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기시다파' 비자금 의혹에 궁지…"치명상 입을 수도"(종합2보)
'의혹 시발점' 아베파 각료 4인 교체…"아베파 일소 못하면 구심력 저하" 분석도
(도쿄=연합뉴스) 박상현 박성진 특파원 = 일본 집권 자민당 최대 파벌인 '아베파'의 비자금 스캔들이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이끌었던 '기시다파'로 번지면서 기시다 총리가 궁지로 몰리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사실을 확인해 설명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퇴진 위기' 수준인 20%대의 낮은 내각 지지율에 이번 의혹까지 겹치면서 총리 사퇴 압박 여론이 당 안팎에서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일단 기시다 총리는 비자금 조성 의혹 시발점이 된 아베파 소속 각료 4명을 교체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13일 연 기자회견에서 "정치 신뢰 회복을 향해 자민당의 체질을 일신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신속하게 인사를 하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했다"며 14일 각료 인사에 나설 뜻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하지만 기시다파도 수천만엔(약 수억원)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아베파 인사를 물갈이하더라도 사태가 수습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고 현지 언론은 짚었다.
비자금 의혹, 기시다파에도 불똥…기시다 "사무국에 조사 지시"
13일 NHK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기시다파는 2018∼2022년에 정치자금 모금 행사인 '파티'를 개최하면서 소속 의원이 판매한 '파티권' 수입 중 일부를 정치자금 보고서에 기재하지 않는 방식으로 비자금 수천만엔을 마련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기시다파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 그동안 강하게 부정해 왔던 기시다 총리는 이날 총리 관저에서 취재진 질문에 "사무국에 (정치자금 보고서를) 자세히 조사할 것을 지시했으며, 구체적인 사실이 확인되면 적절하게 설명하도록 할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내놨다.
자민당 정치자금 문제를 수사 중인 도쿄지검 특수부는 지금까지 아베파 비자금 의혹을 집중적으로 조사해 왔지만, 또 다른 파벌인 기시다파와 니카이파도 파티 수입을 부실 처리했다는 의혹이 나오면서 수사 범위를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파가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비자금 액수는 5억엔(약 45억원) 규모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아베파와 니카이파보다 적지만, 기시다 총리가 이끌던 파벌에서도 부정행위가 암암리에 이뤄졌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타격이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신문은 "기시다 총리가 회장을 맡았던 기시다파에서도 정치자금 파티 부실 기재 의혹이 부상했다"며 "대응에 따라서는 여당 내에서 나오기 시작한 총리 퇴진론에 박차가 가해지고, 치명상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기시다 총리는 아베파 비자금 의혹이 커지자 지난 7일 총리 재임 기간에는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기시다파에서 탈퇴하겠다고 밝혔다.
기시다파는 자민당 내에서 소속 의원 47명으로 4번째로 규모가 큰 파벌이다.
요미우리신문은 "기시다 총리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조사 중'이라는 말만 반복한다면 아베파처럼 강한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자민당 내에서는 (기시다파가) 아베파와 동일시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관방장관에 하야시 전 외무상 유력…아베파 반발에 '전원 교체'는 강행 안 할 듯
기시다 총리는 산불처럼 급속히 확산하는 비자금 스캔들을 '진화'하기 위해 14일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산업상, 스즈키 준지 총무상, 미야시타 이치로 농림수산상 등 아베파에 속한 각료 4명을 사실상 경질할 방침이다.
요미우리는 신임 관방장관으로 기시다파 소속 중의원(하원) 의원인 하야시 요시마사 전 외무상이 거론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야시 의원은 방위상, 경제재정상, 농업상, 문부과학상을 역임한 후 기시다 내각에서 2021년 11월부터 올해 9월까지 외무상을 지냈다.
기시다 총리는 비자금 문제로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오랜 기간 기시다 파벌을 지지하고 관방장관으로 안정적으로 답변할 수 있는 하야시 의원이 적임자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요미우리는 전했다.
또 하마다 야스카즈 전 방위상, 사이토 겐 전 법상 등 특정 파벌에 속하지 않은 인물이 신임 각료로 중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함께 기시다 총리는 차관급인 부대신으로 임명된 아베파 5명도 전원 교체할 예정이다.
하지만 부대신보다 직위가 낮은 차관급인 정무관 6명은 일부를 유임시킬 것으로 보인다고 현지 언론은 관측했다.
이와 관련해 요미우리는 "(기시다 총리가) 중진 의원들인 부대신은 파벌 의혹을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어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정무관은 젊은 사람 중심이어서 의혹 관여 정도에 따라 대응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봤다"고 전했다.
기시다 총리는 '정무 3역'으로 불리는 일본 정부 고위직인 각료·부대신·정무관에서 아베파 인사를 전부 축출하는 방안을 고려했지만, 아베파는 물론 자민당 비주류 중진인 이시바 의원 등도 반대하면서 정무관 직책에는 아베파 일부를 남겨두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소속 의원이 99명으로 가장 많고 보수층에 대한 영향력이 강한 아베파를 배려해 기시다 총리가 적절한 선에서 타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아사히는 "모든 아베파 의원을 정무 3역에서 제외한다는 애초 방침을 실행하지 못한다면 총리의 구심력 저하에 박차가 가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자민당 4대 요직(당 4역) 가운데 한 명인 하기우다 고이치 정무조사회장과 다카기 쓰요시 자민당 국회대책위원장 등도 사표를 제출할 뜻을 굳혔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이들은 각료는 아니지만 당의 주요 요직에 있는 아베파의 핵심 인물들이다.
아베파의 비자금 조성이 장기간 조직적으로 이뤄졌음을 시사하는 증언도 나왔다.
아베파 소속 미야자와 히로유키 방위부대신은 이날 기자들에게 "파벌로부터 3년간 140만엔을 받으면서 정치자금 수지보고서에 기재하지 않았다"고 사과하고서 "기재하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말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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