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면역질환에 암치료법 적용했더니 놀라운 일이?

한건필 2023. 12. 1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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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치료법인 CAR-T요법 루푸스, 전신경화증, 중증 근무력증에도 효과
CAR-T 요법이 자가면역질환 증상을 완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암치료를 위해 개발된 CAR-T 요법(키메라 항원 수용체 발현 T세포 요법)이 루푸스를 비롯한 다양한 자가면역질환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는 반가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지난주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미국 혈액학회(ASH) 회의에서 소개된 독일 에를랑겐 대학병원의 발표문을 토대로 과학전문지 《네이처》가 12일(현지시간) 보도한 내용이다.

연구진은 루프스, 전신경화증, 특발성 염증성 근육염 등 세 종류의 난치성 자가면역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 15명에게 CAR-T 요법을 적용한 결과 최장 2년 이후 완치되거나 완치에 가깝게 완화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CAR-T 세포 요법이 언젠가는 자신의 신체를 공격하는 불량 면역세포에 의해 촉진되는 자가면역질환 전체로 확장될 수 있다는 희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CAR-T은 T세포라는 면역 세포를 활용한다. 치료 대상자에게서 T세포를 채취해 키메라 항원 수용체(CAR)라는 단백질을 생산하도록 유전적으로 조작한 다음 환자의 신체에 다시 주입한다. 이때 T세포는 또 다른 면역세포인 B세포가 만든 단백질을 인식하도록 맞춤화된다. 이렇게 새로 주입된 CAR-T세포는 B세포를 표적으로 삼아 파괴한다. 이는 비정상적인 B세포로 인해 발생하는 암을 치료하는 데 유용한 기능이다.

B세포는 때로는 건강한 조직을 공격하는 항체를 만들어 일부 자가면역질환을 유발하기도 한다. 2019년 미국 테네시대 연구진은 이러한 B세포를 인식하는 CAR-T 세포가 다양한 장기에 영향을 미치는 자가면역질환인 루푸스와 유사한 질환을 앓는 생쥐의 증상을 감소시킨다는 것을 보여줬다.

비슷한 시기에 에를랑겐대학병원의 연구진은 암 치료를 위한 자체 CAR-T 센터를 설립했다. 센터에서 열린 회의에서 한 류마티스 전문의가 '전신 홍반성 루푸스'를 앓고 있던 젊은 여성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이 여성은 여러 장기가 망가져 가고 있었고, 의사들은 그녀가 오래 살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젊은 여성은 자신에게 CAR-T 요법을 적용해줄 것을 요청했다.

연구진은 생쥐 실험이면 몰라도 사람에게 바로 임상시험을 시도하는 것을 주저했다. CAR-T 치료는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으며 수혜자는 먼저 기존의 많은 면역 세포를 죽이는 집중적인 화학 요법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 알렉산더 에를랑겐-뉘른베르크대의 파비안 뮐러 교수(종양학)는 샌디에이고에서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 전 기자회견에서 "처음에 우리는 상당히 두려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성은 자신에 대한 임상시험을 단호하게 관철시켰다.

뮐러 교수는 이 첫 번째 임상시험 참가자와 그 뒤를 이은 다른 참가자들은 비교적 경미한 부작용을 경험했다고 보고했다. 연구진은 이를 토대로 전신경화증과 특발성 염증성 근육염이라는 2가지 다른 자가면역질환 치료에도 나섰고 성공은 계속됐다.

다른 연구진도 이 접근 방식을 채택해 성공적 결과를 보고했다. 이달 초 독일 오토 폰 귀릭케 마그데부르크대 연구진은 중증 근무력증이라는 네 번째 자가면역질환을 성공목록에 추가했다. 과학자들은 최종 목록이 얼마나 길어질지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미국 보스턴에 있는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항암 CAR-T 치료법을 설계하는 마르셀라 마우스 박사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며 "1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의 마르코 루엘라 교수(종양학)도 "많은 잠재력을 보여준 연구결과"라고 환영하면서도 이러한 성공의 상당 부분이 참가자들의 기존 면역세포를 죽인 화학요법의 덕분인지 CAR-T 요법 덕분인지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증상 완화가 화학요법으로 잘못된 B세포를 제거한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이다.

뮐러 교수는 치료 전에는 10m도 걷지 못하던 남성이 이제는 일상적으로 10km를 산책하는 놀라운 회속세를 보인 것을 보고하면서 꿈결 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들 젊은이들은 알약 몇 알을 그냥 밀어 넣는 게 아침식사라고 표현하곤 했는데 그런 것들이 모두 사라졌다"면서 "의사 입장에서는 가장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한건필 기자 (hanguru@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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