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는요~” 아홉 살 우리가 쓰고 그렸어요
구도심 지산동 두 달간 탐방하며 상인·경비원 등 30여명 만나 취재
“송해 할아버지 다녀간 집” “40년 된 맛있는 과일집” 등 눈높이 소개
“우리 동네 ○○복집은 1995년에 문을 열었어요. 28년이나 됐어요. 이곳을 지날 때면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요. 어찌나 맛이 있는지 옛날에는 <전국노래자랑>의 송해 할아버지가 다녀가기도 했대요.”(최서영 학생)
13일 광주광역시 동구에 따르면 지산동에 위치한 동산초교 학생들은 최근 마을을 소개하는 그림책을 만들었다. <지산동 한 바퀴 돌아봤니?>라는 이 그림책에는 어린 학생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이웃들의 이야기가 삐뚤삐뚤한 글씨와 아기자기한 그림으로 담겼다.
그림책은 인문·문화 배움터인 동구 인문학당에서 추진하는 어린이·청소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시작됐다. 어린 학생들이 이웃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직접 듣고 마을을 사랑하는 마음과 함께 자긍심을 갖게 해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그림책 제작에는 동산초교 2학년 1·2반 학생 22명이 참여했다.
송정아·정미향 동산초교 교사와 마을활동가 임혜영 늘품행복마루공동체 대표가 힘을 보탰다.
광주지방법원이 위치한 지산동은 과거 부촌으로 통했으나 세월의 부침을 겪으며 현재는 오래된 주택들이 즐비한 구도심으로 불리고 있다. 학생들은 팀을 꾸리고 지산동을 동서남북 4개 구역으로 나눠 지난 9월 초부터 11월 중순까지 마을들을 탐방했다. 오랫동안 마을을 지킨 상인들부터 최근 개업한 커피숍과 편의점 사장, 공인중개사, 학교 경비원 등 30여명을 만나 기록했다.
완성된 그림책은 초등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다. 한서진 학생은 “○○○집은 여러 가지 과일을 파는 곳이에요. 40년이나 됐어요. 가게 이름은 사장님 딸 이름으로 지었대요. 과일이 너무 맛있어 보여서 한 개 먹어보고 싶었어요”라고 썼다.
조찬흠 학생은 “○○세탁소는 제 친구 할아버지 가게예요. 1980년 시작해서 올해 43년이 되었어요. 쉬는 날도 없이 매일 근무하셨다고 해요. 아직도 한복 세탁이 가장 어렵다네요”라고 적었다. 김찬영 학생은 “○○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빵집이에요. 소금빵이 가장 맛있어요. 왜 빵집 이름을 이렇게 지었냐면 사장님 별명이래요. 정말 귀엽죠?”라고 소개했다.
학생들은 일주일에 한 차례씩 동구 인문학당에 모여 자신들이 취재한 내용을 공유했다. 각자 업종 등 취재 대상은 달랐지만, 마을 주민들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각은 같았다.
고은혁 학생은 “평범하게 장사하는 줄로만 알았던 사장님들의 고충과 슬픈 점을 듣게 돼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면서 “매일 손님들이 북적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은서 학생은 “교실에 앉아 공부하는 것보다 실제 직업을 가진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받아적다 보니 재미있고 꿈을 정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한 음식점 사장은 “아이들이 마을을 소개한다면서 이것저것 묻고 다니는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대견했다”고 말했다.
그림책에는 광주지방법원·지방검찰청 관계자, 구의회 의장 등의 인터뷰와 마을 문화유산에 대한 내용도 포함됐다. 70쪽으로 된 그림책은 지난달 29일 출판돼 동구청과 인문학당, 지역 일선 학교 도서관 등에 배부됐다.
동구청 관계자는 “앞으로도 학생들이 각자의 마을을 사랑하고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사업을 계속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고귀한 기자 g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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