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DP 울산] 트레비어 [2] “트레비어 양조장에는 예술 축제가 열립니다”
[IT동아 x 울산시 x 디자인주도 제조혁신센터] 한국디자인진흥원은 울산대학교에 ‘울산디자인주도 제조혁신센터’를 마련했습니다. 유망한 중소기업·스타트업의 디자인 경쟁력 강화를 돕는 곳입니다. IT동아는 ‘디자인주도 제조혁신지원 사업’ 선정 기업을 소개하고 이들의 스케일업을 지원합니다.
[IT동아 권명관 기자] 트레비어는 국내에서 8번째로 소규모 양조면허를 획득, 수제맥주를 제조해 판매하고 있다. 국내 1세대 수제맥주 양조장이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진심을 담은 맥주를 선보이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트레비어 수제맥주 프랜차이즈 사업도 진행 중이다.
트레비어의 시작은 지난 2002년 울산시 남구에 문을 연 이탈리안 레스토랑부터다. 이듬해 주세법 개정에 맞춰 소규모 양조 면허를 획득한 뒤 ‘트레비 브로이 하우스’를 열었고, 2014년 소규모 주류 제조자의 외부 유통을 허가하는 주세법 개정에 맞춰 독일과 캐나다에서 수제맥주 제조설비를 들여와 울산 울주군에 1500평 규모의 제1공장을 준공했다. 또한, 2018년 3월 연간 60만 리터 생산 규모의 제2공장을 준공, 현재 연간 맥주 생산량은 240만 리터 규모로 영남 지역 최대 생산 규모다.
트레비어는 설립 이후 수제맥주 생산과 직매장 운영, 유통, 프랜차이즈 사업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양조장 바로 맞은편에는 수제맥주와 함께 피자, 독일의 족발 요리라고 불리는 ‘슈바인학센’ 등을 판매하는 트레비어 펍을 운영하는데, 마치 어느 유럽에 위치한 캠핑장과 같은 인테리어로 조성해 가족, 연인 등으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황찬우 트레비어 이사는 “양조장을 설립할 때부터 누구나 편하게 방문해 휴식하며 여유를 보낼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단순히 맥주를 만들고 판매하는데 그치지 않고 지역 주민들과 같이 어울릴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었다”라며, “지역 동반 성장을 핵심 가치로 추구하고 있다. 지역의 문화적 다양성을 확장하고, 지역 공동체가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여름, 트레비어는 울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시각예술 창작단체 ‘PP’와 함께 수제맥주와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아투어리 at 트레비어(이하 아투어리)’를 개최하기도 했다. 아투어리는 트레비어의 양조장, 창고 등 유휴공간을 활용해 청년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창고형 아트페어와 공연, 영화 상영회, 캠핑, 예술가와 함께하는 네트워킹 등이 어우러진 축제다.
이에 IT동아가 울산 디자인주도 제조혁신센터에서 황찬우 트레비어 이사(이하 황 이사)와 김유경 창작단체PP 공동대표(이하 김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사람이 찾지 않는 공간을 예술로 알립니다
IT동아: 지난여름, 트레비어가 지역 주민들과 함께한 예술 축제 아투어리를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수제맥주를 생산하는 양조장에서 문화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공연을 제공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금 놀랐었다. 아투어리는 트레비어와 PP가 함께 기획했다고 들었는데, PP에 대해서 소재를 부탁한다.
김 작가: PP는 비영리 예술 단체다. 회화, 설치, 미디어, 조각 등 시각예술가들이 모여 있는 작가 그룹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울산을 기반으로 다양한 예술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으며, 젊은 창작자들이 안정적으로 문화 예술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인프라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버려진 공간을 살릴 수 있는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우리 주변에는 사람이 머물다가 떠난 공간들이 있다. 젊은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 점차 사람의 발길이 뜸해지고 있는 지방의 농가, 신도시 개발로 인해 더 이상 찾지 않는 구도심, 한때 산업의 중심이었지만 더 이상 채굴되지 않아 버려진 탄광 등이다. 이처럼 여러 내외부적인 이유로 점차 사람이 찾지 않는 공간들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사람이 머물다 떠난 공간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오래도록 지역에 공헌한 영웅적인 인물이나 장인이 정성스레 만든 건물이나 작품 등에서 숨겨진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는 예술가에게 영감을 제공한다. 공간의 이야기에서 예술을 창작하고, 이를 통해 다시 사람을 불러 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공간을 다시 활성화시킬 수 있는, 마치 도시 재생 프로젝트처럼 말이다.
IT동아: 공간의 이야기를 예술로 표현해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 수 있다는 것인가.
김 작가: 맞다. 예술가들이 창작 활동할 수 있는 영감을 제공하고, 작품 발표와 전시 등을 통해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프로젝트다. 이러한 취지에 공감했던 김이화 작가와 함께 PP를 만들었고, 여러 시각예술가들과 함께 유연한 구조로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서울에서 울산으로 내려온 뒤에는 울산에 숨어 있는 공간을 알리는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다원예술 프로젝트 ‘미래의 돌(2021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거점사업 ‘헤테로토피아(2022, 울산문화재단)’, 작은 미술관 사업 ‘장생포엔 고래가 없다(2022,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화 다음 사업 ‘Void/Vacancy(2022, 울산문화재단)’ 등을 수행한 바 있다.
‘미래의 돌’은 울산시 성남동에 위치한 갤러리에서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작품을 발표하고 전시했던 예술 공연이었으며, ‘헤테로토피아’는 울산시 성남동 문화의거리에서 예술가와 시민이 만나 공감할 수 있는 전시회, 예술 교류 활동 등이었다. ‘장생포엔 고래가 없다’는 한때 고래잡이(포경)로 유명했던 울산시 울산만 연안에 있는 포구를 바탕으로 진행했다. 고래잡이의 전진기지로 조명 받았던 과거와 달리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IWC)에서 상업포경을 금지한 뒤 쇠퇴하는 마을의 변화를 꾀했었다.
이처럼 없어지는, 사라지는 공간에 활력을 넣고 싶었다. 이야기가 남아 있는 공간, 소재를 찾을 수 있는 공간을 찾아간다. 천편일률적인 전시회, 작품 발표회가 아닌 PP만의 특색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양조장에서 열린 예술 축제, ‘아투어리’
IT동아: 이야기를 들을수록 두 분의 만남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궁금하다. 외람되지만, 시각예술가인 김 작가님과 수제맥주를 생산해 판매하는 황 이사님이 만날 수 있는 접점은 많지 않았을 것만 같은데.
황 이사: 하하.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주관하는 ‘예술인 파견 지원 사업’을 통해 처음 만났다. 해당 지원 사업은 예술가를 기업에 파견해 기업의 조직문화, 근무환경 등을 개선할 수 있도록 연계하는 사업이다. 울산문화재단이 보낸 안내 이메일을 내용을 확인하고, 마침 트레비어가 고민하고 있던 부분의 조언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해 김 작가님을 만날 수 있었다.
트레비어는 지난 2014년 울산시 도심에서 다소 벗어난 지역인 울주군에 트레비어 양조장을 준공하면서, 이곳을 지역 주민들이 찾아올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이에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방법을 찾는 와중에 김 작가님을 만났다. 그렇게 지난 2018년, 김 작가님을 포함 예술가 5명과 함께 기획한 맥주 페스티벌을 열었다.
맥주 페스티벌은 2018년과 2019년 총 2회 열었는데, 행사 기획부터 운영 등 전반적인 부분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었다. 페스티벌 로고 작업을 포함한 전반적인 디자인 설계를 비롯해 맥주와 관련된 굿즈 제작, 페스티벌에 참여한 관람객의 체험 활동 컨셉, 트레비어가 생산하는 다양한 맛의 수제맥주를 표현하는 레이블 제작 등에 예술가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IT동아: 그렇게 만난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 온 것인가.
황 이사: 두 번의 맥주 페스티벌을 진행한 뒤 계속 작업을 함께하고 싶었지만, 코로나19로 시행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영향으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 동안은 행사를 열지 못했다. 그리고 올해 여름 다시 한번 만나 기획한 것이 아투어리다.
아투어리는 트레비어 양조장의 유휴공간인 창고와 광장(300평)에서 창고형 아트페어와 각종 퍼포먼스 공연, 영화, 맥주, 캠핑, 네트워킹 파티 등이 어우러진 아트 페스티벌로 기획했다. 아트페어는 만 34세 미만의 국내외 청년 작가를 모집했고, 약 90명이 참여해 작품을 전시했다(해외 작가 약 20명). 관람객이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도록 참여한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고, 미술 평론가를 섭외해 관람객과 함께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는 도슨트 투어도 운영했다.
또한, 야외 공간에서 디제잉, 재즈 공연, 예술영화 상영 등도 제공했다. 가족, 친구, 연인 등이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도록 고민한 결과였다. 아투어리를 진행하는 공간에는 트레비어의 수제맥주를 즐길 수 있도록 제공했다. 혹시 맥주를 과음해 일어날 수 있는 사건사고를 대비하고자 보안요원도 배치했는데, 행사 기간 중 다행히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웃음).
양조장이 아닌 복합문화공간을 생각합니다
IT동아: 양조장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선 셈이다.
황 이사: 맞다. 양조장이라는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지역 주민과 공유하고 싶다. 맥주 페스티벌과 아투어리는 이러한 고민에서 찾은 하나의 방법이다. 공개하지 않은 행사도 많이 진행했다. 동문들과 지인들을 초청해 가면을 착용하고 공연을 관람하는 행사도 있었다. 양조장과 펍, 그리고 야외 공간을 활용한 복합문화공간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는 중이다.
IT동아: 이유가 궁금하다.
황 이사: 트레비어를 소개할 때 늘 말하는 3가지가 있다. ‘(수제맥주 제조에 대한) 타협하지 않는 기본’, ‘(수제맥주 맛에 대한) 균형과 특색’, 그리고 ‘지역 공동체와의 동반 성장’이다. 트레비어는 울산의 시민과 울산의 기업들과 함께 성장하고 싶다. 그 첫걸음으로 공간을 활용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을 뿐이다.
주말에 가족과 함께 외출하는 공간에 트레비어 양조장과 펍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곳에 오면 가족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연인이 만나 매번 같은 데이트 코스를 답습하지 않고, 트레비어를 방문하기를 바란다. 다른 곳과 다른,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고 싶다.
맥주 페스티벌, 아투어리와 같은 공연은 트레비어라는 공간을 브랜딩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트레비어에 오래 머물고, 잠시 일상을 내려놓고 휴식하며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다. 놀이동산에 가면 다양한 놀이 기구를 즐기며 이야기를 나누고 맛있는 간식과 음식을 먹지 않나. 그런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IT동아: 갑자기 유명한 일본의 맥주 공장 투어 프로그램이 생각난다.
황 이사: 우리도 고민하고 있다(웃음). 다만, 뻔한 투어 프로그램이 아닌 우리만의 프로그램을 제공하고자 한다. 유럽에는 지역마다 맥주 브루어리가 있는데, 관광객을 위한 문화 체험 활동을 제공한다. 맥주 양조장은 맥주만 생산하는 공간이어야 할까? 아니다. 다음을 고민하기 위해 기획한 것이 아투어리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아투어리는 내년에도 진행할 예정이다. 올해보다 더 나은 행사로 만들고 싶다. 세계적인 위스키 브랜드인 ‘글렌피딕’이 운영하는 ‘글렌피딕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Glenfiddich Artist in Residence, AiR, 이하 글렌피딕 AiR)’를 얘기하고 싶다. 글렌피딕 AiR은 전 세계 아티스트를 초청해 브랜드 헤리티지를 탐방하고, 아티스트와 교류하며 작품 활동에 영감을 주고자 하는 취지로 시작됐다. 언젠가 아투어리도 글렌피딕 AiR과 같은 행사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2018년 처음 김 작가님과 만나 맥주 페스티벌을 열었을 때는 지금의 아투어리를 상상하지 못했다. 매년 조금씩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고자 노력했고, 코로나19라는 위기를 넘어 지금의 아투어리를 선보일 수 있었다. 앞으로도 트레비어는 울산 지역과 소통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수행해 나갈 예정이다. 같은 발걸음으로 소통하며 걷기 위해 노력하는 트레비어의 모습을 기대해 줬으면 좋겠다.
글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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