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연료 ‘퇴출’ 빠졌지만…‘10년 안에 전환’ 시기 명시
‘향후 10년 내 전환 가속화’ 담아
“화석연료 종말의 시작” 평가 속
세부적 의미 두고선 다소 온도차
“좋든 싫든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은 피할 수 없습니다. 너무 늦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13일(현지시각)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진통 끝에 ‘화석연료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전환을 가속한다’는 합의가 이뤄졌다는 발표가 나오자 이렇게 말했다. 기대했던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이라는 요구가 수용되진 않았지만, 기왕 합의가 이뤄진 만큼 ‘1.5도 저지선’을 지키기 위한 ‘탈화석연료’를 위한 노력을 본격화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예정된 폐막일을 하루 넘겨가며 통과된 합의문은 ‘화석연료의 생산과 소비를 줄인다’는 문구를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으로 대체하는 등 지난 11일 공개된 초안을 일부 수정했다. 당사국총회 사상 처음으로 ‘화석연료’란 표현을 담았으나, 기존에 논의되던 ‘단계적 퇴출’(phase-out)이나 ‘단계적 감축’(phase-down)보다 후퇴한 표현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특히 화석연료의 ‘퇴출’을 못박지 않아 선언적 의미에 그칠 것이란 우려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협상 과정에서 전환의 시기 등을 조금 더 구체화했다. 막연하게 ‘2050년 이전 혹은 그즈음까지’로 썼던 것을 ‘결정적인 10년 안’으로 바꾼 것이다. 2030년이 되기도 전에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을 피할 수 있는 ‘마지노선’인 1.5도를 초과할 가능성이 50%라는 전망이 나오는 만큼, ‘결정적’ 시기인 2030년이 닥치기 전에 전환을 가속해야 한다고 방향성을 제시한 것이다.
‘1.5도 이내로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제시된 다른 합의 사항들도 세부 조정이 이뤄졌다. 특히 이번 총회에서 처음으로 핵발전(원전)을 포함한 ‘무탄소·저탄소 기술을 가속화한다’는 내용이 초안에 포함됐는데, 협상 과정에서 이와 관련된 탄소 제거 기술에 대해선 ‘특히 감축이 어려운 영역의 경우’라는 전제가 새로 달렸다. 화석연료 퇴출이란 근본적 대응이 아닌 부차적 수단의 남용을 경계한 것이다.
국제사회에선 대체로 이번 합의를 통해 미약하나마 전세계가 화석연료와의 결별을 시작하게 됐다는 데 의미를 부여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합의 수준과 세부적인 의미를 두고는 다소 온도차를 보였다.
사이먼 스티엘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총장은 “두바이에서 화석연료 시대의 페이지를 아예 넘기진 않았지만, 이번 결과는 분명 (화석연료시대) 종말의 시작”이라고 평가했다. 유럽 연구단체 ‘전략적 관점’의 린다 칼허도 “28차 기후총회는 화석연료 시대의 종말을 알리고 세계 경제에서 재생에너지의 엄청난 성장의 시작을 알리는 분명한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했다.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이 빠진 초안을 두고 “석유수출국기구(OPEC·오펙)의 요구를 받아쓴 것처럼 보인다”고까지 혹평했던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도 “기후위기가 본질적으로 화석연료로 인한 위기라는 것을 마침내 인식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이는)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수준이자 진작에 이뤄졌어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계자연기금(WWF)의 스티븐 코닐리어스는 가디언에 “화석연료와 관련한 표현이 훨씬 진전됐다”면서도 “석탄·석유·가스를 퇴출해야 한다는 요구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또 ‘단계적 퇴출’에 결사반대 입장을 보였던 사우디아라비아는 ‘대성공’이라고 평가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은 전했다. 반면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는 ‘작은 섬나라 연맹’은 “(합의안에) 소도서국들이 제출한 의견을 반영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서도 “당사국들이 2025년까지 최대 배출량 감축을 달성하겠다는 약속을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과학을 말하지만, 과학이 말하는 바에 따른 조치를 취하겠다는 약속은 빠져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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