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행정망 먹통사태 보도 유감
행정전산망 대규모 먹통 사태가 발생한 것도 어언 몇주가 지났다. 기술적 결함의 가능성은 늘 있는 것이기에 이번 사태 자체는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건의 후속 처리와 대응은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문제를 신속히 식별하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계속 바뀌는 정부 당국의 해명으로 국민은 혼란스러웠다.
더구나 사건 발생 초기 엉뚱한 서비스 시스템을 사건의 발단으로 발표하는 등의 미숙한 대응으로 인해 중구난방 추측이 난무했으며, 언론은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단편적 의견을 사실처럼 보도했다. 대부분의 전문가가 익명이었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 몇 년 동안 가짜뉴스의 사회적 현상과 파장을 연구해온 나에겐 이번 사태에 관한 일련의 보도가 흥미로우면서도 안타까웠다.
이번 사태의 발단으로 '정부24'와 지방행정시스템 '새올'이 주목됐다. 무슨 이유에선지 꽤 많은 기사가 중소기업이 이들 시스템을 개발한 것임을 강조했다. 마치 중소기업이 원인인 것처럼 해석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서로 관련이 있어 보이는 단편적 조각들을 짜 맞추면 그럴듯한 그림이 된다. 그러나 상관관계는 인과관계를 나타내지 않는다. 상관관계는 피상적 현상들의 관련성을 말하는 반면 인과관계는 특정 현상과 이면의 원인요소 간 관계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런 식의 보도에서는 그런 흔한 상관관계조차 없었다.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를 포함한 주요 IT 기업들이 서비스 오류와 보안 위협에 직면한 수많은 사례가 있다. 대규모 IT 기업들의 시스템 장애 사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으므로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안타깝지만 그런 경우는 너무나도 흔하다.
이번 먹통 사태와 관련된 근본적인 문제는 인프라에서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24에 국한되지 않고 인프라를 공유한 다양한 서비스에 영향을 미쳤고, 노화된 네트워크 장비의 교체와 수리로 문제가 해결됐다는 정부의 공식 발표가 이를 뒷받침한다. 데이터 유출이나 네트워크 장애로 인한 서비스 중단 같은 보안사고는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여러 가능성이 있어 꽤나 까다로울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 시스템 개발 기업에 책임을 돌리는 것은 마치 다리 붕괴로 인한 운전 불능을 자동차 제조업체 탓으로 돌리는 것만큼이나 비합리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먹통 사건을 기회삼아 특정 메시지를 지지하는 기사들도 있었다. 국가안보 우려를 제기하고 공포를 조장하며 공공서비스에 대기업의 전반적인 참여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이미 특정 규모 이상의 프로젝트에 참여 기회를 부여한 현 제도가 있음에도, 그들은 대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를 주장한다. 대기업이 만들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는 게 주요 이유다.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의 본래 취지인 중소기업 육성과 대기업의 독과점 방지가 간과되고 잊혀진 듯하다.
더욱 우려되는 부분은 이러한 주장들에서 SW(소프트웨어) 개발에 대한 계급적인 시각을 읽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중소기업이 개발한 제품이 대규모 IT 기업이 개발한 것보다 본질적으로 열등하다는 왜곡된 관점이 담겨있는 것이다. 이를 IT산업에서의 '카스트 제도'라 칭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중소기업들은 종종 특정 분야에 특화돼 있으며, 대기업이 부족할 수 있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서비스 솔루션 개발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형적 규모만으로 품질을 추론하는 계급적, 차별적 태도는 중소기업 종사자들의 사기를 꺾는 것임은 물론, SW산업 육성이라는 국가적 대의에도 치명적 장애가 될 수 있다.
이 사고를 계기로 당국의 대응능력도 배양돼야 한다. 여기에는 시스템 고장과 회복을 위한 명확한 절차 및 국민과의 효과적 소통전략이 포함된다. 그러나 대응 매뉴얼이 있다고 해서 신속한 대응력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비상 시 책임 당사자들이 조율된 방식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실전 같은 규칙적 훈련과 교육이 중요하다.
이번 사태가 SW나 데이터의 품질과 관련 있을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도 있었다. 물론 그런 영역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만, 이번 사건과 연결된 객관적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래도 개발 품질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됐던 만큼, 향후 문제 발생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한 가지 제언을 더 하고자 한다.
높은 서비스 품질을 기대하려면 적정한 사업 대가가 보장돼야 한다.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논쟁을 떠나 적정 사업 대가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않으면 우수한 인재 유치는 기대할 수 없다. 저가 중심의 경쟁입찰 제도와 유지보수를 단순히 비용 요인으로 간주하는 관행은 진지하게 재검토돼야 한다. 이런 제언을 너무 원론적이라 한다면 역설적으로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알려진 바로는 내년 디지털정부 사업 예산이 상당히 줄어든다고 한다. 디지털플랫폼 정부를 표방하면서 투자와 유지보수 예산을 축소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예산 배분과 우선순위를 고민해야 하는 정부 입장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그러나 배분 자원의 한계로 불가피하다면 정책의 획기적 전환을 고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사업예산이 삭감된 상황에서 대기업 진입 제한을 철폐해 설혹 이에 호응하는 대기업이 있다 한들 최소한의 수익성 보장을 위해 중소기업 외주로 비용을 낮출 것이 너무나도 자명하다.
사실 이런 형태의 아웃소싱은 자주 있는 일이다. 제한된 예산과 수익성 확보를 위한 비용 전가라는 현실적 문제를 해소하려면 제공자 중심의 사업 대가 산정 방식을 사용자 호응도가 높은 서비스에 더 큰 이익이 배정되는 이용자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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