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밀려 사퇴한 김기현 대표···‘윤심’ 작용했나
“당 소생을 위한 봄비” 대 “공천 파동의 서막”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13일 대표직을 사퇴했다. 전날 친윤석열계 핵심인 장제원 의원의 총선 불출마 선언 후 거취를 고심하다 하루 만에 결단을 내린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지난 3·8 전당대회에서 출범한 김 대표 체제는 9개월여 만에 막을 내렸다. 국민의힘은 윤재옥 원내대표의 대표 권한대행 체제를 거쳐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는 절차를 밟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 대표는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오늘부로 국민의힘 당대표직을 내려놓는다”며 “많은 분들께서 만류하셨지만 윤석열 정부의 성공과 국민의힘의 총선 승리는 너무나 절박한 역사와 시대의 명령이기에 ‘행유부득 반구저기’(行有不得反求諸己·어떤 일의 결과를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의미)의 심정으로 책임을 다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 당이 지금 처한 모든 상황에 대한 책임은 당대표인 저의 몫이며, 그에 따른 어떤 비판도 오롯이 저의 몫이다. 더 이상 저의 거취 문제로 당이 분열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김 대표는 “이제 총선이 불과 119일밖에 남지 않았다”며 “윤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당을 빠르게 안정시켜, 후안무치한 민주당이 다시 의회 권력을 잡는 비극이 재연되지 않도록 저의 견마지로를 다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지난해 이준석 전 대표가 징계로 물러난 후 치러진 3·8 전당대회에서 독보적인 ‘윤심’(윤 대통령 의중) 후보로 당선됐다. 태생적인 한계로 인해 수직적인 당정관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을 줄곧 받았다. 지난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후 인요한 혁신위원회와 2기 지도부 출범으로 사퇴 여론을 돌파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연포탕’(연대·포용·탕평) 공약은 대체로 지키지 못했고, 불출마·험지 출마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서 인요한 위원장에게 전권을 주겠다던 약속을 어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최근 총선 판세가 크게 불리하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잇따랐고,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 장제원 의원이 불출마 선언까지 하자 당내 사퇴 요구가 빗발쳤다. 이에 김 대표는 대표직을 내려놓고 지역구(울산 남구을)를 지키는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가 임명한 김예지 최고위원, 유의동 정책위의장, 박정하 수석대변인 등이 사의를 밝혔지만 윤 원내대표가 반려할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에선 윤 대통령이 네덜란드 순방을 떠나기 전 김 대표와 장 의원에게 당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말이 나온다. 김 대표의 사퇴에도 윤심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윤 원내대표 주도로 비대위 체제로 전환한 후 공천관리위원회와 선거대책위원회를 가동할 것으로 전망된다. 공천 룰을 정할 공관위 출범은 이달 중순에서 내달로 미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야당의 쌍특검법(대장동 50억 클럽·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을 대통령 재의 요구권(거부권) 행사 후 폐기 처리한 뒤 현역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총선 물갈이가 본격화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KBS 라디오에서 “초·재선 의원들의 공천에 손을 대고 싶은 사람이 김 대표를 쫓아내려고 할 것”이라며 김 대표의 사퇴는 “공천 파동의 서막”이라고 말했다.
당내엔 김 대표의 결단을 주장했던 의원들 중심으로 “선당후사에 경의를 표한다”(하태경 의원), “당의 소생을 위한 봄비”(성일종 의원)라는 평가가 나왔다. 김 대표 측근 그룹에선 부당한 여론몰이로 대표가 사퇴하게 됐다는 불만도 나왔다. 한 초선 의원은 통화에서 “우리가 만든 당대표를 이렇게 흔들어서 사퇴하게 하는 건 맞지 않는 태도”라고 말했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바지 대표로 뽑힌 김기현 대표는 용산의 지시에 충실했을 뿐, 지금 국민의힘이 처한 모든 상황은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 아니냐”며 “껍데기만 남은 국민의힘이고, 윤석열 측근 검사들이 주축이 된 검찰당일 것이 불 보듯 자명하다”고 밝혔다.
조미덥 기자 zorro@kyunghyang.com, 이두리 기자 red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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