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보다 생존 급해진 기업 …"M&A는 꿈도 못 꾼다" 68%
고금리·경기 둔화 복합악재
신사업 진출 위험부담 커져
경영환경 불확실성 큰 탓에
"재무계획 보수적으로" 62%
부채비율 높은 일부 업종선
구조조정 과정 M&A 늘수도
◆ 기업 내년 전망 ◆
"금리 인하 전망에도 고금리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대내외 기업 경영 환경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이런 상황에선 여유자금이 생기더라도 과감히 인수·합병(M&A)을 추진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커 보인다."
고금리와 경기 둔화를 비롯한 복합 악재 위기에 노출된 국내 주요 기업 재무 담당자들은 내년 국내 M&A 시장에서 지갑을 여는 데 더욱 인색해질 전망이다.
13일 자본시장 프리미엄 뉴스 서비스 '매일경제 레이더M'이 국내 주요 대기업 37곳의 재무담당 임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기업의 67.6%(25곳)가 "내년에 M&A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계획이 있다는 응답(32.4%)보다 2배 넘게 많았다. 곳곳에 산재한 악재 탓에 자금난이 예상되다 보니 M&A를 통한 신사업 진출보다는 빚을 갚아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데 더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M&A 계획이 없다고 밝힌 주된 이유(복수응답)로는 '경기 불확실'(55.2%)과 '주력 사업에 집중하겠다'(69%)는 응답이 많았다. 자금 부족이라고 이유를 밝힌 기업은 13.8%에 그쳤다. M&A에 나서지 않는 이유가 실탄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불확실한 주변 환경 때문이란 점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설문에 응답한 재무담당 임원들이 내년 회사의 재무계획을 보수적(62.2%) 또는 중립적(37.8%)으로 운영하겠다고 답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내년에 모험적인 재무계획을 펼치겠다고 응답한 기업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최근 국내 M&A 시장은 계속된 고금리 여파 등으로 크게 위축된 가운데 사모투자펀드(PEF)와 더불어 시장의 주요 주체인 대기업들이 내년 M&A 시장에 나서기를 주저할 경우 시장의 빠른 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이 같은 분위기는 내년 M&A 시장 전망을 묻는 설문에서도 드러났다.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45.9%가 '내년 M&A 시장이 올해보다 위축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경기 침체 등에 따른 한계기업이 늘면서 일부 업종에서 비자발적 구조조정성 M&A가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다. 내년 최우선 재무 목표를 묻는 질문에 부채 감축 등 재무건전성 제고(64.9%), 비용 절감(24.3%)과 함께 비주력 사업 및 비영업자산 처분(21.6%)을 꼽은 답변이 많은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으로 해석된다. 신사업 육성과 비핵심 사업 정리를 비롯한 사업 재편을 원하는 대기업과 안정적인 현금흐름 창출이 가능한 매물을 원하는 PEF 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관련 거래가 활발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SK엔펄스의 파인세라믹스 사업부가 한앤컴퍼니에 매각되고, SK피유코어가 글랜우드 프라이빗에쿼티(PE)로 주인이 바뀐 것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시장에서는 건설, 디스플레이, 유틸리티처럼 부채비율이 높은 업종을 중심으로 관련 기업들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박대준 삼일회계법인 딜 부문 대표는 "고금리 기조 지속과 금융시장 불안정 속에 M&A 시장이 내년 상반기 이후에나 회복되기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경기 침체가 본격화되고 기업들이 사업 재편과 구조조정에 본격 나설 경우 시장이 다시 활기를 띨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내년에 자금 사정이 더욱 악화될 것이란 전망이 기업들을 더욱 움츠러들게 하고 있다. 기업들은 고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이자비용 부담이 커지는 동시에 경기 위축에 따른 실적 부진으로 자금이 마르는 '돈맥경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모습이다. 설문에 응한 37개 기업 중 22곳(59.5%)이 내년 자금 사정이 나빠질 것이라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조달 비용 부담 증가(18곳·69.2%)를 주요인으로 꼽았다. 자금 운용에 위협적인 요소를 묻는 질문(복수응답)에는 경기 부진(31곳), 높은 금리(20곳), 기업 수익성 악화(14곳) 순으로 답변이 많았다.
이들은 자금 사정 악화로 신용등급이 하락하는 기업이 늘어나는 추세가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기업 37곳 모두(100%)는 최근 계속된 기업의 신용등급 하락 추세가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답했다.
고금리 지속 전망에도 기업들은 회사채 발행(54%)을 통한 자금 조달을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밖의 자금 조달 방안으로는 은행 대출, 자산유동화 잉여자금 활용을 꼽았다.
한 상장사 대표는 "호황기 때와 다르게 불황이 오면 확실한 담보자산(부동산, 공장 등)이 없을 경우 대출이 잘 나오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기업 입장에선 은행 대출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전환사채(CB)·신주인수권부사채(BW)처럼 옵션이 붙은 회사채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투자자 입장에서도 향후 금리 인하에 따른 회사채 가격 상승, 회사 성장 시 주식 전환에 따른 자본이득 같은 이점이 있어서 CB·BW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다만 불확실한 경영 환경 속에서도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기회가 있다면 신성장동력 발굴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설문 응답자의 56.8%는 자금 사정이 악화되는 가운데서도 기회만 찾아온다면 '내년에 투자를 늘릴 계획이 있다'고 응답해 '그렇지 않다'(43.2%)는 답변보다 많았다.
※ 설문조사 참여 기업 네이버 넥슨코리아 동원산업 두산 DL이앤씨 롯데쇼핑 삼성SDS 신세계 쏘카 제주항공 야놀자 유진기업 LG에너지솔루션 LG유플러스 LG CNS LG화학 LS SK SK이노베이션 SK에코플랜트 SK텔레콤 GS건설 GS칼텍스 카카오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코오롱 쿠팡 태광그룹 포스코홀딩스 포스코퓨처엠 하림지주 한화 한화오션 현대지에프홀딩스 호반건설 HD현대오일뱅크 HL만도
[강두순 기자 / 나현준 기자 / 전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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