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이재명, 다시 사과하는 일이 없기를
선거제도를 두고 민주당의 시름이 깊어지는 것 같다. 선거제도 문제는 그것이 놓여 있는 맥락과 경로, 그리고 참여자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미묘하게 얽혀 있는 실타래를 풀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가장 무겁게 생각해야 하는 기억 하나를 깨우치고자 한다.
대통령 선거운동이 뜨거워지던 때다. 2021년 11월11~1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이틀에 걸쳐 고개를 숙였다. 그 전해에 있었던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만든 것이 잘못이라는 사과였다. 사실, 이 후보의 사과는 저강도였다. “우리 당에 잘못이 없다고 할 수 없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돌아온 갈채(喝采)는 고강도였다. “민주당과 이재명이 달라졌다. 내로남불이라 했더니 아니구나. 지난날 잘못을 인정할 줄도 아네. 민주당이 변하고 있나 보다.” 이 후보의 사과로 유권자의 호의가 부쩍 커졌다. 내친김에 이 후보는 위성정당을 만들지 못하도록 하는 위성정당방지법 제정을 민주당에 지시했다.
이 후보의 사과 이유는 분명했다. “민주당과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이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꼼수로 만들어서 의석을 챙겼기 때문에 연동형 비례대표의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 그래서 국민의 다양한 정치 의사를 반영하지 못했다”라고 했다. 이 후보의 말은 민주당의 쇄신 의지를 밝힌 것으로 격려를 받았다. 이에 고무된 이 후보는 한껏 몸을 낮추었다. “개혁정당을 표방하는 민주당이 손익을 계산하며 작은 피해에 연연해 위성정당 창당행렬에 가담해 국민의 다양한 정치 의사 반영을 방해하고 소수 정당의 정치적 기회를 박탈한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깊이 반성한다.” 국민은 그의 사과를 진지하게 수용했다.
이재명 대표도 재작년에 있었던 이 장면을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 주변에는, 민주당도 위성정당을 만들어야 한다. 국민의힘이 십중팔구 위성정당을 만들 것이니 민주당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이런 말들이 흘러 다닌다고 한다. 어이가 없는 얘기다. 이재명 후보가 유세 버스를 타면서 했던 진솔한 고백과 사과가 아직 귀에 생생한데 그 말을 뒤집는다면 민주당과 이재명의 신뢰는 어떻게 될까? 정치인이라도 합당한 이유가 있으면 말을 바꿀 수 있다고 하지만 이 경우는 말을 한 번 바꾸는 게 아니라 거듭 바꾸는 거라서 문제가 가볍지 않다.
더 놀랄 일은, 민주당이 병립형 비례대표제도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소문이다. 국민의힘과 함께 거대양당의 몫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구상이라고 한다. 귀를 의심케 하는 말이다. 병립형 비례대표제가 양대 진영정치를 조장하고 소수 정당의 의회 진출을 어렵게 한다는 건 이미 상식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을 친 결과 아쉬우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도 마련한 것이 아니었나? 그런데 이를 다시 과거로 되돌릴 수도 있다 한다니 절망이다. 국민의힘이야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도 동의하지 않았으며 애당초 선거제도 개혁에는 관심조차 없는 정당이었기 때문에 병립형 비례제도로 돌아가자고 주장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민주당은 국민의힘과 다르지 않은가? 민주당이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선택은 양당 기득권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가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간다면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야합’했다는 비난이 뒤따를 것이다. 그 손가락질을 민주당이 어떻게 견디려는지 걱정이다.
그럴 바에는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 이 제도는 대표성 강화와 정치적 다양성 실현을 위해 정치개혁을 한 뼘이라도 전진시켜 보자는 눈물겨운 노력의 산물이었다. 민주당과 소수 정당, 그리고 시민사회가 힘을 합하여 이룬 정치연합의 열매였다. 안타깝게도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만들면서 비례성 강화라는 정치개혁의 장전은 너덜너덜해지고 얼룩이 지고 말았으나 그것이 정치개혁의 역사에서 이룬 ‘진일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것의 문제점을 다듬고 메워서 기회가 있을 때 또 한 걸음 앞으로 나가면 된다.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맹점인 위성정당 문제는 다양한 방지 장치를 만들면 된다. 그 장치가 허술한 점도 있겠으나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개혁을 위해 ‘권력의 절반을 내줄 용의도 있다’고 했다. 선거제도 개혁은 어느 쪽에는 조금씩 손해를 혹은 어느 쪽에는 조금씩 이익을 가져오겠지만 체제 전체에는 보탬이 되는 규범의 변화다.
선거제도 개혁을 두고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 후보 시절에 했던 사과를 뒤집고 다시 사과하는 일만큼은 없었으면 좋겠다.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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