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인데 한잔할까요 [달곰한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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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그런 까닭에 일본어 잔재인 '망년회'가 사라져 참 다행이다.
"오늘 한잔 어때?" 마음 터놓고 오붓하게 한잔하자는 제안은 언제나 달콤하다.
술 마실 땐 마주 앉은 이에게 잔을 권하고 받아 마시는 즐거움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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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2023년 달력이 허허롭다. 삼백사십여 일이 훅 빠져나갔다. 살면서 마음이 통해 서로를 알아주는 벗을 만나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있을까. 난초처럼 향기로운 사귐인 지란지교(芝蘭之交), 맑은 물처럼 담박한 친구인 담수지교(淡水之交), 목숨을 나눌 만큼의 사이인 문경지교(刎頸之交)…. 나이가 들수록 참된 우정을 뜻하는 말들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한 해의 끄트머리에 서서 지난날들을 돌아보니 참으로 귀한 인연을 여럿 만났다. 지혜롭고 가슴 따뜻한 분들과 우정을 나눌 수 있어 더없이 뜻깊다. 나이를 잊은 망년지교(忘年之交), 망년지우(忘年之友)는 참으로 고상한 우정이다. 벗들과 희로애락을 나누는 데 술이 빠질 순 없는 법. 이래저래 술잔을 부딪치는 시절이다.
송년회가 한창이다. 송년회는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송구영신에서 온 말이다.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며 조용하게 보내는 ‘수세(守歲)’의 개념이다. 한때 송년회 대신 ‘망년회(忘年會)’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망년회는 말 그대로 한 해를 잊는 모임으로, 연말에 친구 혹은 친지들과 술을 마시며 떠들썩하게 보내는 일본의 세시풍습이다. 그저 먹고 마시며 한 해를 잊어버린다는 건 우리 정서와 맞지 않다. 그런 까닭에 일본어 잔재인 ‘망년회’가 사라져 참 다행이다.
“오늘 한잔 어때?” 마음 터놓고 오붓하게 한잔하자는 제안은 언제나 달콤하다. 특히 세밑 친구의 제안이라면 뿌리칠 수가 없다. 그런데 ‘술 한잔하자’는 말은 잘 이해해야 한다. 두 잔, 석 잔, 넉 잔…이 아닌 딱 ‘한 잔’만 마시자는 뜻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 붙여 쓰는 ‘한잔’은 잔을 세는 의미가 아니라 ‘간단하게 한 차례 마시는 술’을 뜻한다. 술 잘 마시는 사람과 한잔할 땐 수십 잔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딱 한 잔도 잔 나름이지만.
술 마실 땐 마주 앉은 이에게 잔을 권하고 받아 마시는 즐거움도 크다. 이런 모습을 표현한 말이 ‘권커니 잡거니’와 ‘권커니 잣거니’다. ‘권(勸)하거니’를 줄인 ‘권커니’는 대부분 바르게 쓴다. 그런데 ‘잡거니’와 ‘잣거니’는 어원이 명확하지 않은 탓에 많은 이들이 혼란스러워한다. ‘잣거니’는 ‘술 따를 작(酌)’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 ‘작’이 시간이 지나 ‘잣’으로 바뀌었다고 여긴다. ‘잡거니’는 술잔을 잡아 마시는 모습에서 굳어진 표현이란다. 둘 다 뭔가 어색해 (바르지 않은 표현인) ‘권커니 자커니’를 바른 표현으로 하자는 주장에 마음이 쏠린다. 소리 나는 대로 쓰고 말하니 얼마나 쉬운가.
톨스토이는 “한 해의 마지막에 가서 그해의 처음보다 더 나아진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이라고 했다. 아주 작은 발전이라도 했다면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다.
노경아 교열팀장 jsjys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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