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 아이들 구출 … 심장이 시킨 일"

박재영 기자(jyp8909@mk.co.kr) 2023. 12. 1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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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아이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을 수없이 왕복한 이가 있다.

미국과 우크라이나를 오가며 사업을 하던 미국인 아르멘 멜리키안 씨(44)다.

멜리키안 씨는 "미국이나 우크라이나 정부로부터도 받지 못했던 지원을 기꺼이 해준 이태석재단에 항상 감사하고 있다"면서도 "이미 망가져버린 우크라이나 국민의 삶을 재건하기 위한 지원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했다.

특별 강연을 마친 멜리키안 씨는 13일 다시 우크라이나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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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판 쉰들러리스트' 아르멘 멜리키안 방한
美·우크라 오가던 곡물사업가
승합차로 노인·어린이 싣고
전장 넘나들며 300명 구해
검문 잡혀 죽을 위기 넘기기도
'울지마 톤즈' 이태석재단서
작년 3월부터 긴급구호 후원
"의료·생필품 훨씬 더 필요해"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이태석재단 사무실에서 아르멘 멜리키안 씨가 매일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승환기자

우크라이나 아이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을 수없이 왕복한 이가 있다. 미국과 우크라이나를 오가며 사업을 하던 미국인 아르멘 멜리키안 씨(44)다. 9인승 승합차 하나로 지금까지 그는 민간인 300여 명을 구출했다. 나치의 폭압을 피해 유대인 탈출을 도왔던 독일인 사업가 쉰들러를 연상케 하는 멜리키안 씨를 최근 매일경제가 인터뷰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멜리키안 씨는 평범한 곡물 사업가였다. 하지만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는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친구들이 총을 들고 전장으로 향했다"며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 정부는 국민을 보살필 처지가 안 됐고, 아이들은 러시아군의 포격에 무방비로 노출됐다"고 회상했다.

멜리키안 씨는 노약자와 아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킬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버스는 구할 수 없었고 트럭은 군 수송용으로 오해받을 수 있어 위험했다. 결국 9인승 승합차로 최대한 여러 차례 왕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피란민들을 인접 국가인 폴란드로 데려가기 위해선 약 800㎞를 쉬지 않고 달려야 한다"며 "매일 20시간가량을 운전대를 잡고 국경을 넘나들었다"고 말했다. 폴란드로 가는 길이 막히면 헝가리로 목적지가 달라졌을 뿐, 멜리키안 씨의 승합차는 멈추지 않았다.

구출 작업을 위해선 하루에도 몇 번씩 생사의 갈림길을 넘겨야 했다. 포탄이 바로 앞에서 터지는가 하면 총알이 눈가를 스치고 지나가기도 했다. 검문 중인 러시아 군인에게 붙잡혔던 일도 있다. 그는 "러시아 군인이 총구를 들이밀며 돌아가라고 했지만, 차에 타고 있는 피란민들 눈을 보고 차마 되돌아가자는 말은 할 수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당시 수중에 있던 90달러와 가짜 롤렉스 시계를 러시아 군인에 건넨 뒤에 가까스로 통과할 수 있었다. 멜리키안 씨는 "차에 타고 있던 7명의 목숨과 가짜 시계를 맞바꿀 수 있는 게 전쟁터"라며 "이후에는 항상 값나가는 물건을 챙겨 다녔다"고 설명했다.

멜리키안 씨는 미국에 아내와 두 딸이 있다. 각각 열일곱 살, 두 살 난 딸이다. 그는 "아내는 처음부터 돌아오라고 했지만 우크라이나 아이들의 삶을 보고도 나 혼자 미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며 "내 심장이 시키는 대로 아내에겐 '그들이 날 필요로 한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멜리키안 씨가 한국을 찾은 것은 지난해 3월부터 그를 후원해 온 이태석재단의 특별 강연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울지마 톤즈'로 알려진 국내 비영리단체 이태석재단은 전쟁 발발 직후부터 '우크라이나 어린이 긴급구호 캠페인'을 시작해 멜리키안 씨를 지원했다. 멜리키안 씨가 아이들을 구출할 때 태우는 9인승 승합차도, 그가 착용하는 방탄복과 방탄모도 모두 한국인의 후원금으로 장만한 것이다. 멜리키안 씨는 "미국이나 우크라이나 정부로부터도 받지 못했던 지원을 기꺼이 해준 이태석재단에 항상 감사하고 있다"면서도 "이미 망가져버린 우크라이나 국민의 삶을 재건하기 위한 지원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했다.

멜리키안 씨에 따르면 현재 가장 부족한 것은 의료품과 생활필수품이다. 지난 7월 이태석재단이 의약품을 전달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물품 부족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공습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이들이 지금도 충분한 치료를 받지 못해 죽어가고 있다"고 호소했다. 특별 강연을 마친 멜리키안 씨는 13일 다시 우크라이나로 돌아갔다.

[박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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