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엑스포 ‘징비록’

이인열 기자 2023. 12. 14.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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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자의 ‘반칙’과
회원국의 ‘배신’만 탓해서야
사우디가 이긴 진짜 이유
그걸 찾아야 재도전도 가능
한덕수 국무총리가 11월 28일 오후(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외곽 팔레 데 콩그레에서 열린 제173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2030년 세계박람회 개최지 선정 투표결과 부산이 탈락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은 박형준 부산시장./연합뉴스

2030년 엑스포 개최지가 결정됐다. 기대가 컸던 데다 표 차도 너무 커 온 국민이 아쉬움을 넘어 허탈감마저 느꼈다. 상황 오판에 대한 책임 논란도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실패 앞에 선 우리 모습이다.

흔히 주된 패인을 오일 머니를 앞세운 사우디의 ‘반칙’과 지지 약속을 저버린 나라들의 배신 등을 꼽는다. 일부는 ‘처음부터 안 되는 게임이었다’며 정쟁에만 관심이 있다. 심지어 ‘전교 100등에게 진 것이라 이번 결과는 실력이 아니다’라는 분위기도 있다. 과연 그럴까.

엑스포 유치 과정에서 우리 기업인과 대부분 관료는 최선을 다했다고 믿는다. 이제 충격에서 다소 벗어난 시점에서 현장을 뛰었던 이들에게 엑스포 실패의 진짜 이유를 물어 보았고, 그 내용을 소개해 볼까 한다.

이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사우디의 승인은 ‘오일 머니’로만 귀결되지 않았다. 사우디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전략적이었고, 더 집요했고, 더 간절했다. 사우디는 철저히 전문가들을 고용했고, 나라마다 로비 업체들을 정해 디테일까지 파악했다. 관광 대국 스페인의 경우 스페인에 있는 국제기구를 사우디로 가져가겠다고 으름장을 놓다가 “이거 포기할 테니 엑스포 지지해달라”고 제안했다. 스페인은 사우디 공개 지지 선언 후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외교 문제가 있던 태국에는 사우디가 먼저 “우리가 잘못했다”고 사과하며 손을 내밀었다. 태국 체면을 살려주면서 확실한 지지를 받아냈다. 프랑스에는 미국 무기 대신 프랑스 무기 사주겠다고 했고, 중국에는 원유 거래 시 달러 외에 위안화 결제도 용인하겠다고 했다. 영연방 국가들은 영국 의견이 절대적이란 걸 알고 초반부터 영국을 집중 공략했다. 이 때문에 태도국(태평양 도서국)도 이미 다 넘어가 있었다.

이번 엑스포 유치전을 ‘방석 뒤집기 게임’이라고 불렀다. 일부 투표국이 한국과 사우디 사이에서 지지 입장을 방석 뒤집듯 수시로 바꿨다는 얘기다. 그 게임에서 우리가 나름 선전했던 상황도 있었다.

하지만 막판 두 달쯤 남겨두고 엄청난 반격을 펼쳤다. 당시 벌어졌던 사우디와 각 나라의 정상회담 일정을 보라. 예정에도 없던 사우디-아프리카 정상회담, 사우디-태도국 정상회담, 사우디-카리콤(카리브 공동체) 정상회담 등이다. 사우디는 물론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리기도 했다. 여기 참석하면 기본 1억~3억달러 투자가 보장됐다는 후문이다. 이때 방석들이 한꺼번에 몇십개씩 뒤집혔다.

물론 사우디가 페어 플레이만 한 건 아니다. 투표 당일 BIE(국제 박람회 기구) 총회 때 한국 유치단 수뇌부는 총회장 로비에서 각국 BIE 대사들에게 마지막 당부를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단 한 명과도 인사조차 못 했다. 우리 수뇌부 앞에 20~30대 사우디 사람들이 ‘인(人)의 장막’을 쳤고, BIE 대사들이 도착할 때마다 호송팀 2~3명이 둘러싸 데리고 갔다. BIE 대사들이 언제 도착하는지, 차 번호가 뭔지 다 알고 있었다.

물론 유치전 과정에서 배운 것도 많다. 우리가 거의 관심 없었던 시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일본, 중국은 아프리카를 많이 장악했더라” “작은 나라 중 자원 부국이 꽤 있더라” “지역 전문가가 너무 부족하다” 등을 기업 총수들이 발로 뛰며 체험했다고 한다.

“우리는 강한 의지는 있었으나 리더십이 부족했고, 전략은 나이브(느슨)했으며, 돈은 부족했고, 실행력은 결집되지 않은 채 흩어져 있었다” 어느 기업인의 고백이다. 이 대목이 재도전의 출발점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후대를 위해 임진왜란 후 남긴 징비록 같은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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