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길을 찾아나선 작가 구본창의 항해…서울시립미술관 전시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백자', '비누' 등 사진 연작으로 유명한 구본창(70) 작가는 대기업 직장인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대기업에 취업했으나 자신의 길을 찾아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1979년 독일로 유학을 떠나 사진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45년이 지난 지금 구본창은 국내 사진계에서 자신만의 위치를 확고히 하는 작가가 됐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14일 시작하는 '구본창의 항해'전은 원하는 길을 찾아 나섰던 작가의 여정을 돌아보는 전시다.
작품 500여점과 관련 자료 600여점을 망라한 대규모 회고전을 앞두고 13일 기자들과 만난 작가는 "우유부단했고 내성적이라 내 의견을 표출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을 겪어서인지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는 것, 자기 위치를 찾지 못한 것에 끊임없이 눈길을 주고 작업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전시는 작가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놀랄 정도로' 다양한 작업을 해 온 작가의 50여개 연작 중 43개 시리즈를 소개한다.
독일 유학 시절 유럽 곳곳을 여행하며 흑백과 컬러로 도시의 완벽한 조형미를 찍은 '초기 유럽' 연작과 B컷 사진을 네 장씩 엮어 이야기의 흐름을 담은 '일 분간의 독백' 연작을 작업했던 그는 서울로 돌아온 뒤 실험적인 작품을 계속 시도했다.
무작위로 컬러와 흑백 필름을 각각 장착한 카메라로 서울 구석구석의 일상을 찍은 사진을 네 장으로 엮은 '긴 오후의 미행' 연작,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이후 한국 사회의 통속성(키치)을 콜라주 형식으로 표현한 '아! 대한민국' 연작, 즉석 필름 카메라와 필름으로 퍼포먼스 모습을 담은 '열두 번의 한숨' 연작 등이 대표적이다.
작가는 "독일에서 6년 만인 1985년 귀국한 서울은 너무 낯설었다"면서 "작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불안감 등을 뭉뚱그려 또 다른 표현을 많이 하려 했고 회화적인 것을 좋아해 스트레이트 사진보다는 표현을 자유롭게 하려 시도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바느질로 이어 붙인 종이에 이미지를 인화한 '태초에' 연작과 한지에 인화된 곤충 이미지를 표본처럼 구성한 '굿바이 파라다이스' 연작 등으로 매체 실험을 계속하던 작가의 작업은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리버런'·'오션'·'화이트' 연작처럼 정적이고 서정적으로 변화한다.
작가 작업의 또 다른 축은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다. 무속신앙이나 불교에서 쓰이는 지화(紙花. 종이꽃)를 찍은 '지화' 연작, 철근 콘크리트를 이용해 복원된 광화문 부재를 찍은 '콘크리트 광화문' 연작, 국립중앙박물관과 호암미술관, 일본 교토 일본민예관, 영국박물관 등 세계 곳곳에 소장된 백자 달항아리 12개를 다양한 흑백조로 촬영해 마치 달이 뜨고 지는 것처럼 구성한 '문라이즈 Ⅲ', 금관, 금동관모 등 황금 유물들을 찍은 '황금' 연작 등은 이런 관심이 반영된 작업이다.
전시에서는 수집품만을 따로 모아 소개하는 전시도 열었을 정도로 수집벽이 있었던 작가가 어렸을 적부터 모아온 수집품들도 함께 소개된다. '기쁜 우리 젊은 날', '경마장 가는 길', '개그맨' 같은 영화 포스터 작업 등 각종 자료도 볼 수 있다.
올해 칠순인 작가는 바다 너머 세상으로 향할 것이라는 다짐을 담아 남해 상주 해안가에서 친구가 찍어준 1972년작 '자화상'을 언급하며 "그 당시 먼 새로운 세계에 대한 꿈을 꾸며 찍은 사진인데 50년 뒤 한국의 큰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꿈을 꾸는 자만이 꿈에 가까이 갈 수 있다"며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려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첫 공립 미술관 전시이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국내 작가 개인전 중 최대 규모다. 내년 3월10일까지. 무료 관람.
zitr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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