전히 미해결 상태다. 일본은 민주당 정부 때인 2010년 4월부터 고등학교 수업료를 국가가 부담하는 고교 무상화 정책을 시작했다. 이때 조선학교처럼 정규학교가 아닌 ‘각종학교’로 분류됐던 일본 내 다른 외국인학교는 모두 지원 대상에 포함됐다. 북-일 간의 난제인 일본인 납치 문제 등으로 인해 조선학교만 콕 집어 적용을 보류한 것이다.

이후 조선학교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지 못한 상태에서 2012년 12월 제2차 아베 신조 내각이 출범했다. 일본 정부는 그 직후인 2013년 2월 관련 행정규칙의 근거조항을 삭제하는 방법으로 조선학교를 무상화 대상에서 완전히 빼버렸다. 시모무라 하쿠분 당시 문부과학상은 기자회견에서 “납치 문제에 진전이 없는 것, 총련과 밀접한 관계에 있어 교육 내용, 인사, 재정에 영향을 주고 있는 점” 등을 명분으로 꼽았다.

재일동포 사회는 강하게 반발했다. 2013년부터 도쿄·오사카·나고야·히로시마·후쿠오카 등 조선학교 5곳의 학생들이 직접 원고가 돼 ‘고교 무상화 불지정 처분 취소’와 ‘국가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2021년 7월까지 이어진 재판은 오사카지방재판소(1심)에서 한번 승소했을 뿐, 모두 패소했다. 일본 법원은 조선학교가 총련과 밀접히 관련돼 있고, 지원금이 다른 용도로 쓰일 우려가 있어, 일본 정부가 무상화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국가 재량권의 범위 안에 있다’고 판결했다.

재일동포 사회는 재판 투쟁과 함께 항의 운동도 시작했다. 조선 고급학교(조선고교) 학생들의 선배들인 조선대학 학생들이 중심이 돼 2013년 5월부터 도쿄 가스미가세키에 있는 문부과학성 앞에서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 시정을 요구하는 금요행동’에 나선 것이다. 올해 10년째를 맞은 금요행동은 조선학교 학생, 학부모 등 재일동포들과 일본 시민들이 참여해 매주 진행되고 있다. 이달 15일이 500번째 외침이 된다.

10년을 싸웠지만 상황은 나빠지고 있다. ‘무상화 배제’와 함께 각 지방자치단체 등이 조선학교에 지급해 오던 보조금을 깎거나 지급을 중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부과학성 내부 자료를 인용한 산케이신문 보도를 보면, 조선학교 63곳(6곳 휴교)이 있는 지자체가 지출한 2021년 보조금 총액은 1억8879만엔(약 17억원)으로 1년 전보다 1955만엔이 줄었다. 자료가 있는 2012년 이후 보조금이 2억엔 밑으로 내려간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투쟁이 고립된 것은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일본 시민사회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일 도쿄에서 만난 하세가와 가즈오(75) ‘고교 무상화에서 조선학교 배제를 반대하는 연락회’ 공동대표는 10년째 거의 매주 금요행동에 나서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이나 납치 문제가 재일동포 자녀들 교육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정부가 ‘국민의 이해를 얻지 못해서’라고 말하는데, 인권은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에요.” 40년 동안 도쿄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했던 하세가와 대표는 “아이들이 차별 없이 교육을 받는 것은 기본적인 권리”라며 “1~2년이면 해결될 줄 알았는데, 벌써 13년이 지나고 있다”며 깊게 한숨을 쉬었다.

하세가와 대표는 조선학교와 관련한 첫 판결(1심)을 앞두고 2017년 6월부터 12월까지 반년 동안 ‘이 문제를 알리려 뭐라도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후쿠오카에서 홋카이도까지 1100㎞, 156만보를 걸어 일본 전역의 조선학교 67곳을 모두 방문했다. 70대 노인이 20㎏짜리 배낭을 메고 전국을 걸으니 곳곳에서 화제가 됐다.

“선생님들 월급도 밀리고, 비가 샌다고 양동이를 복도에 놓은 학교도 있었어요. 은퇴한 교장이 자원봉사로 학교 버스를 운전하는 등 많은 사람들의 헌신 속에서 학교가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하세가와 대표는 “학교에서 사용되는 돈은 정해져 있다. 조선학교 지원금이 총련 등 다른 곳에 쓰일 수 있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은 현실성이 없다”며 “의심스러우면 직접 조사를 하면 되지, 이렇게 배제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조선학교는 열려 있으니, 사람들이 꼭 한번 직접 가봤으면 좋겠어요. 조선어와 그들의 민족문화를 지켜내기 위한 노력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교사 사이에 깊은 신뢰 관계 등 우리가 배울 것이 많아요.”

일본-아시아 관계사, 식민지와 재일 외국인 문제 등을 연구한 다나카 히로시(86) 히토쓰바시대학 명예교수(왼쪽 사진)는 조선학교 소송, 금요행동 등 조선학교 무상화 배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0년 넘게 동분서주하고 있다. 하세가와 가즈오(75) ‘고교 무상화에서 조선학교 배제를 반대하는 연락회’ 공동대표도 10년째 거의 매주 문부과학성 앞 ‘금요행동’에 참여하고 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지난 4일 도쿄에서 만난 다나카 히로시(86) 히토쓰바시대학 명예교수도 든든한 우군이다. 일본-아시아 관계사, 식민지와 재일 외국인 문제 등을 연구한 다나카 교수도 조선학교 소송, 금요행동, 강연·기자회견 등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0년 넘게 동분서주하고 있다.

“2009년 12월 헤이트스피치(혐오) 집단이 교토 조선학교를 습격했을 때 두려움에 떨었던 아이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2021년에도 (재일동포 집단거주지) 우토로에서 방화 사건이 있었죠. 이런 사건이 민간에 의한 차별이라면, 조선학교의 무상화 배제는 국가가 대놓고 차별을 하는 겁니다.” 다나카 교수는 “유엔에서도 이 문제가 차별이니 시정하라고 수차례 권고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며 일본 정부를 향해 날 선 비판을 가했다.

“일본 정부의 행태는 민족교육을 인정하지 않고, 힘들면 일본학교에 다니라는 얘기와 마찬가지입니다. 동화주의입니다. 과거 식민지 시대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어요.” 다나카 교수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북-일 정상회담에 의욕을 밝히고 있는데, 그게 가능하려면 조선학교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가 만약 100살까지 산다면 이제 14년 남았습니다. 그 안에는 해결돼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하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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