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선지 같은 무대, 더욱 짙어진 향기…10주년 맞은 '묵향'[리뷰]
[서울=뉴시스] 박주연 기자 = 한 장의 화선지 같은 무대. 거문고와 콘트라베이스가 태초의 선율을 만든다. 흰 장삼의 선비들이 고요하고 위엄 있는 동작으로 계절의 시작을 알린다. 붉은 빛의 매화는 겨울을 깨트리고, 여름날의 난초는 청초하다. 샛노란 국화는 늦가을의 추위를 이겨내고 피어오른다. 겨울에도 푸르른 대나무는 유연하면서도 강인하다.
국립극장 전속단체 국립무용단 '묵향'이 10주년을 맞아 더욱 짙은 향으로 다시 돌아왔다.
2013년 첫 선을 보인 '묵향'은 정갈한 선비정신을 사군자를 상징하는 매·난·국·죽에 담아 한 폭의 수묵화처럼 펼쳐낸 작품이다. 모두 6장으로 구성됐다. 서무와 종무는 먹향을 품은 백색과 흑색으로, 2~5장은 사계절을 상징하는 매화·난초·국화·대나무를 화려한 색채로 표현한다. 무대를 압도하는 강렬한 색감, 세련된 비주얼은 매 순간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이 작품은 고(故) 최현 안무가의 '군자무'(1976년 안무작)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안무가 윤성주(전 국립예술단 무용감독)는 13일 국립극장에서 열린 전막시연 프레스콜에서 "최 선생님의 작품이 충격적이어서 나도 그런 춤을 만들어보고 싶었다"며 "도공이 매난국죽을 그리는 작품이었는데 그 작품이 발단이 됐다"고 설명했다.
초연 당시 윤성주가 안무를, 패션·공연·영화·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정구호가 연출을 맡았다.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관객들은 간결한 양식미와 강렬한 색감, 아름다운 한복 디자인에 환호했다.
동시대 한국춤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렸다는 평가를 받은 이 작품은 10년간 국내외 무대에서 흥행을 이어갔다. 10개국에서 43회 공연하며 국립무용단 대표 레퍼토리로 자리잡았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화선지 네 조각과 매·난·국·죽을 상징하는 화려한 색채, 달항아리처럼 봉긋 부풀어 리듬감 있게 흔들리는 한복 치마와 짧은 저고리는 우리 춤의 아름다움을 극적으로 강조했다. 정구호 연출은 이 작품을 시작으로 '향연', '산조' '일무'로 '정구호식 한국무용' 스타일을 굳히며 국내외에 반향을 일으켰다.
안무가 윤성주는 "묵향을 이렇게 오래 하게 될 줄 몰랐는데 10년간 국내외에서 43회 공연했다"며 "43회 공연하며 43번 안무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출연자가 바뀔 때마다 조금씩 바꿨지만 기본적 안무의 틀은 그대로"라고 소개했다.
"처음에는 매·난·국·죽만 하려다가 서무와 종무를 붙여서 6장으로 구성했어요. 인도 시인 타고르가 한국을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했는데, 서무에서는 그런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죠. 밝은 도화지 같은 무대에서 하얀 옷을 입은 선비들이 동양의 색을 활짝 열어주는 느낌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1장이 하얀 도포를 입은 남성들의 춤이라면 2장 '매화'는 여성들의 춤이다. 여성무용수의 솔로로 시작해 여성군무가 하나씩 합세하며 가냘프면서 예리한 춤사위를 선보인다. 정가로 시작해 합창으로 이어지는 음악은 매화의 만개와 이른 봄의 시작을 알린다. 무대는 점점 만개한 꽃으로, 붉은 빛으로 가득 찬다.
3장에서는 깊은 산중 은은한 향기를 전하는 난초가 그려진다. 남녀 무용수들이 가야금·거문고 4중주에 맞춰 도포의 소맷자락을 감싸고 붓을 들어 난초를 치는 선비의 모습과 고혹적인 향을 발하는 난초꽃을 표현한다.
4장에서는 노란빛으로 익어가는 너른 들판 속 노란 국화가 표현된다. 여성 무용수들이 국화 문양이 가득 무대에서 진양조의 해금 선율에 맞춰 깊이 있는 춤사위를 선보인다.
5장은 선비의 기개를 상징하는 대나무의 무대다. 무용수들의 손에 쥐어진 긴 장대가 하늘을 가르고, 바닥을 치며 대금산조의 선율과 어우러진다. 윤 안무가가 대나무가 바닥을 칠 때의 청량한 음색, 불교의 죽비를 생각하며 안무했다.
무대를 마무리하는 6장은 가야금의 휘몰이 장단과 바이올린이 하모니를 이룬다. 동양과 서양의 만남, 음과 양의 조화가 조화로움을 찾아간다.
"이 작품의 핵심은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길고 짧은 호흡, 치맛자락 아래로 언뜻 스치듯 보이는 내밀한 버선발의 움직임이에요. 버선발의 디딤새와 손놀림, 팔의 사위. 한국무용에만 있는 좌우새 같은 춤사위는 전세계에서 우리나라에 밖에 없습니다. 한국의 정서가 녹아있는 우리 춤이 외국인들에게 굉장히 새로운 이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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