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삶] 크리스마스에는 사랑을
좋아하는 작가가 크리스마스카드를 판매해서 몽땅 샀다. 이름을 되뇌는 것만으로 새로운 시작이 기다려지는 ‘시작사’의 크리스마스카드다. 설레는 마음으로 주문한 카드를 받았는데 문제가 생겼다. 나에겐 이 카드를 모두 보낼 만큼 친구가 없다는 쓸쓸한 문제가. 크리스마스에 대한 설렘이 인간관계에 대한 반성으로 산산이 흩어지는 순간이었다.
크리스마스카드를 정말 보내고 싶다. 어디 가서 급히 사람을 사귀어 볼까? 기왕이면 나처럼 외로운 사람이면 좋겠다. 싱거운 말을 해도 애틋이 들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 음, 생각해보니 그런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 같다. 외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을 들일 만한 마음의 공간이 없어 외로운 거니까. 그렇게 크리스마스의 설렘을 나누고자 했던 나의 계획은 결국 또 서랍 속에서 다음을 기약한다. 카드를 작품으로 소장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지….
도시 전체가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고 있다. 명동 백화점 앞에선 건물을 감싼 화려한 빛을 촬영하기 위해 매일 밤 인파가 몰리고, 청계천에선 이미 루미나리에 축제가 한창이다. 이렇게 거리의 빛이 눈에 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좋은 신호다. 한창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마음이 삭막했던 때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자아내는 모든 것들이 공해처럼 느껴졌고 ‘청계천 빛 초롱 축제’란 글자도 ‘청계천 빚 조롱 축제’로 보였다. 지난 10년간 크리스마스는 내 어둠을 더 어둡게 보이도록 만드는 나쁜 빛에 불과했다.
사랑은 외로움과 소외를 동반한다. 모두가 사랑을 외치는 크리스마스엔 그만큼 큰 외로움과 소외가 세상을 덮친다. 이런 징후를 반복해서 겪다 보니 나의 고독은 더 이상 캐럴이나 멜로 영화로 달래지지 않는다. 한술 더 뜨는 걸 좋아하는 나는 이제 사랑이 외롭고 소외된 이들의 전유물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다큐멘터리 <모어>(2021)와 에세이 <털 난 물고기 모어>를 통해 세상에 공개된 적 있는 모지민, 제냐 부부의 이야기를 소중히 두고 읽는다.
드래그 아티스트이자 무용가인 모지민과 한국으로 유학을 온 러시아인 제냐는 1998년 만나 연인이 되었고, 20년 후인 2017년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리며 부부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오랜 관계는 늘 위협을 받았다. 제냐는 비자가 만료되어도 러시아로 돌아가기 힘든 반독재인사이자 성소수자였다. 그가 배우자인 모지민과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은 혼인 비자를 받거나 난민으로 인정받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동성혼이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난민 인정이 까다로운 한국은 그들의 안전한 관계를 보장해줄 수 없는 사회였다.
2023년 10월27일. 오랜 노력 끝에 제냐는 마침내 난민으로 인정을 받았고, 지민은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눈물을 흘렸다. 제냐의 난민 지위 인정으로 이들의 관계는 비로소 안정을 찾았지만 양국 사회의 혐오와 차별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두 사람의 사랑은 여전히 위태로운 투쟁이다. ‘난민이 되어서야 지켜낼 수 있는 사랑’이란 무엇일까? 왜 어떤 이는 사랑을 함에 있어 큰 용기를 내야 하며, 모든 걸 이겨낸 ‘용감한 사랑’이 되어야 하는 걸까?
지난 8일 기독교대한감리회는 ‘퀴어 퍼레이드에서 축복식을 집례’하고, ‘성소수자 환대 목회’를 했다는 이유로 이동환 목사에게 출교 처분을 내렸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이 모든 혐오를 이긴다는 것을 판결로 증명해 주십시오”라고 했던 이동환 목사의 최후진술에 대한 교회의 답변이었다. 혐오가 사랑을 이기고 말았으니 다음 단계는 다시 투쟁일까? 그의 항소를 위해 뜻을 보태면서도 왠지 울분이 가시지 않는다.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크리스마스에는 사랑을.’ 캐럴이 흐르는 거리에 서서 이 밝고 포근한 멜로디에 맞서 투쟁하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복길 자유기고가 <아무튼 예능>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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