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범 막는 게 사회에도 유익…또래처럼 공부할 기회 줘야
[왜냐면] 교도소 ‘소년학교’ 어떻게 볼 것인가
오창익 | 인권연대 사무국장
올해 수능 때 색다른 기사가 눈에 띄었다. 교도소의 청소년 수용자들이 수능 시험을 봤다는 기사였다. 한때의 잘못 때문에 교도소에 갇혔지만, 법무부 교정본부의 도움으로 수능 준비에다 시험까지 볼 수 있었다. 반가운 일이다. 공부할 나이라면 당연히 공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은 이름도 근사했다. ‘만델라 소년학교’.
범죄자가 무슨 공부냐는 사람도 있다. 교도소에 보낼 만큼 나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공부까지 시켜주는 게 맞냐는 거다. 범죄는 당연히 범죄자의 잘못이다. 그 책임도 당사자에게 묻는 게 맞다. 그러나 청소년의 범죄는 가족과 사회를 이끌어 온 어른에게도 적지 않은 책임이 있다. 가정폭력, 학교폭력 등이 범죄로 이어지기도 하고, 성장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하기에 꼭 소년에게만 책임을 묻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그래서 미성년자의 범죄는 형사처벌을 앞세우기보다 소년원에 보내는 등 소년보호 프로그램을 적용하는 게 좋다. 어쩔 수 없이 교도소에 가뒀다고 해도 또래 청소년들처럼 공부할 기회는 줘야 한다.
범죄자가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돕는 게 교도소의 존재 이유다. 단순히 죗값을 치르는 것만으로는 너무 부족하다. 극단적인 범죄자가 아니라면 형기를 마치면 사회로 돌아와 우리의 이웃이 될 사람들이다. 어린 청소년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범죄자라고 교도소에서 허송세월만 한다면, 수용자 자신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손해다. 기술을 익히거나 진학하지 못해서 사회에 나와서도 역할을 찾지 못한다면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커진다.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앙심만 품고 산다면, 세상은 더 불안해질 거다.
‘만델라 소년학교’ 학생은 대부분 17살 미만이다. 기초학력이 부족해 자격증 취득을 위한 기술교육을 받기도 힘들다. 기초부터 차근차근 검정고시 공부를 시켜야 하고,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한 사람 중에서 공부에 뜻이 있는 사람에게만 대학 진학의 기회를 제공하는 거다.
교정 현실은 열악하다. 과밀 수용으로 몸살을 앓는 데다, 교정·교화를 실현할 만한 여건도 너무 부족하다. 올해 예산 1조7690억원이 커보이지만, 대부분 인건비와 수용자 관리 비용일 뿐이다. 교도소의 설립 목적, 곧 교정·교화에 배정된 예산은 고작 70억원이다. 수용자가 6만명이 넘으니, 1인당 교육비는 연간 11만원이 조금 넘는다. 이 돈으로 직업훈련, 사회복귀 교육과 심리치료까지 챙겨야 한다. 사실상 불가능한 도전이다. 열악한 상황에도 법무부 교정본부가 교사 자격증을 가진 직원들을 찾아서 청소년들의 공부를 챙기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사실 교도관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가둬놓고만 있는 게 편할 거다. 인력과 예산을 아낄 수 있고, 이런 식의 교육을 할 때마다 불쑥 터져 나오는 세간의 비난도 듣지 않을 수 있다. 대개 여론은 소년범이라도 엄벌만 하라는 요구가 많다.
그래도 뭔가 해보겠다고 나선 까닭은 뭘까. 수용자들을 오랫동안 지켜보니 교도소에서 허송세월만 해서는 수용자 자신은 물론 우리 사회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거다. 안전한 사회를 위해 공직자로서 해야 할 기본을 확인했기 때문일 거다. 실제로 사회를 공포로 몰아넣은 흉악범 중에는 소년 시절부터 범죄를 반복했던 사람이 적지 않다. 따끔하게 야단을 쳤을지는 모르지만, 교정·교화에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소년은 개선 가능성이 크지만, 자칫하면 더 나빠질 가능성도 크다.
범죄에 단호하게 대응하고 그 책임을 묻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기서 멈추면 안 된다. 재범을 막기 위한 국가 차원의 노력이 중요하다. 그게 범죄자 자신은 물론 사회에도 유익하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법무부 교정본부가 ‘만델라 소년학교’를 만들어 10명의 청소년에게 수능에 응시할 기회를 준 것은 그래서 정말 고마운 일이다. 내년에는 좀 더 많은 교육 기회를 보장했으면, 좀 더 많은 수용자에게 교육 기회를 보장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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