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야구를 하던 오타니의 역대급 '디퍼 계약'…낭만적일까? 현실적일까? [김한준의 재밌는 야구]
미국 메이저리그(MLB)의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29)의 FA(자유계약선수) 계약을 두고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습니다. 오타니가 LA 다저스와 10년 7억 달러(한화 9,240억 원 상당)에 계약했는데, 계약액의 97%인 6억 8,000만 달러를 10년 뒤부터 받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내년부터 2033년까지 10년 간은 해마다 200만 달러만 받고, 계약이 종료되는 2034년부터 2043년까지 6,800만 달러를 매해 연봉으로 받는다는 얘기입니다. '디퍼 계약'이라고도 불리는 지급 유예 조항을 이용해, 연봉 수령 시기를 이렇게 조정한 겁니다.
MLB에선 FA 대형 계약을 맺은 선수들은 지급 유예 조항을 많이 활용하는데, 보통 10~30% 정도이고, 많아야 50%여서 오타니처럼 극단적인 디퍼 계약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인플레이션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만큼, 10년 뒤의 7억 달러는 실제 7억 달러가 아닙니다. 그래서 MLB 사무국은 오타니의 계약 규모를 4억 6,000만 달러로 보고 있습니다. 10년 뒤에 받는 7억 달러이기 때문에, 현재의 가치로는 4억 6,000만 달러 수준이라는 분석입니다.
이런 오타니의 계약 방식을 놓고 찬반이 거셉니다. 당장 금전적으로 큰 손해를 보더라도 팀의 우승을 위해 오타니가 희생했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편법이자 꼼수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계약, 논란의 포인트들을 점검해 봤습니다.
논란의 시발점은 바로 계약 규모입니다. 총 7억 달러 계약은 MLB를 넘어 프로스포츠 사상 최다 금액이었습니다. 대다수 팬들이 전무후무한 슈퍼스타답게 최고 계약을 경신한 오타니에게 열광했는데, 이 계약이 알고보니 사실상 4억 6,000만 달러 수준이었다는 겁니다. 이 부분이 많은 팬들에겐 나름의 실망감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현지 팬 사이트에선 4억 6,000만 달러면 그냥 그렇게 발표할 것이지 왜 7억 달러로 발표해서 혼동을 주느냐는 의견이 적지 않은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발표는 7억 달러였지만, LA다저스는 사치세를 내야 하는 기준인 연간 샐러리캡에서 7,000만 달러가 아닌 4,600만 달러를 적용받습니다. 그러니까 분명 4억 6,000만 달러 계약인데, 명목상으로는 7억 달러라니, 일부 팬들에겐 탐탁지 않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오타니는 7억 달러를 그냥 받을 수 있었음에도 스스로 지불유예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때문에 큰 돈을 포기하고 사실상 4억 6,000만 달러만 받고 끝낸 오타니를 칭송하는 팬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 부분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반응도 극과 극으로 나뉘고 있는 겁니다.
미국은 주마다 세율이 다릅니다. 특히 LA다저스가 있는 캘리포니아주는 주세가 13.3%로 세율이 가장 높은 주로 꼽힙니다.
하지만 10년 뒤 6억 8,000만 달러를 받게 될 때 오타니가 캘리포니아에 살지 않는다면 이 세율대로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됩니다. 사실 일본인인 오타니가 은퇴 후에도 캘리포니아에 머물 이유는 없습니다. 세율이 낮은 미국의 다른 주로 거주지를 옮기거나 아니면 세금을 거의 내지 않는 나라로 거주지를 옮기는 방식으로 절세를 할 수 있습니다.
합법적인 절세의 방식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누구나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절세를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오타니도 예외일 순 없습니다.
다만 돈보다 명예를 추구한다고 널리 알려져 있던 오타니가 이런 누구도 생각지 못한 절세에 나설 수 있는 방안을 얻게 된 것이니, 여론이 일부 부정적으로 흐른 것으로 보입니다.
오타니가 10년 후 어떤 행동을 할지는 알 수 없지만, -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은퇴 후에도 캘리포니아에 거주한다고 조만간 선언할 수도 있겠지만 - 현재 상황만으로는 비판의 여지를 스스로 만든 것도 어느 정도는 맞는 부분입니다.
어찌보면 가장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오타니의 이 선택이 10년 후 15년 후 다저스에게는 족쇄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오타니가 이런 계약을 한 건 자신의 계약 때문에 다른 좋은 선수를 영입하는 데 실패할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서로 알려졌습니다. 실제로 오타니가 10년 간 연간 200만 달러만 받게 되면서 다저스는 현금 유동성에 여유를 찾을 것으로 보입니다. 덕분에 다저스는 우승을 위한 중요한 '칩'으로 작용할 선수를 추가 영입할 여지를 갖게 됐습니다. 오타니에게 덜 준 연봉을 다른 선수에게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다저스가 FA 시장 투수 최대어인 일본인 투수 야마모토 요시노부(25)는 물론, MLB 최고 클로저 중 한명인 조시 헤이더(29)까지 노린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다저스가 남은 돈을 우승을 위해 올인하는 모습입니다. 슈퍼스타들이 모여 우승을 만들어 낸다면 흥행성 측면에선 나쁠 게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10년 후의 다저스는 이런 여유가 있을까요. 다저스는 10년 후부턴 팀에 있지도 않은 오타니에게 해마다 6,800만 달러를 지급해야 합니다. 지금과는 정 반대로 현금 유동성에 제약이 가해질게 분명합니다.
내년 사치세 기준은 2억 3,700만 달러, 매 시즌 300만~400만 달러가 인상되는 걸 감안하면, 2034년의 사치세 기준은 넉넉하게 잡아도 3억 달러 정도로 보입니다. 3억 달러가 사치세인 시대라 하더라도 연간 6,800만 달러는 여전히 큰 규모입니다.
그래서 이 지불유예 금액은 '미래 다저스'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 현재 상황과는 정 반대로, 잡아야만 하는 슈퍼스타를 놓치는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현재의 슈퍼스타 오타니를 위해 미래의 슈퍼스타 누군가에게 일종의 '빚'을 떠넘긴 셈입니다. 만약 이런 시나리오대로 흘러간다면 10년 후의 팬덤은 지금과는 완전히 상반된 모습일 것으로 우려됩니다.
물론, MLB가 지속적으로 몸집을 불리고, 다저스 역시 명문구단으로서 입지를 계속 다져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금력을 갖게 됐다면 이런 생각은 말 그대로 기우로 끝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오타니와 다저스의 이 선택은 MLB 역사상 손에 꼽히는 여러모로 '역대급 계약'으로 칭송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간 '낭만야구'를 해 왔던 오타니의 이번 계약은 여전히 낭만적일까요? 아니면 지극히 현실적일까요? 보는 관점에 따라 완전히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한 가지 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이런 관심조차 바로 오타니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사실 말입니다.
우리는 베이브 루스의 플레이는 직접 보지 못했지만, 정말 운이 좋게도 슈퍼스타 오타니와 함께 동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슈퍼스타의 이번 도박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는 행운도 얻었습니다. 우승을 위해 기상천외한 계약까지 서슴지 않은 오타니가 다저스에서 몇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게 될지 진짜로 궁금해 집니다.
◆ 김한준 기자는?
=> MBN 문화스포츠부 스포츠팀장
2005년부터 기자 생활을 시작해 정치부, 경제부, 사회부 등에서 일했습니다. 야구는 유일한 취미와 특기입니다.
[ 김한준 기자 / beremoth@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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