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K-99 검증위 “상온 초전도체 근거 없어···저항 큰 부도체일 뿐”

[초전도저온학회 검증위 백서]
서울대·포스텍 등 8곳서 시료 제작
저항·자화율 측정···기준 못 미쳐
퀀텀에너지硏 4개월째 논문 심사
"실험실 재현 실험은 충분" 주장

[서울경제]

국내 한 연구진이 세계 최초의 상온 초전도체라고 주장하는 물질 ‘LK-99’가 초전도체의 성질을 가지지 않으며 오히려 전기가 잘 통하지 않는 부도체에 불과하다는 국내 전문가 그룹의 검증 결과가 나왔다. 해외 검증 결과들에 더해 LK-99가 초전도체가 아니라는 시각이 학계에서 우세해진 가운데 해당 물질을 개발한 연구진은 정식 논문 게재 등 자신들의 주장을 증명하는 작업을 지속 추진할 것으로 전해졌다.

퀀텀에너지연구소가 세계 최초의 상온 초전도체라고 주장하는 물질 ‘LK-99’. 연합뉴스

한국초전도저온학회 산하 LK-99 검증위원회는 13일 발표한 ‘LK-99 검증백서’를 통해 “LK-99가 상온·상압 초전도체라는 근거는 전혀 없다”며 “검증 결과들은 LK-99가 저항이 매우 큰 부도체임을 알려주고 있다”고 밝혔다. 이석배 대표가 이끄는 퀀텀에너지연구소 연구진은 올해 7월 사전 논문 공개 사이트 ‘아카이브’를 통해 상온 초전도체를 개발했다고 주장했으나 검증위는 4개월에 걸친 검증 작업을 통해 초전도체의 특성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초전도체는 전자들이 매우 원활하게 움직여 전기저항이 0인 물질이다. 전력손실 없이 송전할 수 있으며 자기부상열차처럼 자석 위에서 안정적으로 공중 부양하는 고유 특성인 ‘마이스너 효과’를 응용할 수도 있다. 현재까지 발견된 초전도체는 섭씨 영하 200도 내외의 극저온 환경에서만 특성이 구현되기 때문에 상용화에 한계가 있다. 반면 LK-99가 개발진의 주장대로 비교적 상온에 가까워 실제 활용이 쉬운 영상 127도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체라면 산업계에 미치는 파급력이 상당해 전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사전 논문 발표 직후 여러 국내외 연구그룹이 관심을 갖고 진위 여부 검증에 나섰다.

국내에서는 김창영 기초과학연구원(IBS) 강상관계물질연구단 부단장이 위원장을 맡고 서울대·포스텍 등 대학 연구실 8곳이 참여하는 LK-99 검증위가 8월에 꾸려졌다. 이들 기관은 각자 사전 논문에 나온 제조법대로 만든 ‘LK-99 시료’의 저항과 자화율을 측정하는 실험을 했다. 검증위는 이들 실험 결과를 종합해 LK-99가 초전도체가 아니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실제 초전도체가 자석 위에서 뜨는 마이스너 효과를 표현한 이미지. 사진 제공=게티이미지뱅크

결론의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LK-99 시료의 저항이 0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은 물론 부도체 수준으로 크다는 점이다. 사전 논문에서 임계온도(127도)와 가까운 100도 근처에서 저항이 급감하는 변화가 나타났다고 했지만 이는 불순물의 영향이라는 게 검증위의 분석이다. 최경달 초전도저온학회장은 “제조법대로 LK-99 시료를 만들면 불순물인 황화구리가 의도치 않게 함께 합성된다”며 “온도 변화에 따라 이 불순물이 상전이(상태 변화)하면서 저항에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불순물을 임의로 제거한 단결정, 즉 순수한 LK-99 시료의 저항은 오히려 100억 옴(Ω)이라는 매우 큰 값을 가졌다. 이는 돌멩이와 같은 수준으로 전기가 잘 통하지 않는 부도체임을 보여주는 결과다.

아울러 자화율 역시 초전도체에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석 근처에서 덩달아 자석의 성질을 갖는 철처럼 물질이 특정 조건에서 자석으로 변하는 현상을 자화라고 하며 자화하는 정도가 자화율이다. 초전도체는 자화하지 않는 반자성 물질로서 기본단위 기준 -1의 자화율을 가지지만 LK-99 시료의 자화율은 -1보다는 0에 가까운 음수였다. 또 자화율도 저항처럼 임계온도를 넘나들 때 큰 변화가 나타나야 하지만 LK-99 시료는 그 값이 변하지 않았다. 반자성으로 인해 자석 위에서 공중 부양하는 마이스너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검증위는 다만 8곳의 기관들이 직접 제작한 시료를 대상으로 검증했을 뿐 퀀텀에너지연구소가 직접 제공한 시료를 통한 교차 검증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는 한계를 인정했다. 이에 이날 잠정적 결론이 나온 이후에도 퀀텀에너지연구소가 시료를 외부에 제공한다면 교차 검증을 통해 LK-99 논란이 재점화할 가능성도 있다.

권영완 고려대 교수가 11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R&D센터에서 열린 LK-99 관련 고려대 연구진실성위원회 조사결과 설명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고려대 연구진실성위원회는 김현탁 미국 윌리엄앤드메리대 연구교수가 권 교수에 대해 제기한 연구 윤리 위반 의혹에 관해 연구 부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연합뉴스

검증위는 출범 직후부터 퀀텀에너지연구소에 시료 제공을 요청해왔지만 최근까지도 퀀텀에너지연구소 측은 논문 심사 중이기 때문에 당장 시료를 제공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퀀텀에너지연구소는 재료과학 분야의 국제 학술지에 LK-99 논문을 싣기 위해 4개월째 심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전 논문 저자 중 한 명인 권영완 고려대 교수는 이달 11일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LK-99가 여전히 초전도체라고 믿는다”며 “실험실 안에서 재현 실험은 충분히 했다”고 밝혔다.

김윤수 기자 sook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