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피해 묵살당했던 일본 자위대원, 결국 이겼다… 가해자 유죄 판결

남성 전 자위대원 3명 모두 유죄
고노이 "2년 동안 인생 걸고 싸웠다"

일본의 전직 자위대원인 고노이 리나(가운데)가 13일 도쿄 외신기자클럽에서 성추행 가해자 유죄 판결 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소감을 말하고 있다. 도쿄=AFP 연합뉴스

여성 동료를 집단 성추행하고도 처음엔 기소조차 되지 않았던 일본 전직 남성 자위대원들이 결국 유죄 판결을 받았다. 가해자 불기소 조치 후 자위대를 그만두고 유튜브를 통해 가해자들을 실명으로 고발했던 피해자 고노이 리나(24)는 “악을 악이라 판단한 선례를 남길 수 있었다”는 소감을 밝혔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후쿠시마지방재판소(지방법원)는 2021년 고노이를 성추행했던 전직 자위관 3명에 대해 유죄로 판단하고 12일 징역 2년과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미우라 다카아키 재판장은 “피고인들은 주위에 다수의 동료가 있는 가운데 피해자를 연회 분위기를 북돋우는 물건처럼 취급했다”며 “이들의 행위는 성적 수치심을 현저히 해치는, 비열하고 악질적인 범행”이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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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허리 흔든 건 맞지만 성추행 아냐" 주장

판결문에 따르면 당시 고노이의 상관이었던 20~30대 남성 자위관들은 2021년 8월 3일 밤 홋카이도 벳카이초 육상자위대 연습장 건물 안에서 함께 밥을 먹던 중 격투기를 하며 고노이를 침대 위에 밀어 넘어뜨렸다. 이어 몸으로 덮은 뒤 허리를 앞뒤로 움직이거나 하체를 접촉시키는 등 성추행을 했다.

이들은 공판 과정에서 “몸으로 덮은 것은 맞지만 접촉은 하지 않았다” “허리를 흔든 것은 맞지만 웃기려고 한 것”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고노이가 피해 직후 어머니에게 “성추행에 지쳤다” 등의 메시지를 보냈고 △상사인 여성 대원에게 당시 상황을 호소했으며 △그 자리에 있었던 전 동료의 증언도 일치하고 신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동료들은 첫 조사 때는 피고인 옹호 진술을 했으나 이번 재판 과정에선 진실을 말했다.

일본의 전직 자위대원인 고노이 리나가 13일 도쿄 외신기자클럽에서 성추행 가해자 유죄 판결 관련 기자회견을 하던 도중 물을 마시고 있다. 도쿄=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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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위대 전수조사 등 국가적 반향

애초 후쿠시마지검은 지난해 5월 이 사건의 가해자에 대해 '불기소 처분(혐의 불충분)'을 내렸다. 이에 고노이는 검찰심사회에 불복 신청을 하고 유튜브를 통해 실명을 밝히고 피해를 고발했다. 사회 이슈로 발전하자 검찰심사회는 불기소가 부당하다고 의결했고, 가해자들은 지난 3월 강제외설죄로 기소됐다. 이를 계기로 일본 방위성이 자위대 내부 성희롱, 성추행 피해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처분하는 등 고노이의 투쟁은 일본 사회에 반향을 일으켰다.

고노이는 13일 오전 도쿄 외신기자클럽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2년간 인생을 걸고 싸웠다”며 “이 싸움은 낭비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실명 고발 후 인터넷 등에서 비방중상에 시달려 큰 고통을 받았지만 “인생을 강하게 단련하는 양식이 됐다”고 설명했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pariscom@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