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칼럼] 12·12와 서울의 봄

홍순권 동아대 명예교수 2023. 12. 1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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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교훈 담은 견리망의, 교수들이 택한 올 사자성어
檢독재 비판대 오른 韓 정치, 사익 위해 공익 버려선 안돼
홍순권 동아대 명예교수

12·12 군사 반란 44주년에 맞춰 이 사건에 대한 역사적 함의를 되짚어 보는 작업이 한창이다. 영화 ‘서울의 봄’이 항간의 중심 화제로 떠오르는 가운데 부산의 대학가에서는 ‘검찰독재’라는 비판대에 오른 한국의 정치 현실을 12·12 사건에 빗대어 비판한 대자보가 나붙었다고 한다. 12·12 사건은 다른 어느 지역 시민보다 부산 시민이 특별한 관심을 가질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알려면 1979년 연표를 좀 위로 올려 볼 필요가 있다. 사건 발생 불과 두 달이 채 안 되는 그해 10월 16일 부산에서 부마민주항쟁이 발생했고, 그 사건의 충격파로 10일 뒤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격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는 10·26 사건이 발생했다. 12·12 사건은 대통령 유고로 발생한 권력 공백의 틈을 노려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 세력이 국가권력의 찬탈을 위해 일으킨 쿠데타이다.

부마민주항쟁을 무력 진압하고 항쟁에 참여한 시민과 학생들을 강제 연행한 유신독재정권은 국면 전환을 위해 강압수사를 진행하던 중 10·26 사건이라는 뜻밖의 상황을 맞게 되었다. 이른바 ‘남민전’ 사건과 엮어 부마민주항쟁의 배후를 북과 연계된 이적단체로 둔갑시키려던 중앙정보부 등의 공작수사가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고, 사실상 유신정권의 붕괴로 인해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에 대한 처벌의 필요성도 사라지고 말았다. 10·26 사건으로 계엄사령부 산하에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합동수사본부가 설치되고, 하나회의 우두머리였던 전두환 국군보안사령관이 합동수사본부장에 올라 수사권을 장악했다. 물론 다수의 국민은 유신독재가 무너졌으니 우리 사회가 곧 민주주의의 봄을 맞이하는 것은 역사의 순리라고 생각하고 있던 때였다.

지난달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의 돌풍이 매우 거세다. 개봉 2주일 만에 관객 500만 명을 돌파하고 이제 700만 관객을 넘어 1000만 관객 동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소식이다. 영화는 9시간 동안의 12·12 군사 반란의 진행 과정을 실감 나게 보여주고 있다. 등장인물의 이름을 비롯해 일부 가공이 있지만, 실제 역사적 사실에 가깝게 그려냈다는 평이다. 말 그대로 팩트에 바탕을 둔 픽션, 즉 팩션 영화이다. 그렇다고 단지 예상치 못한 흥행 성적이나 스릴러로서의 매력만이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의 반응 또한 예사롭지 않다. 20, 30대의 젊은이들이 관객의 다수를 차지하는 것도 예상치 못한 일이고 젊은 관객을 중심으로 영화 관람 후 심박수 챌린지니 N차 관람이니 하는 이야기가 나도는 것도 전례에 보기 드물었던 현상이다.

영화 ‘서울의 봄’의 흥행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각본이나 연기력이 훌륭하고 몰입감이 높다는 것도 관객들의 일반적인 영화평인 것 같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관객의 몰입이나 대중적 관심이 단지 영화 자체의 재미에 그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영화가 다루고 있는 12·12 군사 반란이라는 역사적 소재 자체가 매력적이라는 평도 있고, 이는 장차 한국 영화가 나아갈 방향을 암시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러한 사실을 인정한다면, ‘서울의 봄’의 진짜 매력은 제목이 그러하듯이 12·12의 성공 이후 다가올 미래를 침묵으로 암시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12·12는 우리 국민에게 씻기 어려운 트라우마를 남기고 비극으로 막을 내린 5월 광주의 봄의 서막이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관람 이후 관객이 느끼는 분노의 감정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는 사람들 사이에 은유적 표현으로 사용된 ‘육법당’이란 유행어가 있었다. 육사 출신의 정치군인과 그들과 결탁한 서울대 법대 출신이 정부의 요직을 두루 독차지하던 세태를 풍자하면서 생겨난 말이다. 이와 관련해서 요즘 영화로 뜻밖에 언론의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다. 바로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육법당 중 영화에서 등장하는 하나회로 일컫는 육당 출신들은 민주화 이후 김영삼 대통령 취임 직후 바로 숙청되었다. 대통령 김영삼에 대한 재평가가 여기저기서 언급되고 있는 것은 영화 ‘서울의 봄’으로 인한 낙수 효과이다.


교수신문이 설문조사한 올해의 사자성어로 교수들은 ‘견리망의(見利忘義)’를 선택했다고 한다. 눈앞의 이익 때문에 의리를 저버린다는 것이니, ‘리’란 사리(사욕)를 두고 하는 말이고 ‘의’란 공의(정의)를 일컫는 말이다. 특정한 세력이 사익을 위해 공의를 저버렸다는 점에서 12·12사건의 교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2·12 군사 반란 44주년을 맞아 대학가에 나붙은 대자보도 견리망의의 정치현실에 경종을 울리고자 작성되었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 주인공 전두광은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니냐”고 큰 소리로 반문하고 있다. 그러나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견리망의’는 불의일 뿐 결코 정의가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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