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수공(水攻)

이용수 논설위원 2023. 12. 13.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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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상훈

1938년 6월 일본군이 중국 정저우로 진격했다. 이곳이 함락되면 총사령부가 있는 우한이 위태로웠다. 장제스는 황허(黃河) 제방을 폭파했다. 수많은 일본군이 강물에 휩쓸리며 발이 묶였다. 그런데 이를 주민에게 알리지 않아 무려 89만명이 죽고 1250만명이 집을 잃었다. 일본군은 정저우를 우회해 그해 10월 우한을 접수했다. 일본군의 진격을 넉 달 지연시킨 대가로 제 국민 89만명이 죽었다.

▶2차 대전 때 독일군도 물을 이용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그 후의 마켓 가든 작전에서 연합군 낙하산 부대를 막기 위해 낙하 예상 지점에 수많은 물웅덩이를 만들었다. 실제로 많은 낙하산병이 이 웅덩이에 빠져 익사했다. 이탈리아에서 북진하는 연합군을 막기 위해 대규모 저수지를 터뜨리기도 했다.

▶1~3차 중동 전쟁을 모두 이기며 시나이반도를 차지한 이스라엘은 수에즈 운하 옆에 ‘바레브 라인’이란 모래 방벽을 구축했다. 이집트 침공에 대비한 높이 39m짜리 방어 시설이었다. 이스라엘은 철벽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바레브 라인은 1973년 10월 6일 4차 중동 전쟁 발발 수 시간 만에 무용지물이 됐다. 이집트군이 독일제 고성능 펌프로 물을 뿌리자 모래 방벽은 허무하게 붕괴됐다.

▶세계 최대의 수력발전소인 중국 후베이성 싼샤(三峽)댐은 높이 185m, 길이 2.3㎞에 총저수량은 393억t으로 소양강댐의 13배가 넘는다. 이 댐이 무너지면 양쯔강 하류의 광저우, 난징, 상하이 같은 대도시에서 4억명 넘는 이재민이 발생할 것이란 말도 있다. 우크라이나, 가자지구 다음 전쟁터는 대만해협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상황에서 일부 군사 전문가들은 대만군이 미사일로 싼샤댐을 겨누고 있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억지력이 될 것이라고 한다.

▶하마스와 전쟁 중인 이스라엘의 최대 골칫거리는 땅굴이다. 하마스는 서울 면적의 60%인 가자지구에 총연장 500여 ㎞의 땅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지휘부, 무기고, 벙커, 지하 통로로 활용한다. 과거 이스라엘의 파상 공세에도 궤멸되지 않고 재기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이스라엘로선 땅굴 파괴에 전력을 다할 수밖에 없다. 이미 로봇 부대, 특수공병대, 화학무기, 불도저를 투입해 전방위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다 이제는 지중해에서 끌어온 바닷물을 땅굴에 들이붓기 시작했다. 일부에선 전쟁을 끝낼 전략이라고 하고, 일부에선 땅을 황폐화시킬 반인도적 행위라고 한다. 많은 첨단 무기가 있지만 자연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무서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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