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명문대 총장님들이 떤다…‘반유대주의’ 때리는 월가 큰손
‘유펜’ 총장의 퇴진 끌어내
표현의 자유 억압 지적도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발발 이후 미국 유대계는 하버드대와 펜실베이니아대(유펜), 매사추세츠공대(MIT) 총장 퇴진 운동을 펼쳤다. 미 하원 청문회에서 ‘유대인을 학살하자’고 과격한 주장을 펼친 일부 대학생들의 발언이 ‘학칙 위반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들이 “상황에 따라 결정할 문제”라고 즉답을 피한 것이 발단이 됐다. 클로딘 게이 하버드대 총장은 12일(현지시간) 재신임을 얻었지만 엘리자베스 매길 유펜 총장은 지난 9일 이사회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물러났다.
이 과정에서 존재감을 확실히 과시한 인물이 있다. 헤지펀드 거물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캐피털 회장(57·사진)이다. 그는 거침없는 언사와 집요함으로 캠퍼스 내 반유대주의가 확산하고 있다는 여론을 주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애크먼 회장은 엄청난 양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과 공개서한을 통해 자유와 다양성, 형평성 등에 대한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다”며 그의 집요함이 매길 총장 사임에 결정적 요인이 됐다고 평가했다.
그의 무자비함은 세계적인 건강보조식품 업체 허벌라이프를 상대로 한 싸움에서 드러낸 바 있다. 하버드대를 졸업한 뒤 2004년 퍼싱스퀘어캐피털을 설립해 공격적인 공매도로 이름을 알린 애크먼 회장은 2012년 “허벌라이프의 실체는 불법 피라미드 업체”라며 투쟁을 진행한다. 처음엔 허무맹랑한 주장으로 치부돼 무시당했지만, 불법 피라미드 영업의 문제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끝에 미 연방거래위원회(ETC)로부터 허벌라이프는 2억달러(약 2636억원)의 과태료 철퇴를 맞았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후 애크먼 회장은 특유의 집요함을 드러냈다. 일부 하버드대생이 하마스의 기습을 이스라엘 책임으로 돌리는 성명을 발표하자 그는 성명서에 이름을 올린 학생들의 취업 길을 막아야 한다고 으름장을 놨다. 나아가 ‘취업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사실까지 공개하며 학생들을 압박했다. 하버드대에 공개서한을 보내 “게이 총장이 신속하게 하마스의 테러 행위를 규탄하지 않아 대학가에 유대인 혐오의 물결이 확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펜에서 매길 총장이 물러나자 “한 명은 처리 완료”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애크먼 회장은 이날 WSJ와 인터뷰하며 “사태 초기엔 모두가 유대인 혐오의 문제점에만 주목했지만, 더 큰 문제는 대학 내 이념”이라며 “이념이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집요함이 역풍도 불렀다는 비판이 나온다.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엔 눈을 감은 데다, 대학 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켰다는 지적이다. 그가 대의가 아닌 사감으로 총장들을 몰아세웠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그의 총장 퇴진 운동에 대해 “하마스 기습 이전부터 애크먼 회장은 하버드대에 개인적인 불만이 컸다”며 “수천만달러를 기부한 모교 인사들이 그의 조언을 듣지 않고 있다는 점에 분개했다는 지인들의 증언이 있다”고 전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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