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출마 고집에 윤 대통령 격노…대표직 사퇴로 일단 봉합

서영지 2023. 12. 14.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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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보선 패배 이후]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하는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출국에 앞서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등 환송 인사들과 차례로 악수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13일 오후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의 ‘대표직 사퇴’ 발표는 지난 12일 오전 장제원 의원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 뒤 하루 만에 나왔다. 이로써 지난 3월 전당대회에서 ‘김-장 연대’로 불리며 ‘윤심’(윤석열 대통령의 마음)을 과시했던 두 사람이 모두 2선 후퇴하게 됐다. 현 정부 실세의 ‘동반 후퇴’ 모습이지만, 내부적으로는 ‘대표직은 유지하되 총선 불출마’를 요구한 대통령실·친윤계와, ‘대표직을 포기하고 총선엔 출마’를 원한 김 대표의 치열한 갈등의 결과물인 것으로 알려졌다. 4선인 김 대표의 지역구는 울산 남구을이다.

여권 핵심 인사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지난 11일 김 대표에게 ‘당 대표직은 유지하되, 총선 불출마를 해달라’는 대통령실의 메시지가 전해졌다고 한다. 그날 윤석열 대통령이 3박5일간의 네덜란드 국빈방문을 위해 출국하기 전이었다. ‘총선 불출마’는 인요한 혁신위원회가 요구한 ‘당 지도부·친윤·중진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이를 거부했다. 김 대표는 대통령실의 제안과 정반대로 ‘당 대표직을 포기하고, 지역구에 총선 출마하겠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이를 전해들은 윤 대통령은 격노한 상태에서 출국길에 올랐다는 게 여권 인사들의 설명이다.

김 대표는 그날 오후 2시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혁신위의 혁신안을 보고받고 “저를 비롯한 우리 당 구성원 모두는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사즉생의 각오로 민생과 경제를 살리라는 국민의 목소리에 답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당내에서는 ‘김 대표가 대표직은 유지한 채 적정 시점에 불출마를 선언하겠다는 의미’라는 풀이가 나왔으나, 실제 김 대표의 뜻은 그 반대였던 것이다. 김 대표는 ‘22대 총선 공천권을 행사하고 총선 결과에 책임지고 물러날 수도 있는 당 대표’보다, ‘20년 지켜온 지역구를 지키면서 4년의 의원직을 보장받을 수 있는 총선 출마’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그날 낮 원조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인 장제원 의원은 김 대표에게 ‘2차 설득’을 시도했다. 장 의원은 김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지역구 불출마를 설득했으나 김 대표는 역시 거부했다. 이에 장 의원은 저녁 8시22분 페이스북에 “이제 잠시 멈추려 합니다”라고 불출마를 시사하는 글을 올리고, 이튿날인 12일 오전 10시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불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장 의원의 불출마 선언은 김 대표에게 불출마를 압박하는 메시지였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장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한 12일부터 이틀동안 서울 모처에 머물며 주변에 거취와 관련해 의견을 구했다. 김 대표의 ‘숙고’ 모드가 길어지는 동안, 당에서는 김 대표 사퇴 요구가 공개적으로 쏟아졌다. 지난 12일 이용호 의원은 공개서한에서 “대표님의 희생과 헌신이 불출마나 험지 출마여서는 안 된다. 대표직을 내려놓는 것이 맞지않을까 싶다”고 했고, 홍준표 대구시장은 페이스북에 “장 의원보다 훨씬 더 큰 책임감을 느껴야 할 사람들은 눈감고 뭉개면서 시간이 흘러가기만 기다리고 있다”고 썼다. 같은 날 대통령실과 친윤계에서도 ‘비상대책위로 전환이 불가피한 것 아니냐’며 김 대표의 대표직 사퇴를 수용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사퇴론이 끓어오르는 가운데, 김 대표는 13일 오후 페이스북을 통해 대표직 사퇴를 알렸다. 대통령실·친윤과의 마찰 끝에 김 대표의 뜻은 이룬 셈이다. 한 영남권 의원은 “대표직을 사퇴했는데 지역구 출마 정도는 용인해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김 대표는 윤 대통령의 전폭 지원에 힘입어 당대표에 당선된 지 9개월만에 물러났다. 한 의원은 “김 대표 입장에서는 지역구와 당대표 둘 다 지키고 싶었던 거 같은데, 결국 눈치를 보다가 떠밀리듯이 퇴진한 모양새가 됐다”고 말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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