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플라자] 나를 칭찬하는 ‘사적 연말정산’

강민지 ‘따님이 기가 세요’ 저자 2023. 12. 1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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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12월이다. 누군가는 크리스마스를 기대하고, 누군가는 연말에나 볼 수 있는 얼굴들을 떠올리며 만남에 들떠 있다. 나는 12월을 생각하면 왠지 조금 서글퍼진다. 추위를 많이 타서 그런 걸까. 그게 아니라면 한 달 뒤면 떠나보낼 올해에 미련이 절절해서 그런 걸까. 정체 모를 감정을 여태까지는 ‘겨울 탄다’라고 생각하며 넘겨왔다. 좀처럼 적응되지 않는 이 계절을 어떻게 수월하게 보낼 수 있을까?

이 계절과 친해지기 위해 내 나름의 연말정산을 하기로 결심했다. 내 마음대로 ‘사적 연말정산’이라 이름 붙여 지난 일들을 들추어봐야겠다. 기껏해야 1년도 지나지 않은 일들이 기억을 오랫동안 더듬어야지만 생각난다. 만 나이 덕분에 내가 몇 살을 살아낸 건지조차 애매하다. 이렇게나마 올해 내가 한 일들을 기억해 내야만 온전히 한 살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올해의 나는 어땠나.

1월에 뇌종양 수술을 받았다. 건강검진 이후 갑자기 찾아온 병이었다. 한 해를 머리를 싹 밀며 시작하다니. 조금 특별하긴 했다. 병동에 내 또래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억울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찍 발견한 덕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생각하니 내가 행운아처럼 느껴졌다. 병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된 지금이라면 매일을 걱정으로 보냈을지 잘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얼른 회복해서 출근할 생각, 다시 운동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뭘 잘 몰라서 긍정적일 수 있었다. 그 덕에 현재의 나를 보고는 누구도 내가 올해 머리뼈를 갈랐던 사람이라 생각하지 못한다. 전대미문의 회복력이었다.

이후 여름, 가을을 거치며 가족들도 줄줄이 암 수술을 받았다. 예상한 일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한 일도 있었기에 중심을 잡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내가 아팠던 것보다 더 힘에 부쳤다. 나는 이겨낼 힘이 있으니 문제 없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가족의 일이 되니 좀처럼 내 마음같이 되지 않았다. 환자였던 가족이 새롭게(?) 환자가 된 가족을 간병하는 일이 반복되니 무력감을 조금 느끼기도 했다.

올해의 화두는 어쩔 수 없이 건강이었다. 기록하고 보니 정말 몸도 마음도 조금 힘들었겠다. 그런데 조금 떨어져 이 모든 게 내가 극복해 낸 일이라고 생각하면 감상이 조금 달라진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건강해지려고 간단없이 노력했고, 기특하게 내 한 몸과 가족들까지 건사했다니.

일련의 사건들은 나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살게 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와 같은 자조가 아니라 다시 돌아오지 않을 지금을 확실히 재미있게 보내야겠다고 생각하게 했다. 건강이 누구에게나 주어진 공평한 기회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기에, 건강한 지금을 최대한 더 즐겨야겠다. 어느새 훌쩍 성장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나에게 스스로 감탄의 박수를 보낸다.

그래. 사적 연말정산을 하는 날은 나를 칭찬하는 날이다. 살다 보면 남의 칭찬에 목매게 되는 순간들이 생각보다 자주 찾아온다. 타인에게 인정 투쟁을 하던 순간들도 생각난다. 그러나 나에게 필요한 말은 결국 나에게 있었다. 타인의 말은 내게 완전할 수 없다. 내가 나를 칭찬해 줄 필요가 있다.

아직 한참 들어야 할 나이지만, 지금까지 알게 된 나이 듦은 ‘마음과는 달리’, 라는 문장과 친해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과 달리 생기는 일들이 내 예상보다 빈도가 잦을 수도, 예상 범위를 훌쩍 넘겨버릴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는 그 모든 일을 결국엔 지나간 일로 만들어낼 힘이 있다.

나는 무수한 어제를 극복하고 오늘을 맞이했다. 오늘을 살고 있는 모두는 어제를 극복하고 오늘을 맞이한 기특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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