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28 진통 끝에 '화석연료 전환' 합의…'석유시대 종말' 첫 신호탄(종합)
폐막일 하루 넘겨 합의문 채택…재생에너지 3배 확대·탄소 포집기술 활용
(서울=뉴스1) 김성식 기자 = 제28차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 당사국총회(COP28)에서 진통 끝에 각국이 '화석연료로부터 벗어난다'는 역사적인 합의를 도출했다. 합의문에 기후위기의 주범인 화석연료를 줄여야한다는 내용이 명시된 건 28년 총회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국제사회가 드디어 석유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첫번째 신호탄을 발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198개 당사국은 13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폐막 총회에서 "과학적 근거에 따라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 제로(0)를 달성하기 위해 정의롭고 질서정연하며 공평한 방식으로 에너지 체계를 화석연로부터 전환한다(transition)"는 합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지난달 30일 개막한 COP28은 당초 전날(12일) 폐막할 예정이었지만 산유국들의 거센 반발로 합의문 초안에 '화석연료를 단계적으로 퇴출한다(phase-out)'는 문구가 제외되자 미국·유럽연합(EU)과 기후위기에 취약한 도서국들이 합의문 채택을 거부하면서 회의 기간이 하루 늘어났다.
대략 보름 간의 논의를 종합해 지난 11일 의장국 UAE가 작성한 첫번째 합의문 초안에는 당초 옵션 중 하나로 거론된 화석연료의 퇴출 대신 "화석연료의 소비와 생산을 공정하고 질서정연한 방식으로 감축할 수 있다"는 내용이 수록됐다.
이는 산유국들의 압박에 UAE가 꼬리를 내린 결과로 풀이됐다. 실제로 지난 8일 석유수출국기구(OPEC) 사무총장은 '화석연료 퇴출을 반대하라'는 서한을 13개 회원국에 발송했다. 세계 1위 원유 수출 대국인 사우디아라비아도 '에너지 발전원이 아닌 탄소 농도가 문제'라며 퇴출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산유국들은 화석연료의 사용을 상쇄하기 위한 대안으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붙잡아 땅과 바닷속에 묻는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기술을 전면에 내세웠고, 첫번째 초안에도 반영됐다. 그러나 CCUS는 상용화된 기술이 아닌 데다 막대한 비용이 소요돼 당장은 실현하기 어렵다는 게 과학계의 중론이다.
이에 미국은 '지구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하로 막을 마지막 기회를 날리는 것'이라고 비판했고 지구온난화로 해수면 상승을 겪고 있는 도서국들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다'고 혹평했다. EU도 '초안의 문구가 너무 약하다'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화석연료 퇴출에 찬성한 국가들은 198개 당사국 중 과반인 130여개국으로 추산됐다. 각국 대표단은 전날 밤부터 UAE 기후변화 특사인 술탄 알 자베르 COP28 의장실을 드나들며 새로운 합의문 초안에 보다 강경한 표현을 넣기 위해 밤새 물밑 협상을 이어갔다.
UAE는 이날 오전 고심 끝에 '화석연료의 퇴출'보다는 온건하지만, '감축할 수 있다'는 표현보다는 분명한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을 두번째 초안에 담아 공개했다. 전환을 개시하는 시기는 '2020년대부터'(this decade)로 정확한 연도가 표기되지는 않았다.
첫번째 초안에 담긴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용량을 3배 확대하고 △상당한 양의 메탄을 감축하며 △석탄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쇄한다는 문구는 이견이 없었던 만큼 그대로 유지됐다. △감축하기 어려운 화석연료를 대체하기 위해 CCUS 기술을 사용한다는 문구도 살아남았다.
COP 의사결정 구조상 별도의 표결 없이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국가가 없으면 만장일치 동의로 간주해 합의문이 채택된다. 이날 오전 11시에 시작된 폐막 총회에서 알 자베르 COP28 의장이 두번째 초안을 설명하자 각국 대표단은 일제히 기립 박수를 보냈다고 BBC 방송은 전했다.
알 자베르 COP28 의장은 폐막 연설에서 이번 합의를 역사적인 결과물로 평가하면서도 진정한 성공은 각국의 이행 여부에 달려있다고 당부했다. 그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우리(We)가 된다"면서 "이 합의문을 가시적인 행동으로 바꾸는 데 필요한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존 케리 미국 기후변화 특사는 "다자주의가 실제로 힘을 합친 순간"이라며 "사람들이 각자의 이익을 취하면서도 공동선을 정의하려고 시도했다"고 말했다. 에스펜 바르트 아이데 노르웨이 외무부 장관은 "인류가 화석연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명확한 문구를 중심으로 단결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다만 카리브해와 태평양, 인도양 등에 위치한 도서국들 모임인 군소도서국가연합(AOSIS)은 화석연료의 퇴출 문구가 끝내 누락된 데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앤 라스무센 AOSIS 수석 협상대표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급진적인 변화인데 이번 합의문은 평소와 같이 점진적인 진전을 이뤘다"고 꼬집었다.
화석연료에서 벗어난다는 합의가 타결된 만큼 각국은 국가 정책에 이를 반영해야 한다. COP 합의문은 조약과 달리 그 자체로는 법적인 구속력이 없다. 이날 별도의 서명 절차가 없었던 이유다. 대신 각국의 국내 입법 절차를 통해 COP28 합의 이행이 강제된다.
1995년 독일 베를린에서 첫 COP총회가 열린 이후 28년 회의 역사상 총회 합의문에 석탄·석유·천연가스를 아우르는 화석연료의 사용을 중단한다는 내용이 들어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021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COP26에선 각국이 석탄 발전을 감축하기로 합의해 화석연료 퇴출을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지만 그간 석유 및 가스 부문은 산유국 반대에 가로막혀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차기 총회인 COP29는 내년 11월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다. 정부 간 탄소거래 및 국제 탄소거래 시스템 개발은 이번 두바이 회의에서 충분히 논의되지 못한 만큼 COP29를 통해 관련 합의문이 나올 전망이다.
seongs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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