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뉴엘 솔라노 "시력 잃고나니 예술이 더욱 간절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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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서울 사간동 페레스프로젝트 갤러리.
"맞아요. 쉽지는 않았어요. 현실이 너무 혹독하니 차라리 눈이 안 보이는 게 축복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현실이 저를 버티게 해준 버팀목이 됐습니다. 저를 믿고 지지해주는 가족과 친구, 제게 힘을 주는 동료 예술가들이요. 그들이 있었기에 제가 보통의 사람으로, 가장 평등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전시는 내년 1월 1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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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첫 개인전 '파자마' 개최
어린 시절 즐거웠던 모습 담아
조수 도움 받아 촉각으로 그려
구겐하임미술관 등도 작품 보유
"행복한 상태에서 영감 더 얻어"
지난달 30일 서울 사간동 페레스프로젝트 갤러리. 한 여성이 무릎을 꿇은 채 아이들이나 갖고 놀법한 블록을 조심스럽게 쌓아 올렸다. 큼지막한 블록부터 새끼손톱만 한 작은 블록까지 차례대로 쌓아 올리는 그의 모습을, 사람들은 숨죽이며 지켜봤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퍼포먼스에 사람들이 빨려든 것은 퍼포머가 시각장애인이어서다. 주인공은 멕시코 출신 예술가 마뉴엘 솔라노(36). 그는 남자로 태어나 여자의 삶을 살고 있는 트랜스젠더다. 26세 때 에이즈 합병증으로 시력을 잃었지만 회화, 비디오, 퍼포먼스 등 다양한 영역에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영화 같은 그의 스토리는 미국 뉴욕타임스와 영국 가디언 등 유수 언론이 다뤘고, 그의 작품은 구겐하임 등 세계적 미술관들이 영구 소장하고 있다.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그림을 그린다는 걸까. 정말 자기가 그린 걸까. 그가 페레스프로젝트에서 한국 첫 개인전 ‘파자마’를 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여러 궁금증이 떠올랐다. 퍼포먼스가 끝난 뒤 만난 솔라노에게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이라고 운을 띄우자, 그는 웃으며 받아줬다.
“제일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예요. 저는 조수들과 함께 일합니다. 제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설명하면 조수들이 캔버스 위에 못과 핀, 줄을 놓죠. 그러고 나면 제가 손가락으로 그 위를 따라서 그림을 그려요. 시각 대신 촉각으로 작품을 만드는 거죠.”
이번 전시 주제는 솔라노의 어린 시절이다. 파자마를 입고 뛰놀거나 친구와 귀여운 입맞춤을 했던 기억을 떠올려서 그렸다. 특히 사탕이 들어 있는 인형을 두들겨서 깨는 멕시코 전통놀이 피냐타를 그린 ‘빅 버드’(2023)는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그렸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아이의 털옷과 인형의 질감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나 자신을 드러내고 싶다’는 욕구는 시력을 잃으면서 더욱 커졌다. “처음엔 제가 앞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마치 장난인 것처럼 느껴졌어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거든요. 곧 현실을 직시하게 되자 ‘이렇게 계속 살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럴수록 예술이 더 간절해지더군요. ‘예술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끊이지 않았거든요.”
시력을 잃기 전 사실적인 회화를 주로 그렸던 그는 “붓 대신 손가락을 사용하면서 본능과 감정에 더욱 집중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어떤 예술가들에겐 우울함이 영감이 되기도 하지만 나는 행복한 상태에서 더 많은 영감을 받는다”며 “그래서 항상 친구들을 만나고, 여행을 다니면서 행복감을 유지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힘들지 않았냐’는 물음에 솔라노는 미소를 머금은 채 어깨를 으쓱했다. 긴 침묵 끝에 나온 대답은 이랬다.
“맞아요. 쉽지는 않았어요. 현실이 너무 혹독하니 차라리 눈이 안 보이는 게 축복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현실이 저를 버티게 해준 버팀목이 됐습니다. 저를 믿고 지지해주는 가족과 친구, 제게 힘을 주는 동료 예술가들이요. 그들이 있었기에 제가 보통의 사람으로, 가장 평등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전시는 내년 1월 14일까지.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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