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은둔 청년 만드는 취업 실패… 10명 중 7명 이상 자살 생각

김창훈 2023. 12. 13.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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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단위 고립·은둔 청년 첫 실태조사
10명 중 8명 '탈출' 원해도 도움의 손길 멀어
정부, 조기 발굴 체계·맞춤형 지원방안 마련
2021년 기준 국내 전체 청년인구 중 고립·은둔 청년은 54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게티이미지뱅크
"실패하면 그냥 포기해 버린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 말해도 어차피 내가 쓰레기가 되니 혼자 감추고 있다 조용히 사라질 것이다."

보건복지부 의뢰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올해 7~8월 수행한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에서 한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 짙은 열패감으로 삶에 한 줌 미련도 없는 듯했다. 이 청년뿐 아니라 조사 참여자 중 66.3%는 '희망이 없다', 75.4%는 '자살을 생각했다'고 답했다. 동시에 10명 중 8명은 현 상태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지만 도움의 손길을 경험한 비율은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그들의 교집합... 대졸에 미혼, 온라인 함몰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 보건복지부

복지부는 13일 오후 한덕수 국무총리가 주재한 '청년정책조정위원회'에서 이 같은 실태조사 결과와 함께 관계 부처가 합동으로 수립한 '고립·은둔 청년 지원방안'을 보고했다. 고립·은둔 청년만을 위한 정부의 첫 종합대책이다. 고립은 사회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아 위급 시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운 상태, 은둔은 거주 공간에서 나가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7주간 온라인에서 이뤄진 이번 실태조사는 지난 3월 국무조정실이 발표한 '2022 청년 삶 실태조사'의 후속이다. 지난해 7~8월 진행된 청년 삶 실태조사에서 청년(19~34세)이 속한 가구를 표본 조사해 고립·은둔 청년 수를 54만 명(2021년 기준)으로 추정한 데 이어, 올여름 이들에게 직접 초점을 맞춘 조사를 진행한 것이다. 고립·은둔 경험이 있는 전국의 19~39세 2만1,360명이 참여했고 8,000명 이상은 2차 심층조사에도 응했다.

응답자는 여성(72.3%)이 남성(27.7%)보다 2.6배 많았다. 김성아 보건사회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여성이 자신의 상태를 더 자각하거나, 조사 링크를 찾아 긴 문항에 답한 비율이 높을 수 있다"고 이유를 분석했다. 연령대는 20대 후반(37%)과 30대 초반(32.4%)에 집중됐다. 학력은 대졸(75.4%), 고졸(18.2%), 대학원 이상(5.6%), 중졸 이하(0.8%) 순이고, 89.5%는 미혼이었다.

고립·은둔을 시작한 시기는 20대가 60.5%로 최다였지만 10대도 23.8%였다. 10대에 고립·은둔을 한 이들은 대인관계(27.1%)와 가족관계(18.4%) 등을 이유로 들었다. 고립·은둔 기간은 1년 이상 3년 미만이 26.3%, 3개월 미만이 15.4%였다.

'타인 시선이 두렵다'(62.0%)는 응답자가 다수라 돈이 덜 들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온라인 의존도는 절대적이었다. 일상의 대부분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동영상 시청(23.2%)과 온라인 활동(15.6%)으로 채웠다. 삶 만족도는 3.7점으로, 청년 삶 실태조사에서 나온 전체 청년 평균(6.7점)에 비해 매우 낮았다.


황폐화한 생활, 아직 남아 있는 탈출 의지

고립·은둔 청년들은 '방'에서 나가기를 원하지만 도움을 받은 경험은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조사 참여자의 과반(1만2,105명)은 객관적 위험군으로 분류됐다. 방에서조차 나오지 않는다는 초고위험군도 504명이나 됐다. 취업 실패는 이들을 절망 속으로 몰아넣은 주된 이유였다. 응답자들은 고립·은둔 원인으로 직업 관련 어려움(24.1%)을 가장 많이 지목했다. 대인관계(23.5%), 가족관계(12.4%), 건강(12.4%)이 뒤를 이었다.

심층조사에 응한 8,436명 중 6,360명(75.4%)은 자살을 생각했고, 이 가운데 1,698명(26.7%)은 자살 시도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전체 청년의 '자살 생각' 비율 2.3%(청년 삶 실태조사)와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높은 수준이다.

이들에게 '혼밥'(응답률 80.3%)은 일상이고, 절반 이상(52.3%)은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고 있다. 1주일 이상 옷을 안 갈아입거나(15.8%) 목욕·샤워를 안 하고(10.5%), 심지어 세수나 양치까지 거르는(4.5%) 청년도 적지 않았다.

그래도 10명 중 8명(80.8%)은 현 상태에서 벗어나기를 원하고, 67.2%는 고립·은둔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한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경제적 지원(88.7%)과 취업 및 일경험(82.2%)을 바라는데, 도움을 받았다는 응답자는 44%였다.


정부 차원 첫 개입, 전담 지원 시범사업 착수

이기일(오른쪽) 보건복지부 제1차관이 13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의 한 1인 가구를 방문해 건강음료를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내년부터는 정부가 고립·은둔 청년 지원에 나선다. 복지부는 청년들 스스로 언제든 위기 정도를 파악할 수 있도록 소관 공공사이트에 자가진단시스템을 구축하고, 보건복지상담센터(129콜)에 청년 항목을 별도 신설하기로 했다. 공모를 거쳐 4개 지역에 고립·은둔 청년을 전담하는 가칭 '청년미래센터'를 내년 하반기에 설치한다. 기존 복지제도와도 연계해 '일상돌봄서비스' 대상을 1인 가구 청년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고용노동부는 취업에 실패한 청년들이 지역사회로 나올 수 있도록 자조 모임, 심리상담 등을 제공하는 가칭 '청년성장프로젝트'를 시작하고, 기존 '청년도전지원사업'도 확대할 예정이다.

이기일 복지부 1차관은 "내년부터 2년간 전담 지원 체계 시범사업을 통해 지원 대상자 정의, 정보보호, 서비스 질 관리 방안 등 전국 확대에 필요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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