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에서 온 형-언니한테 코딩 배워요”
교수-학생, 학교 직접 찾아가 수업… 아이들 친근감 느껴 배움에 더 흥미
교사들 업무 부담 줄여주는 효과도
첨단 교육-예체능 등 다양한 과목… 반응 좋아 내년엔 전국으로 확대
집 한쪽에 설치한 USB허브에 지붕 위 모터를 선으로 연결한 뒤 태블릿PC를 터치하자 모터 날개가 작은 바람을 일으키며 회전했다. 이 모습을 지켜본 다른 학생들도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태블릿PC로 코딩을 해 블록을 작동시킨 것. 이날 돌봄교실에서 늘봄학교 코딩 수업을 이끈 상명대 경영공학과 대학원생 조현지 씨는 “학생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쳐 그린 그림을 블록 코딩으로 눈앞에 구현하는 과정을 재밌어 한다”고 했다.
● 공대 형, 누나한테 배우는 블록 코딩
서산예천초는 올 10월부터 상명대 천안캠퍼스와 연계해 늘봄학교 코딩 수업을 운영 중이다. 늘봄학교는 기존의 초등생 대상 돌봄과 방과후교실의 유형을 다양화하고, 시간을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정부의 교육 정책 중 하나다. 내년부터 전국에 순차적으로 도입된다.
올해 충남 지역이 시범 운영한 늘봄학교는 ‘대학 연계 프로그램’이다. 상명대를 비롯해 충남의 30여 개 대학의 교수와 학생이 초등학교를 직접 찾아가 수업하거나 온라인 플랫폼으로 학생들을 만났다. 상명대는 천안·아산에 비해 지역에 위치한 대학 수가 적어 교육 인프라가 부족한 서산·당진·태안의 5개교를 찾아가 수업한다.
처음에는 초등생 교육 경험이 없는 대학이 늘봄학교 운영을 맡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상명대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학점, 출석률, 교육봉사 경험 등을 꼼꼼히 따져 늘봄학교 강사를 선발했다. 6시간씩 블록 코딩 교수법에 대한 교육도 받았다. 학교 측은 “20명을 뽑는데 60∼70명 정도가 몰렸다”면서 “대부분 전공은 시스템반도체학과 등 공학계열”이라고 설명했다.
● 상상한 것 그림 그린 뒤 코딩으로 구현
한 반에 18명인 교실에 4명의 대학생, 대학원생 강사가 들어가 1시간 30분 동안 코딩 수업을 진행한다. 늘봄학교 운영을 담당하는 유재필 상명대 경영공학과 교수는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에 사범대 교수님들과 교육적으로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지 많은 논의를 거쳤다”며 “‘소근육 발달 등도 고려하라’는 조언에 따라 블록 코딩 전에 아이들이 백지에 상상한 것을 그려넣는 과정에 수업시간을 30분 넘게 할애한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수업이 진행되는 내내 왁자지껄 떠들면서도 블록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서산예천초 2학년 류준 군은 “평소 레고는 무지 싫어했는데, 이 블록 코딩은 너무 재밌다”며 “코딩을 배우기 전에는 십자 블록을 맞추며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학부모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서산예천초 돌봄 전담사 류영애 씨는 “맞벌이인 부모님들조차 자녀가 다니던 학원을 안 보내고, 늘봄교실을 보낼 정도”라며 “대학생, 대학원생 강사들이 형, 누나처럼 느껴져서인지 잘 따르고 수업에 집중도 잘 한다”고 설명했다.
그간 늘봄학교 전면 도입에 반대하는 교사들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지역 대학 연계 프로그램은 학교와 교사들의 업무 부담을 줄여줄 대안으로도 꼽힌다. 경기 성남시 분당에서 교사를 하다 퇴직 후 올 2학기부터 서산예천초 늘봄학교 전담으로 일하는 신모 씨는 “대학에서 교구부터 강사 인력까지 전부 갖춰 들어오는 이런 형태라면 교사들이 우려하는 부담을 덜 수 있다”며 “학생들에겐 대학에서 공부하는 선배를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 충남·부산·대전 시작으로 내년 전국에 확산
충남도교육청은 대학 연계 프로그램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에 힘입어 내년에는 늘봄학교 운영 대상 초교를 대폭 늘릴 계획이다. 충남교육청 장학사는 “현재 수요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학 연계 늘봄학교는 현재 부산과 대전에서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부산의 동아대, 동의대, 부산예대 등은 코딩이나 3D프린터 등 첨단 교육뿐 아니라 펜싱, 실용음악 전공 교수들이 주축이 돼 초등생 학부모의 다양한 교육 수요를 충족시키고 있다. 대학 연계 늘봄학교는 내년부터 전국에 순차적으로 확대된다.
교육부 관계자는 “배울 기회가 드문 펜싱 같은 종목이나 반려견 관련 수업을 제공한다”며 “돌봄 공백을 메우는 목적도 있지만 배움의 기회를 넓히고 사교육 경감을 유도하는 효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블록 코딩 수업은 민간 사교육 업체에서도 대학 연계 늘봄학교와 같은 브랜드의 교구를 활용한다. 다만 지역 대학의 교수진이 직접 수업 커리큘럼을 짜고, 이들이 선발한 학생들이 초등생을 가르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서산=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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