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54만 달하는 '고립·은둔 청년'…내년부터 '전담 케어'
취업·대인관계로 숨어든 청년들 75% "자살 생각해봤다"
24시간 '온라인 자가진단' 지원…발굴사례 맞춤형 지원하는 청년센터 신설
'일상생활 챌린지' 등 식사·수면·위생관리부터 관계 회복, 구직활동 등 지원
니트족 근로의욕 제고하고 직장새내기 '안착' 돕는 교육프로그램 등도 제공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남까지 힘들게 하고 싶지는 않아 계속 회피했어요. 10년 전에도, 지금도 너무 많이 지쳐 있습니다. 다시 일어나고 싶고, 그럴 필요와 의무도 너무 크게 느끼지만…힘이 없고, 힘도 안 나요. (어떤 사람들은) 저 보고 '가해자'라고 하네요."(고립·은둔 청년 A씨)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에 따르면, 국내 19~34세 중 고립·은둔 징후를 보이는 청년은 최대 약 54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취업시장이 얼어붙은 가운데 대면 접촉을 고사시킨 3년 간의 코로나19 유행은 청년들을 더 음지로 움츠러들게 했다.
일자리 경쟁에서 뒤처진 청년들은 구직까지 단념하는 경우가 늘었고(올 7월 기준 40만 2천명), 청년 '3명 중 1명(31.6%)'은 우울할 때 대화할 상대가 "없다"고 했다.
청년재단은 이들의 고립이 장기화될 경우, 연간 손실은 약 7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또 가족 해체와 저출산 등 사회 전반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는 상황이지만 그간 정부 차원의 대책은 전무(全無)했던 게 현실이다.
올해 처음으로 관련 심층조사를 실시한 정부는 내년부터 고립·은둔청년을 전담 관리하는 지자체 청년센터를 만들어 마음건강을 돌보는 한편 관계 맺기와 구직 등 사회 복귀를 포괄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숨어든 청년들 '4명 중 3명' 꼴 "자살 생각"
보건복지부는 13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개최된 청년정책조정위원회에서 이같은 내용을 담은 '고립·은둔 청년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해당 방안은 복지부가 올 7~8월 두 달 간 전국 청년(19~39세) 5만 6천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심층 실태조사 결과를 반영해 마련됐다.
보사연이 수행한 조사 결과, 설문 응답을 완료한 2만 1300여 명 중 절반 이상(56.7%·1만 2105명)이 '위험군'으로 식별됐다. 고립·은둔 청년만을 대상으로 한 전국 단위의 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청년들이 고립·은둔을 선택한 이유로는 '취업'(24.1%)이 가장 많이 꼽혔고 '대인관계'(23.5%), '가족관계'·'건강'(각각 12.4%)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62%는 '타인의 시선이 두렵다'고 답했고, 75.4%는 '자살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 중 약 27%는 실제 자살시도를 한 경험도 있었다. 삶의 만족도(3.7점)는 일반 청년(6.7점)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고립·은둔 청년 16.8%는 지난 2주간 가족이나 친척과 소통이 일체 없었고(일반 청년(1.5%)의 약 10배), 주요 일과는 'OTT 등 동영상 시청'(23.2%)이었다. 평소 얼굴을 맞대는 대면 소통이 거의 없는 셈이다.
성별 비중은 여성(72.3%)이 남성(27.7%)보다 2배 이상 많았고, 약 90%는 미혼이었다.
다만, 8할 이상은 현재 상태를 벗어나길 원했다. 스스로 탈(脫)고립을 위해 민관기관에 문의를 한 청년도 67.2%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관련 도움을 받은 적이 없다고 응답한 청년들(56%)은 '정보 부재'(28.5%)와 '지원기관이 없어서'(10.5%)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온라인 등 선제 발굴해 '청년센터'가 1:1 전담관리
이에 정부는 지난 9월 발표한 '청년 복지 5대 과제'를 토대로 고립·은둔 청년만을 타깃으로 한 첫 종합대책을 내놨다.
정부가 내세운 4대 과제는 △고립·은둔 조기 발굴체계 마련(발굴) △2024년 고립·운둔 청(소)년 지원 시범사업 실시(전담지원체계) △학령기·취업·직장초기 일상 속 안전망 강화(예방) △지역사회 내 자원연계, 법적근거 마련(관리·제도화) 등이다.
우선 정부는 고립·은둔 청년을 상시 발굴하는 중앙 차원의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복지부 소관 공공사이트를 이용해 24시간 누구든지 본인의 고립·은둔 위기 정도를 쉽게 진단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어려움을 겪는 당사자들이 언제든 비대면·온라인 방식으로 외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원스톱 도움창구'도 마련한다.
또 가족이나 친구, 편의점 등 주변에서 위기징후가 보이는 청년들에 대한 지원을 요청할 수 있게 '129콜 보건복지상담센터' 카테고리에 '청년' 항목을 별도 신설하기로 했다.
정부 심층조사 과정에서 도움을 청한 청년 1903명에 대해서는 내년도 고립·은둔 청년 시범사업 및 지자체 지원과 연계해 현장방문과 초기상담 등 전담 사례관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또한 지자체-경찰-소방-지역주민(고시원·원룸촌·편의점 등) 등 기존 복지사각지대 발굴 협력망을 강화하고, 복지부 청년인턴을 활용해 고립·은둔 청년들이 자주 찾는 온라인 커뮤니티 대상 집중발굴 및 홍보활동도 진행한다.
고립·은둔 청년이 주로 시간을 보내는 곳이 온라인 공간임을 감안한 조치다.
다각도로 발굴된 고립·은둔 청(소)년은 이들만을 전담으로 지원하는 '청년미래센터'(가칭)를 통해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받게 된다.
정부는 4개 광역시·도를 공모로 선정해 내년도 약 13억원, 32명의 전담인력을 투입한 지원 시범사업을 실시할 예정이다. "상담이든 뭐든 받고 싶지만 어떻게 어느 곳에 해야 하는지 찾아보다가 포기한다", "고용노동센터나 일자리센터는 자신감이 없어서 못 갔다" 등 청년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한 결과다.
청년미래센터에 배치된 전담 사례관리사는 온라인 등으로 도움을 청한 청년들의 거주지 등 현장을 방문한 후 개별 상황에 맞는 케어플랜을 짜게 된다.
센터는 자기이해 워크숍 등 자가진단을 돕는 초기상담부터 은둔청년이 주축이 되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일상생활 챌린지', 하루 세끼 식사 등 일상의 정상화를 지원하게 된다. 공동생활을 통해 수면 및 위생관리·정리정돈을 자연스럽게 학습시키는 한편 해당 청년의 가족 등이 참여하는 자조모임 등으로 관계 회복도 돕는다.
고용노동부의 청년도전지원사업 등과 연계한 사회복귀 시도도 지원할 방침이다.
정부는 이같이 2년간의 시범사업을 거쳐 다양한 서비스 모형, 본인부담 방식 등 선도모델을 개발한 뒤 전국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서비스와의 연계도 강화한다. 초기상담 시 사례관리사의 판단에 따라, 돌봄이 필요한 1인가구 청년들에게는 가사·병원동행·식사·영양관리 등 '일상돌봄서비스'를 확대 제공한다.
내년에는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에도 고립·은둔 전담 사례관리 인력이 총 36명 배치된다. 국토교통부는 특화형 매입임대제도를 활용, 복지부·여가부와 협업해 청년특화 공동생활 등에 필요한 공간 마련을 적극 돕기로 했다.
10대부터 주기별 관리 강화…직장 적응 돕는 '온보딩' 교육도
이와 함께 중·고등학생에 해당하는 13~19세(학령기), 대학 졸업 후 구직활동기, 입사 초기 등 청년기 전후 생애주기별 안전망도 강화한다.
먼저 학교 내 통합지원팀을 운영하는 선도학교를 올해 96개교에서 내년 248개교로 늘려 학교폭력, 학교 부적응 등을 겪는 학생들을 밀착 지원한다. 학업을 중단한 학생들에 대해서는 관련 정보를 신속히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로 연계한다.
취업 실패, 이직 등으로 쉬고 있는 청년들을 대상으로는 '청년성장프로젝트'(10개 지자체·224억원)를 신설한다.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들이 부담 없이 지역사회로 나와 일상생활을 하고 구직 의욕을 제고할 수 있도록 자조모임·심리상담 등을 제공하고 각종 청년정책과 지원 연계하겠다는 취지다.
기존의 청년도전지원사업도 규모를 확대(올해 408억·8천 명→내년 425억·9천 명)해 적정한 진로탐색과 취업역량 강화를 돕는다.
아울러 온보딩(On-Boarding) 프로그램을 새롭게 만들어 취업초기 청년들이 직장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회사 대표(CEO) 등에게는 MZ세대의 직무관 또는 커뮤니케이션 방법 등 청년친화적 조직문화를 교육하고, 직장생활을 막 시작한 청년들에겐 조직 내 성장방법과 소통·협업 등의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할 계획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정서적 취약계층을 상대로 하는 문화케어프로그램을 확대해 복지부의 사례관리 프로그램을 연계 지원하기로 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힘들어하는 청년들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이들이 일반 청년과 같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서 돕는 것은 다양한 사회문제를 선제적으로 예방하는 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어 "고립·은둔 청년들이 스스로를 자책하여 사회로부터 은둔하지 않도록 정부는 다양한 청년 복지정책을 통해 이들을 폭넓게 지원해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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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이은지 기자 leunj@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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