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윤심' 업고 당대표 올랐지만 9개월만에 '민심'에 하차
친윤·영남 일색…수도권 위기론에 안일하게 대처
혁신위 '주류 희생' 결단 미뤄…거취 압박에 사퇴
[서울=뉴시스] 정성원 기자 =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취임 9개월 만에 당대표직에서 물러났다. 김 대표는 '윤심'(윤석열 대통령 의중)의 지원을 받아 당권을 거머쥐었지만, 종속적인 당정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해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내년 총선 전초전인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패한 김 대표는 인요한 혁신위원회를 통해 혁신에 나섰지만, '주류 희생' 수용을 미루다 그 자신이 혁신위를 좌초시키면서 거취 압박을 받게 됐다.
김 대표는 13일 오후 5시5분께 자신의 페이스북에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사랑하는 당원 동지 여러분. 저는 오늘부로 국민의힘 당대표직을 내려놓는다"고 밝혔다.
지난 3월8일 전당대회에서 52.93%를 얻어 선출된 지 9개월 만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여당 대표로서는 2연속 중도 하차를 기록하게 됐다.
'윤심' 주자로 발돋움…친윤·영남 일색 지도부 한계
김 대표는 '당정 일체'를 무엇보다 강조했다. 이준석 전 대표가 지난해 지방선거 이후 윤 대통령, 친윤계 인사들과 대립각을 세우다 당 중앙윤리위원회 중징계로 대표직이 정지됐던 점을 경계했다.
그러나 김 대표의 당정 일체는 사실상 '수직적·종속적 당정 관계'로 전락하면서 당의 목소리를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에 전달하지 못한 '용산 바라기' 비판에 직면했다.
대통령실과 정부가 민심에서 벗어난 정책을 내놓거나 언행을 할 경우 당이 정확한 민심을 파악한 뒤 쓴소리를 전달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대표적으로 육군사관학교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 이념 논쟁 등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거나 민심에 맞지 않은 인사에 별다른 비판을 내놓지 못했던 점 등이 꼽힌다.
김 대표가 주도적으로 진행했던 민생 행보 '김기현이 간다'는 여야 정쟁과 이념 논쟁으로 사실상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가 유일하게 공동위원장을 맡은 '청년정책네트워크'는 무기한 중단된 상태다.
김 대표가 공약했던 55·60(당 지지율 55%, 윤 대통령 지지율 60% 달성)도 30% 박스권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공수표가 됐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사법 리스크 등 호재를 만났지만, 윤 대통령 지지율과 당 지지율이 연동되면서 어느 한쪽에서 리스크가 불거지면 두 지지율이 모두 출렁거렸다.
김 대표가 전당대회에서부터 누누이 강조했던 '연포탕'(연대·포용·탕평)은 실현되지 못했다.
우선 김 대표의 취약한 기반이 연포탕 실현에 발목을 잡은 것으로 분석된다. 전당대회 직후 구성된 1기 지도부에는 공이 큰 친윤계·영남권 인사들을 대거 기용하면서 연포탕을 포기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비주류 인사들 사이에서는 이준석 지도부를 무너뜨리고 구성된 친윤 지도부라는 인식이 많다. 전당대회 당시 친윤계가 유력 당권 주자였던 나경원 전 의원을 비롯해 경쟁자인 안철수 의원 등을 '집단 린치'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김 대표가 갈등을 빚었던 홍준표 대구시장을 상임고문직에서 갑자기 해촉한 점도 실책으로 인식되고 있다.
강점으로 꼽혔던 '소통'의 부재도 뼈아픈 지점이다. 김 대표는 당내 전략회의 등을 통해 지도부 의견을 청취했지만, 비주류 및 당 안팎 인사들과의 소통은 부실했다는 평가가 많다. 언론과의 접촉도 자체적으로 축소하면서 스스로 민심에서 멀어졌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수도권 위기론' 안일…혁신 내세웠으나 스스로 걷어차
일부에서는 후보자를 내려고 하지 않았던 김 대표가 친윤계의 출마 주장에 밀려서 억지로 보궐선거에 나서게 된 점을 꼬집고 있다. 여기에 당초 어려웠던 선거를 전국구급으로 부풀리면서 패배 책임을 키웠다는 지적도 있다.
보궐선거 참패 이후 출범시킨 인요한 혁신위원회는 김 대표에게 마지막 기회로 여겨졌다. 그러나 김 대표 스스로 혁신 기회를 걷어찼다는 비판에 직면하면서 불출마와 거취 압박이 쏟아져 나왔다.
김 대표는 1호 혁신 안건 '대사면'을 통 크게 받아들이면서 혁신을 기대하게 했지만, 이어서 나온 '당 지도부·중진·친윤 핵심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 권고에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그는 지역구인 울산 남구을에서 의정보고회를 열고 "내 지역구가 울산이고 내 고향도 울산이다. 지역구를 가는데 왜 시비인가"라고 날을 세우며 불쾌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같은 자리에서 윤 대통령과의 소통을 강조하면서 혁신위의 희생 압박에 윤심으로 맞서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불러왔다.
이후 혁신안을 관철하려던 인 위원장의 '공천관리위원장' 자천을 즉각 거부하는 사태까지 이어지면서 혁신위와의 관계가 악화했다. 이에 혁신위는 '주류 희생' 권고를 정식 안건으로 올리고 조기에 활동을 종료했다.
혁신위 조기 해산은 김 대표의 불출마 요구에 더해 거취 압박으로 이어졌다.
중진 하태경·서병수 의원이 지난 주말 대표직 사퇴를 촉구하고, 친윤 초선 의원들이 의원 단체채팅방에서 "내부 총질", "자살특공대" 등의 표현을 써가며 김 대표 '호위무사'를 자처하면서 김 대표에 대한 여론이 극도로 악화됐다는 평가다.
지난 12일에는 친윤 핵심 장제원 의원이 가장 먼저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김장 연대'로 묶인 김 대표 또한 대표직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압박이 더욱 커졌다. 이에 김 대표는 지난 11일 오후부터 이틀간 칩거 끝에 대표직을 던지게 됐다.
김기현 울산 출마 가능성도…여, 14일 수습 방안 논의
김 대표가 대표직을 던지면서까지 울산 남구을에 출마할 경우 '주류 희생' 요구에 불응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당정이 혁신을 도와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 윤 대통령 의중과도 맞지 않을뿐더러 장 의원의 불출마 선언으로 불이 붙은 '주류 희생' 수용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지적도 있다.
일각에선 김 대표가 대표직을 내려놓더라도 울산 출마를 보장하는 출구를 열어줘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사퇴론을 가장 먼저 꺼낸 하태경 의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불출마를) 결단할 경우 울산 출마는 당이 양해해 주는 타협안이 나오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한편, 국민의힘은 오는 14일 오전 국회에서 3선 이상 중진 의원 연석회의와 최고위원회의를 잇따라 열고 수습 방안을 논의한다. 윤재옥 원내대표가 리더십 공백을 메우면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전환 등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공감언론 뉴시스 jungsw@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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