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숨의 위대한 이웃] 부황남 “같이 밥을 먹어요가 가장 좋아요”

기자 2023. 12. 13. 20:2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엄마아빠가 있어서 왔어요. 같이 살려고 왔어요.” 소년은 지난 6월에 한국에 왔다. 엄마아빠가 한국에 있어서, 엄마아빠와 한국에서 같이 살기 위해서였다. 올해 12세인 소년은 엄마아빠와 같이 살기 위해 무려 12년을 기다렸다.

소년을 우리는 중도입국청소년이라고 부른다. 외국에서 한국에 이주해 살고 있는 부모와 함께 살기 위해 청소년기에 한국으로 이주한 청소년인 것이다. 소년이 태어난 곳은 베트남 남딘. 하노이에서 남동쪽으로 90㎞ 떨어진 곳. 소년의 아빠는 14년 전, 그가 스물한 살이던 해에 한국어시험에 합격하고 근로자 비자로 한국에 왔다. 그때 소년은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2년 뒤, 소년이 태어나던 날 아빠는 한국에 있었다. 소년이 태어난 날짜와 시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아빠는 아들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전화로 전해 듣고 자신이 믿는 하느님께 기도했다. 소년은 아빠를 여섯 살 때 처음 봤다. 아빠를 본 적도 없는데 소년은 아빠가 보고 싶었다. “난 아빠는 볼 수 없으니까, 보고 싶었어요. 난 아빠를 볼 수 없으니까, 아빠가 왔을 때 아빠를 기억해뒀어요.”

“엄마가 떠나는 거 몰랐어요.” 소년이 두 살 되던 해 엄마는 부모님께 소년을 맡기고 유학비자로 한국에 왔다. 소년이 12세가 되는 동안 엄마는 두 동생을 낳았다.

소년의 가족이 지금 사는 곳은 경남 양산시. 소년에게 남딘이 시골이라면 양산은 도시다. 소년은 양산이 좋다. 도시여서 좋은 게 아니라 ‘엄마아빠가 있어서’ 좋은 것이다. ‘엄마아빠와 같이 살 수 있어서’ 양산이 많이 좋고 양산에서 ‘계속’ 살고 싶다. 엄마아빠와 그리고 두 동생과 같이 살게 된 소년에게 ‘같이 살아서’ 좋은 점은 무얼까. “같이 놀아요. 같이 자요. 같이 밥을 먹어요.” 그중에 “같이 밥을 먹어요, 가 가장 좋아요.”

“베트남에 가서 살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하면서도 소년은 베트남이 그립다. ‘마일로’라는 자신이 이름을 지어준 개가 소년은 많이 보고 싶다. 내년 여름에 소년은 베트남에 갈 것이다. “엄마하고 동생들하고요. 아빠는 안 가요. 아빠는 일해야 하니까요.” 아들이 “좋은 사람, 서로 도와주며 사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는 아빠는 3, 4년 전 부모님과 함께 살기 위해 고향에 커다란 집까지 새로 지었지만 가지 않았다. 어느덧 한국에서 지낸 세월이 14년. 첫 직장이던 지금의 직장에 14년째 다니고 있는 한국에서 계속 살며, 한국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어서였다.

부황남 같은 중도입국청소년들이 한국에 입국해 가장 먼저, 가장 크게 겪는 어려움은 언어. 얼마 전까지 자신들이 살던 나라의 언어가 제1언어였던 그들은 한국어 사용이 쉽지 않다. 한국에서 살면 공부하기 위해 당장 한국어를 배워야 한다. 오늘 소년이 학교에서 한국어수업 때 한국어로 쓴 문장은 “나는 운동을 좋아해”. 가장 먼저 배운 한국어는 ‘일, 이, 삼, 사, 오, 육, 칠, 팔…’. “꿈. 알아요. 꿈. 쓴 적 없어요.” 한국어를 조금 아는 소년은 그런데 답답하지 않다. “‘잘 모르겠으니 선생님께 물어봐야겠어요’ 해요. 그래서 안 답답해요. 물어보는 거 안 부끄러워요.” 학교수업이 끝나면 소년은 양산시 백동의 전교가르멜수녀회에서 운영하는 ‘물만골지역아동센터’로 가, 그곳에 다니는 아이들과 어울리며 수녀님들께 한국어와 영어, 산수를 배운다. 그곳에는 중도입국청소년이 여럿 있다. 국적이 다양한 아이들은 ‘같이 공부하고, 같이 밥을 먹고, 같이 뛰어놀며’ 은연중 서로의 세계를 넓게, 세계로 확장시켜준다. 센터의 시계가 6시30분을 가리키면 소년은 “엄마아빠가 계신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간다. 짙어진 어스름을 헤치며 야무지게 발을 놓는 소년의 앞에 또렷이 떠 있는 별. “별? 몰라요.”

“아, 별! 알아요.” 소년은 웃는다. 소년이 모르는 것은 별이 아니다. ‘별’이란 글자다. 아직 배우지 않아서다. 버스정류장에서 소년은 시간표를 본다. 15분 뒤, 집으로 가는 버스가 올 것이다. 소년은 엄마아빠와 같이 살기 위해 12년을 기다렸다. 지금 소년이 기다려야 하는 시간은 15분. 조금은 외져 한적한 도로에 버스 불빛이 떠오른다. 소년 앞에 도착해선 더 환해진 불빛을 타고 소년은 ‘오늘도 엄마아빠가 계신 곳으로 돌아간다.’ 그렇게나 좋아하는 ‘같이 밥을 먹어요, 같이 잠을 자요’를 오늘도 계속하기 위해서.

김숨 소설가

김숨 소설가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