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두바이의 ‘툰베리들’

안홍욱 기자 2023. 12. 13.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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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소녀 리시프리야 칸구잠이 11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연합 두바이에서 열리고 있는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회의장에서 화석연료 사용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두바이|AP연합뉴스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는 15세였던 2018년 ‘기후를 위한 학교 파업’ 시위를 시작해 청소년 환경운동의 아이콘이 됐다. 인도의 12세 소녀 리시프리야 칸구잠은 ‘인도의 툰베리’로 불린다. 그런데 칸구잠은 “그렇게 부른다면 나를 잘 모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툰베리와는 다른 방식, 그만의 정체성이 있단 얘기다.

칸구잠은 5년차 환경운동가다. 불과 8세 때 직접 고안한 ‘미래를 위한 생존 키트’ 수키푸(SUKIFU, Survival Kit for Future)는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식물을 심은 화분을 재활용 플라스틱에 넣고 튜브로 호흡기 마스크를 연결했다. 일종의 휴대용 산소탱크다. 수키푸를 착용하고 뉴델리 의회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인도의 대기오염이 극심한데, ‘당장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곧 우리의 미래가 될 것’이라는 메시지였다. 칸구잠은 정부에 대기오염을 줄일 법을 만들고, 기후변화 수업을 의무화하라고 촉구했다. ‘차일드 무브먼트’(아동운동)를 만들어 지구 보호 캠페인에도 나섰다.

칸구잠이 11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회의장에 불쑥 나타났다. 소녀는 손팻말을 들고 연단으로 올라가 ‘화석연료 사용을 중단하라. 지구와 우리의 미래를 구하라’고 외쳤다. 회의를 주재하던 마지드 알수와이디 COP28 사무총장이 소녀의 기습에 당황했다. 칸구잠은 1분도 안 돼 회의장 밖으로 끌려나갔지만, 객석에선 박수가 나왔다. 브라질 아마존 선주민 타이사(13)는 COP28에서 ‘지구의 허파’ 아마존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후변화와 자연 파괴의 실상을 얘기했다.

13일 채택된 COP28 합의문에 2030년까지 ‘화석연료에서 멀어지는 전환’을 가속화한다는 표현이 담겼다.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은 중동 산유국들의 반발로 빠졌는데, 이 때문에 폐회 일정도 하루 미뤄졌다. 석유 수출 세계 6위인 UAE가 총회 의장국이 될 때부터 우려됐던 일이다. 전 세계가 2050년까지 탄소중립(넷제로)에 도달하는 길이 험난하다는 걸 보여줬다.

지구가 뜨거워지면 인간의 생명권·식량권·건강권·주거권이 영향받는다. 미래 세대인 어린 환경운동가의 몸짓과 외침은 어른들을 부끄럽게 한다. 지구와 미래를 구하기 위해 지금 나서야 한다는 툰베리들의 외침에 응답해야 한다.

안홍욱 논설위원 a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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