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대장정의 끝···이순신 장군의 최후 어떻게 풀어 냈을까[리뷰]
최민식·박해일 이어 김윤석 ‘우뚝선 섬’ 같은 연기
100분 해상 전투 ‘압권’… 20일 개봉
임진왜란 발발 7년 차인 1598년 9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에서 철군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가 죽자 순천 등 남해 곳곳에 왜성을 짓고 버티고 있던 왜군들은 조선에서 퇴각할 궁리를 한다. 이순신은 이들을 순순히 돌려보낼 생각이 없다. 노량해전은 이렇게 시작된다.
<노량: 죽음의 바다>(<노량>)가 지난 12일 언론시사를 통해 베일을 벗었다. <명량>(2014), <한산: 용의 출현>(2022)에 이은 이순신 3부작의 마지막인 <노량>은 전편 누적 관객 수 2500만명에 달하는 프로젝트의 대단원을 마무리하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역사상 최대 해전이자 이순신의 최대·최후의 전투인 노량해전을 압도적인 스케일로 그려낸다.
영화는 앞선 두 편 작품이 그랬던 것처럼 전란 속 정치·사회적 상황을 설명하는 전반부와 해상 전투신 중심의 후반부로 나뉘어 전개된다. 전작과 차이라면 이번에는 명나라 원군이 참전한다는 점이다. 선조의 구원 요청을 받고 파견된 명군이 끼고,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셈법은 복잡해진다.
순천왜성에 고립된 왜군 수장 고니시(이무생)는 명군에 수급(적군의 머리)을 뇌물로 바치며 퇴로를 열어줄 것을 요청한다. 명나라 역시 더 이상의 희생을 원치 않는다. 명군의 수장 진린(정재영)은 이순신에게 “이만하면 됐다”고 하지만 이순신은 물러서지 않는다. 원수들을 살려보낼 마음이 없는 이순신과 달리 임금과 조정은 ‘이미 끝난 전쟁’이라 보고 그를 압박한다. 각기 다른 세력들이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전반부는 치열한 외교전의 양상을 띤다.
영화 중후반부 시작돼 장장 100분에 걸쳐 그려지는 대규모 해상 전투신은 이번에도 관객의 기대를 충족시킨다. 배의 머리로 왜군의 군함을 박살내고, 왜군이 친 진의 허리를 끊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장면이 선사하는 쾌감은 여전하다. 명량·한산대첩과 달리 밤에 치러진 전투인 만큼 전작과 다른 색감의 화면이 펼쳐진다.
제작진은 바다에 배 한 척 띄우지 않고 스튜디오 촬영과 시각특수효과(VFX) 기술로 전투신을 완성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린 강릉스케이트장에 실제 크기의 판옥선 등 세트를 지어 촬영한 뒤 VFX 기술을 입혔다. 10년은 VFX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인 <명량>과 비교해도 어색함이 매우 적고 자연스럽다.
<노량>이 사실상 이순신 장군의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인 만큼 그의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김한민 감독은 전작들이 받았던 ‘국뽕’, 신파 코드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듯 비교적 담백한 톤으로 러닝타임을 구성했다. “싸움이 급하다. 내 죽음을 내지 말라.”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 것을 주문하는 장군의 마지막은 비장하기보다 담담하다. 언론시사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한민 감독은 “전쟁 속에서 오열 없이 조용히 치러지는 죽음에 진정성과 진실함이 담겨 있다”며 “제가 담고자 했던 <노량>의 정수가 그 장면에 있다”고 말했다.
영화 말미 삼국 병사의 시선에서 차례로 펼쳐지는 롱테이크와 이들이 펼치는 아비규환 속 이순신의 모습에서는 이 전쟁에 대한 감독의 태도가 엿보인다. 이순신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장수들의 명단을 눈으로 훑은 뒤 불에 태워 바다에 재를 날리는 신은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기도 하다.
배우 김윤석이 최민식, 박해일의 바통을 이어받아 이순신 장군을 연기했다. 김윤석은 고독하게 우뚝 선 섬과 같은 연기를 한다. 불처럼 뜨거웠던 최민식의 이순신, 고요한 바다 같았던 박해일의 이순신과는 또 다른 매력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왜군 수장 시마즈를 연기한 백윤식, 명나라 수군을 이끈 진린과 등자룡 역의 정재영, 허준호 등 조연 배우들의 활약은 영화를 빈틈없이 채운다. 허준호의 등자룡은 마치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간달프를 떠올리게 한다.
<노량>은 여러모로 어깨가 무겁다. 프로젝트의 대단원을 잘 마무리하는 것 외에 동원 관객 수 720만명이라는 손익분기점도 넘겨야 한다. 극심한 침체기를 겪다 최근 <서울의 봄>으로 모처럼 살아나고 있는 한국영화계와 극장업계가 거는 기대도 크다. 연말 극장가를 찾은 두 작품이 성공적인 이어달리기를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0일 공개. 러닝타임 152분. 12세 이상 관람가.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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